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칼럼)사소한 이웃의 이야기

입력 : 2021-05-18 오전 6:00:00
우리에게 이웃의 정 같은 게 남아있을 리 없다. 2/3이 아파트에 사는 이 도시에서 더이상 이사떡을 돌리지도,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쳐도 쉽게 인사하지 않는다. 층간소음으로 주차분쟁으로 싸우지나 않음 다행이다. 각 세대가 연결되지 않고 떨어져 있는 ‘외로운 섬’과 같다. 
 
서울 출산율이 어느덧 0.6명대까지 떨어졌다. 요즘 세상에 한 사람이 전업주부를 하지 않는 이상 어린이집에서 해결되지 않는 경우 시가나 처가 찬스를 써야 한다. 반대로 말하면 처가나 시가 찬스가 여의치 않는 경우 어린이집에서 모든 걸 해결해야만 한다. 한 아이를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데 우리 마을엔 이웃은 사라지고 어린이집만 남았다.
 
경기도 남양주에 있는 위스테이 별내는 육아하기 편한 아파트로 유명하다. 입주민들끼리 서로 알고 지내니 직장에 바쁜 일이 있어도 심지어 며칠이나 애를 맡길 수 있다. 최근엔 노인들이 모여 마을택배를 시작했다. 아파트 택배가 사회문제까지 된 마당에 노인들이 나서자 인근 아파트 단지에서도 가입의사를 밝혔다.
 
여기선 입주민들이 논의 끝에 ‘존중의 약속’이란 걸 정했다. 층간소음에 대해선 각 가정에서 밤 10시 이후 생활소음을 주의하고, 민원이 발생해도 직접 공개적으로 ‘저격’하지 말고 관리사무소나 갈등조정위원회에서 해결한다. 만약 사전에 층간소음이 예상될 경우 사전에 양해를 구한다.
 
이외에도 흡연은 단지 외곽에서만 하기, 반려동물은 외출 시 목줄과 배변봉투 지참하기, 승강기에서 인사하기, 재활용품 분리배출 잘하기, 주차구획 준수하기 등이 있다. 하나 하나 따져보면 당연한 것들이지만, 우리가 이웃들과 불필요하게 감정을 상하게 되는 부분들이다.
 
사회주택 녹색친구들창천에 사는 임순형 씨는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3년 전부터 모시게 됐다. 아버지의 치매 증세가 심해지면서 외출했다가 집 비밀번호를 못 누르거나 현관 밖에서 헤매는 경우가 늘었다. 평소에도 입주민들과 함께 식사를 나누며 친분을 쌓아온 덕분에 입주민들이 아버지 사정을 이해해줘 임 씨의 집 비밀번호까지 함께 공유했다.
 
그렇게 임 씨 아버지가 집 밖을 헤맬 때마다 입주민들은 퇴근길에 하교길에 임 씨 아버지를 발견하고 함께 임 씨 집까지 바래다줬다. 추운 겨울 어느 날엔 입고 있던 외투를 벗어 건네고, 임 씨 아버지가 직장인에게 “학교에서 왜 이리 늦게 끝났냐”고 물으면 “오늘은 수업이 늦었다”고 웃으며 답했다.
 
동대문구에 있는 코워킹-코리빙 스페이스 장안생활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장안생활’ 앱을 깐다. 모든 입주자가 앱에서 물건을 사고 팔고 얘기를 나누면서 관계를 맺는다. 새 입주자가 모이면 함께 음식을 만들어 먹으며 환영모임을 한다. 영화, 독서, 따릉이, 요가 등 각자 취미에 따라 시간이 맞는 사람끼리 모여 벙개도 연다.
 
장안생활엔 여성이 절반 넘게 거주한다. 나머진 남성들이지만 이미 관계를 맺은 사람들이니 공포나 불안을 느끼는 대신 안심과 신뢰를 갖는다. 원룸에 살며 현관문을 누가 두드리면 소스라치게 놀라는 것이 아니라 이젠 소리지르면 누가 달려와줄 것 같은 든든함이다. 
 
얼마 전 새로 온 한 입주자는 비오는 날 지하철역에 우산들고 마중나가기 미션에 걸렸다. 며칠 후 고향에 다녀오던 다른 입주자에게 연락이 왔고, 지하철역에 마중 나가 함께 귀가했다. 덕분에 아직 낯선 공간, 낯선 사람들에서 소소한 재미도 생기고 어색함도 한결 덜었다.
 
이웃과 무작정 친해지라고 한다면 그것만큼 부담스러운 일도 없을테다. 누가 사는지 알고, 인사하고, 안부 묻는 정도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냥 그정도로 느슨한 관계, 느슨한 이웃으로도 우리는 많은 위안과 안정을 얻을 수 있다. 그런 사소한 이야기가 원래 삶을 채우는 법이다. 
 
 
박용준 공동체팀장 yjunsay@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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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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