(차기태의 경제편편)'미등기임원' 재벌총수 급여 정당한가

입력 : 2021-04-21 오전 6:00:00
이재현 CJ 회장은 현재 CJ의 미등기임원이다. 등기이사가 지게 돼 있는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운 위치에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는 지난해 67억원의 보수를 지급받았다. 급여 29억8100만원과 상여 37억3600만원이었다. 이재현 회장은 지주사 외에 CJ제일제당과 CJ ENM에서도 급여와 상여를 받았다. 지난해 챙긴 보수는 모두 123억7900만원에 이른다. 한국CXO연구소 조사결과를 인용한 한 보도에 따르면 CJ는 이재현 회장 일가의 고액 연봉 덕분에 지난해 임직원 평균 연봉 1위 자리에 올랐다. 이 회장의 아내인 김희재 부사장과 누나인 이미경 부회장도 미등기임원으로 이름을 올렸기 때문에 실제 오너일가가 챙긴 보수는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오리온홀딩스도 비슷하다. 오리온그룹의 지주회사인 오리온홀딩스의 경우 지난해 임직원 10명에게 지급된 32억원의 인건비 가운데 오너가인 담철곤 회장(14억원)과 이화경 부회장(11억원)이 25억원을 받아갔다. 전체의 80%에 육박한다. 
 
그런데 담 회장과 이 부회장도 이재현 CJ회장의 경우처럼 미등기임원이다. 두 오너 일가에 대한 높은 보수 때문에 이 회사의 임직원 1인당 평균 연봉이 3억2000만원으로 제법 높아 보인다. 그렇지만 오너가에 지급된 금액을 제외하면 평균연봉이 1억 이하로 뚝 떨어진다. 전형적인 '착시현상'이라고 할 수 있겠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경우 지난해 총 8개 회사에서 약 140억원 가량의 급여를 받았다. 여러 계열사에 등기임원 또는 미등기임원으로 발을 담가놓았기 때문이다. 비상장회사인 롯데물산과 롯데렌탈에는 미등기 임원으로 등록해 10억원씩을 받아갔다.
 
미등기임원은 대체로 현업에서 직원들을 이끄는 중역들이 맡는다. 영업 자재 자금 생산 연구개발 등 여러 분야의 업무를 현장 가까이에서 지휘한다. 모두가 오랜 세월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전문인력이다.
 
그렇지만 CJ와 오리온홀딩스는 두 그룹의 지주회사이다. 지주회사는 사업회사가 아니라, 계열사업회사를 지휘하는 사령탑 같은 회사이다. 또한 대주주의 지배권을 대내외적으로 공식화하는 위치에 있다. 말하자면 CJ그룹은 이재현 회장이 지배하는 그룹이고, 오리온그룹은 담철곤 회장과 이화경 부회장의 지배 아래 있는 회사임이 이들 지주회사를 통해 확인되는 것이다.
 
그런데도 이재현 회장과 담철곤 회장 등은 미등기임원으로 남아 있다. 오너라면 지주회사의 등기임원으로 이름을 올리는 것이 떳떳한 일일 것이다. 그런데 왜 굳이 이를 마다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그럼에도 고액 급여는 챙겨가는 것은 명과 실이 너무 어긋난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우 다른 이재현 CJ회장이나 담철곤 회장의 경우와 달리 급여를 받지 않고 있다. 등기임원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여겨진다. 최근 국정농단 사건 등 형사 사건의 대상이 된 것도 이유가 됐을 것이다. 이유가 어떻든 이재용 부회장의 경우는 명과 실이 일치하는 것 같다.
 
사실 재벌총수라고 해 모든 계열사 등기임원이 되라는 법은 없다. 총수라는 직위는 그의 지분과 그 지분을 뒷받침하는 회사의 투자구조에 의해 보장된다. 그러니 총수는 굳이 계열사 임원에 오르지 않고도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그리고 그의 지분을 통해 배당금도 받는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도 올해 삼성전자로부터 1258억원의 배당금을 받는다고 한다. 
 
총수가 보기에 자신의 뜻에 맞지 않는 경영자가 있으면 교체하면 된다. 이를테면 경영을 잘 못해 배당금이 현저히 줄어들었다든가 앞날의 비전이 명쾌하지 않다고 생각될 때 지배주주의 권한과 영향력을 행사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굳이 회사로부터 또 다른 급여를 받을 필요도 없다. 더욱이 미등기임원 신분이라면 받지 않아야 마땅해 보인다. 
 
요컨대 재벌 총수가 지배주주로서 상응하는 책임과 권한을 행사하고 배당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계열사 미등기임원의 신분으로 고액급여까지 챙겨가는 것은 자신의 회사에 공연한 부담을 안겨주는 일이다. 
 
필자는 지난주에 이어 재벌 미등기임원 문제를 다시 짚어봤다. 재벌총수들이 배당금 외에 미등기임원이라는 직함으로 별도의 급여를 받아가는 '관행 아닌 관행'은 이제 종식될 때가 아닌가 생각된다. 아무래도 합리적인 '관행'은 아닌 것 같다.
 
차기태 언론인(folium@nate.com)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김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