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용준 기자] “좋은 이웃 덕분에 아버지가 편찮으실 때 편하게 모실 수 있었습니다. 이웃들에게 너무나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고 큰 은혜를 입었습니다.”
임순형(48·남)씨는 사회주택 사업자 녹색친구들이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에 공급한 녹색친구들창천에 2018년 5월 입주했다.
당초 아내와 함께 신혼부부 자격으로 투룸에 입주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아내의 직장 문제로 뜻하지 않게 주말부부로 지내게 됐고, 빈 자리는 치매(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는 아버지가 들어왔다.
부모님 집이 있는 성산동 아파트도 멀지 않지만, 어머니가 일하는 사회복지시설이 바로 근처에 있어 종종 부모님이 쉬어가곤 했다. 그러다 아버지가 오가기 힘들어지며 점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다 3년 전 아예 주민등록까지 옮겼다.
임씨는 “아버지는 한없이 착하고 총명한 분인데 치매로 일상 생활이 힘들어져 휴대전화 걸기, 집 번호키 입력, 옷 입기 등 도움을 받아야 했다”며 “아버지도 젊은 사람들과 웃으며 안부를 묻고 하이파이브 인사를 하면서 여기 지내는 걸 좋아하셨다”고 말했다.
치매 증세가 심해지면서 임씨가 부재한 사이 밖에 나갔던 아버지가 키를 목걸이로 갖고 있어도 현관을 들어오지 못하거나 집 비밀번호를 까먹는 돌발상황이 늘었다. 다행히 입주민들도 임씨의 아버지 사정을 잘 알고 이해해줘 임씨도 집 비밀번호까지 입주민들과 공유했다.
아버지가 집 밖을 헤메거나 현관에서 못 들어가고 있으면 입주민들이 아버지를 모시고 집 안까지 들여 보내고 임씨에게 알려줬다. 작년 초에는 아버지가 집을 못 찾아 추위에 덜덜 떨며 복도에 앉아있는 모습을 한 입주민이 발견하고 자신의 외투를 덮어주며 집 안으로 모시기도 했다.
임씨는 “이웃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 같아 조심스러웠지만, 입주민들이 훌륭한 분들로 아버지를 항상 밝은 얼굴로 대했다. 입주민들한테 감사 인사를 하고 식사자리를 하고 싶다. 일반 주택이였으면 이렇게 못했을텐데 사회주택은 이웃끼리 서로 도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준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임순형씨가 서울 서대문구 녹색친구들창천 커뮤니티공간에서 말하고 있다. 사진/박용준 기자
임씨는 최근 재계약까지 하고 녹색친구들창천에 4년째 살고 있다. 임씨가 전용면적 30.2㎡에 불과한 이 집에 계속 사는 이유는 방의 크고 작음은 별로 영향을 주지 못한다. 임씨의 직장도, 어머니의 사회복지시설도 모두 반경 20m 안에 위치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가장 원한다는 직주근접의 '끝판왕'급이다.
녹색친구들창천 11가구는 대부분 1인가구 청년들이다. 근처에 대학이나 직장을 다니며 적은 임대료로도 안정적으로 살 수 있다보니 주변의 부러움을 살 정도다. 공실이 발생하면 경쟁률이 5대 1, 7대 1까지 치솟는다. 재계약률이 80%가 넘어 공실 자체가 잘 나지 않는다. 전체 가구의 절반 가량은 초기부터 입주한 사람들이다.
임씨는 “창천동에 집을 필요로 했는데 이 라인이 너무 비싸다. 마침 평소 관심갖고 지켜보던 녹색친구들 소식을 들었다. 임대주택에 대한 거부감이 있다는데 우리는 여기 사는게 대박이다. 입지가 이렇게 훌륭한데 임대료가 관리비까지 합쳐도 20만원도 안 된다. 약간 좁을 수는 있어도 불만은 없다”고 말했다.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 녹색친구들창천 전경. 사진/녹색친구들
코로나19로 작년 10월 이후 주민 모임도 일체 못하고 온라인이나 단톡방에 한정되고 있지만, 녹색친구들창천 입주민들은 기쁜 일은 함께 축하하고, 어려운 일은 같이 나누며 많이 어울렸다. 한 달에 한 번꼴로 같이 식사하고 평소에 귤을 나눠 먹거나 빵을 만들어 소분해 집마다 걸어두기도 한다.
술을 안 마시는 사람이 와인 선물을 받으면 다른 가구에 선물하고, 꽃을 좋아하는 입주자는 꽃구경하라고 가구마다 꽃을 선물하기도 했다. 초기부터 살던 사람도, 새로 이사 온 사람도 있지만, 두세 번 같이 어울리면 서먹서먹함도 사라지기 마련이다.
입주민들이 자연스럽게 서로 의견을 모아 입주민 규약도 만들었다. 1인가구가 많은 상황에서 타인에게 피해를 줘서가 아닌 동물이 혼자 외롭기 때문에 동물권을 생각해 ‘애완동물을 키우면 안 된다’라는 규약이 탄생했다. 친환경 도시공동체를 추구하는 녹색친구들 입주민다운 생각이다. 옥상에 텃밭도 함께 가꾸고, 얼마 전엔 환경주간 캠페인에도 함께 참여했다.
임씨는 “함께 봉사활동하자는 얘기도 있는데 일단은 영화를 보거나 음악행사를 같이 가며 우리끼리 재밌게 지내고 싶다. 공동체라고 너무 관여하면 싫어한다. 우린 암묵적으로 서로 너무 관여하지도 말고, 모른체하지도 않으면서 알고 지낸다. 경계를 잘 찾아야 한다. 큰 기대를 갖기보다 낮은 수준부터 자연스럽게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녹색친구들창천 입주자들이 함께 가꾸는 옥상 텃밭. 사진/녹색친구들
박용준 기자 yjunsay@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