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염재인 기자] 그동안 지속적인 매도세로 개미(개인 투자자)들의 원성을 사던 연기금이 이달 들어 순매수 행보를 보이기 시작했다. 전문가들은 아직까지 뚜렷하진 않지만 연기금이 '사자' 기조로 전환했다는 점에선 중요한 변화라는 평가다. 연기금이라는 하나의 큰 부담 요소가 해소되고 있는 만큼 향후 국내 증시 상승세에 청신호가 켜질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20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연기금은 이달(5월3~18일 기준) 들어 유가증권시장에서 총 573억원을 순매수했다. 그동안 지속적으로 대규모 매도세를 보였던 연기금은 4월 말부터 매도세가 차츰 약해지더니 5월에는 11거래일 중 8거래일을 순매수했다.
한국거래소가 구분하는 투자자 분류상 연기금은 국민연금, 공무원연금, 사학연금, 교직원공제회, 군인공제회, 행정공제회, 우정사업본부, 국가기관 등을 포함한다. 이중 국민연금의 규모가 가장 크다.
지난해부터 올해 초까지 연기금은 일관된 순매도 행보를 보이면서 개인 투자자들로 하여금 국내 증시 상승세의 발목을 잡는 주체로 비판받아 왔다. 실제 연기금은 지난해 12월24일부터 올해 3월 12일까지 역대 최장 기간(52거래일) 순매도 행진을 이어온 바 있다. 이 기간 순매도 규모는 무려 14조4981억원에 달한다.
이런 가운데 국내 증시 상승세에 청신호가 켜진 건 국내 최대 연기금인 국민연금이 국내주식 비중을 변경하면서다. 지난달 9일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는 국내주식에 대한 전략적자산배분(SAA) 이탈 허용 한도를 현행 ±2%포인트에서 ±3%포인트로 1%포인트 확대키로 결정했다.
국민연금의 기금적립금 규모는 지난 2월 말 기준 860조3000억원으로 국민연금의 올해 국내주식 비중 목표는 당초 16.8%였다. 이에 따라 국민연금의 국내주식 최대 허용 범위는 18.8%에서 19.8%로 늘어나게 됐다. 현재 국내주식 비중은 20.9%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연기금의 순매수세 전환이 아직 뚜렷하게 나타나진 않지만 그동안의 '팔자' 기조에서 '사자' 기조로 변화가 생기고 있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는 분석이다. 이에 따라 국내 증시 상승세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연기금의 주식 포지션이 목표와 상당히 괴리가 있었기 때문에 그 괴리를 줄이는 차원에서 계속해서 매도를 진행해 왔다"며 "그동안 오랫동안 매도했던 연기금이 4월 말쯤 되면 매도세가 주춤해지면서 순매수세로 전환하기 시작하는데 이건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본다"고 평가했다.
이어 "연기금의 매도세가 일단락됐고 포지션 조정이 거의 마무리되고 있다는 쪽으로 충분히 해석이 가능하다"며 "지금부터는 연기금이 당분간 중립적인 포지션을 가져갈 가능성이 더 높다고 예상한다. 증시의 굉장히 큰 부담 요소 하나가 어느 정도 해소되면서 향후 주가 상승에 긍정적인 환경으로 바뀌고 있다고 평가해 볼 만하다"고 덧붙였다.
노동길 NH투자증권 연구원은 "2월 국민연금 국내주식 보유 규모는 179조4000억원으로 전체 포트폴리오의 20.9%를 차지한다"며 "자산배분 허용한도 확대에 따라 올해 말 국내주식 목표 비중을 고려할 경우 순매도는 마무리 국면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때문에 "코스피 대형주 위주의 연기금 순매도가 대형주 대비 상대지수 하락에 영향을 미쳤다는 점을 고려하면 일부 되돌림이 가능할 것으로 판단된다"고 예상했다.
다만 최근 부상하고 있는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우려가 국내 증시의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보고 있다. 연기금의 순매수세 전환은 분명 긍정적인 시그널이지만 당분간 인플레이션 이슈가 국내 증시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다.
김호정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현재 시장에서는 올해 3분기 중 테이퍼링(자산매입 축소) 시그널을 제시하고, 오는 4분기부터 테이퍼링을 공식화하는 것으로 컨센서스가 형성되고 있다"며 "테이퍼링 우려는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고 전했다.
황 연구위원도 "연기금의 순매수세 전환에도 불구하고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는 당분간 계속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며 "현재 인플레이션이 유동성을 계속해서 키우는 요소이기 때문에 당장 연기금을 비롯한 기관들이 적극적으로 주식 매수세를 늘리기엔 조금 부담스러운 상황인 건 분명하다"고 언급했다.
그는 "연기금이 중립적으로 변해가는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단기간 내 매수 포지션을 급격하게 증가시킬 가능성은 크진 않다"며 "주가 조정이 상당 기간 이어질 가능성을 염두에 두는 것이 오히려 더 합리적인 판단"이라고 부연했다.
최근까지 지속적인 순매도세를 보였던 연기금이 이달 들어 순매수세로 돌아서면서 국내 증시 상승에 청신호가 켜졌다. 사진은 서울 강남구 국민연금공단 서울남부지역본부. 사진/뉴시스
염재인 기자 yji@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