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사회주택 산다)“미혼자들 모여 실버타운 살아도 좋겠다 싶어요”

쉐어어스 '거성' 사는 구채완씨, 'PD 꿈' 찾아 상경
"'사회적 고립' 가장 걱정 돼 쉐어 하우스 선택"
아늑하고 쾌적한 개인공간에 '가족' 느낄 수 있는 '나눔존'

입력 : 2021-06-28 오전 6:00:00
[뉴스토마토 박용준 기자] “서울에 혼자 살면 사회적으로 고립되진 않을까 걱정했어요. 여기 사람들 덕분에 정도 들고 외롭다고 느끼지 않아요. 우리끼리 나중에 결혼 안 한 사람들 모여서 다같이 실버타운 살자는 얘기도 할 정도에요.”
 
사회주택 사업자 선랩건축사사무소가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 만든 쉐어어스 거성에 지난 3월 입주한 구채완(26·여)씨는 입주 전까진 경남 김해에서 살았다.
 
구씨는 대학 졸업 후 PD라는 꿈을 갖게 됐다. 김해에는 구씨가 원하는 교육기관이 없었고 고민 끝에 서울 상경을 결심했다. 하지만, 낯선 서울살이에 걱정과 공포가 앞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가장 걱정되는 건 범죄도 취업 실패도 아니었다. 사회적 고립이었다.
 
김씨는 “제일 걱정했던 거는 아무래도 사회적으로 고립되는 거였다. 아침에 일어나서 출근하고 학원가고 집에 돌아와도 하루 종일 말 한마디 안하며 살 것 같았다. 서울에 있는데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까봐, 혼자 살까봐, 외롭게 살까봐 걱정이 많았고 그래서 쉐어하우스를 찾아 신청했다”고 말했다.
 
쉐어어스 거성 입주자 구채완씨가 라운지에서 입주자들과 찍은 사진을 들고 있다. 사진/박용준 기자
 
구씨의 솔루션은 탁월했다. 불과 100여일 남짓 지났지만 만족도는 상당히 높다. 학원, 집, 아르바이트로 쉴 틈없이 바쁘게 흘러가는 첫 독립생활이지만, 아침에 잘 잤냐고 물어봐주는 ‘룸메(룸메이트)’도 있고 오가며 마주치면 안부를 묻기도, 끼니를 챙겨주는 사람도 생겼다. 모두 17명의 쉐어어스 거성 입주자들이다.
 
구씨는 “학원 수업 끝나고 혼자 공부하다 나오면 ‘지옥철’을 탄다. 지쳐서 빈 속으로 힘겹게 문을 열면 현관부터 음식냄새가 나면서 웃음소리가 맞아준다. 얼마 전에도 샤브샤브를 먹고 있길래 그냥 옆에 앉아서 얻어먹는데 함께 수다를 떨면서 스트레스가 자연스럽게 풀렸다. 사람들이 맞아주는 풍경이 떠오를 정도로 너무 좋다”고 말했다.
 
구채완씨와 입주자들이 쉐어어스 거성에서 어울리는 모습. 사진/구채완씨 제공
 
쉐어어스 거성은 도림천 큰 길가에 있는 건물 3~4층 고시원을 리모델링했다. 기존 고시원은 방이 44개나 됐지만, 성인 남성이 두 팔을 옆으로 다 뻗을 수 없을 정도로 좁고 곰팡이로 가득해 노숙인들이 주로 이용했다. 선랩은 이 공간을 깔끔하면서도 따뜻한 느낌으로 재탄생시켰다.
 
우선 주거공간이 17개로 줄면서 면적이 15.74~20.81㎡로 늘어났다. 각 방은 최대 5개 방까지 ‘유닛’으로 묶이고 유닛마다 작은 거실과 화장실, 샤워실, 발코니 등이 있다. 유닛 바깥에는 공용부엌과 라운지, 세탁실 등이 있고 옥상에는 근사한 루프탑을 즐길 수 있다. 3층과 4층을 연결하는 내부계단도 만들어 입주자끼리 자유롭게 오갈 수 있다.
 
구씨는 “금요일, 토요일 이럴 때는 약속 없는 사람들이 심심하면 라운지로 하나 둘 나온다. 다같이 맥주 한 잔도 하고, 주방에선 약속을 안 해도 알아서 내려와 각자 잘하는 요리를 해서 다 같이 먹는다. 저는 채식주의자라 샐러드나 우동 같은 건강식을 맡고 있다. 다 같이 떠들 수 있는 공간이 넓어서 좋다”고 말했다.
 
쉐어어스 거성 공유부엌에서 구채완씨와 룸메이트가 저녁식사를 준비하고 있다. 사진/박용준 기자
 
쉐어어스 거성엔 ‘나눔존’이 있다. 각자 필요가 없거나 서로 나누고 싶은 물건이나 음식·식재료 등을 나누는 공간이다. ‘당근’을 찾지 않아도 나눔존은 항상 무언가로 채워져 있다. 식빵이나 양파 같은 소량으로 사기 힘든 거부터 커피 원두나 화장품 등 종류도 다양하다. 덕분에 혼자 살면 엄두도 안 날 수박이나 계란도 문제 없다.
 
각 방이 사생활을 보장하고, 유닛 안에 있는 거실 룸메들과 더 끈끈해지는 공간이라면 공유부엌과 라운지, 루프탑 등은 모든 입주자를 연결한다. 남녀 혼성인 입주자들은 20대 중반부터 30대 초반까지 비슷한 나이대다. 처한 상황도 고민도 다양하면서도 통하는 지점이 많다. 워낙 자주 잘 어울리니 입주자들끼리 ‘가족같다’는 얘기도 나올 정도다.  
 
구씨는 “화기애애한 분위기라 친구도 많이 사귀고 계속 정 붙이면서 오래 살고 싶다. 나가도 연락하고 지내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돈독하다. 같이 한강도 가고 시장 구경도 간다. 운동도 좋아해서 도림천에서 배드민턴이나 러닝을 하기도 한다. 얼마 전부터 따뜻한사회주택기금에서 임대료를 40% 지원받아 덕분에 알바를 줄이는 대신 공부를 더하거나 여기 사람들과 시간을 더 보내고 싶다”고 말했다.
 
쉐어어스 거성 5인 유닛 내부 모습. 사진/선랩
쉐어어스 거성 입주자들이 옥상에서 루프탑 파티를 즐기는 모습. 사진/선랩
 
 
박용준 기자 yjunsay@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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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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