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불위' 군사법 개혁, 정쟁으로 또 표류하나

여당 발의 개정안, 야당 반대로 소위도 못 넘어
야 "전쟁 언제 날지 몰라…헌법 위반 문제도 있어"
군사법원 폐지하려면 헌법 개정 불가피
기득권 가진 군 반발도 만만치 않아

입력 : 2021-06-30 오전 6:00:00
[뉴스토마토 박효선 기자] 공군 성추행 피해자 이모 중사 사망 사건을 계기로 군 사법체계 개혁 문제가 또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참여정부 시절부터 17년간 제기돼온 군 사법체계에 이번엔 매스를 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그간 무위에 그쳤던 군 사법체계를 이번에는 바꿀 수 있을까. 하지만 이번에도 군사법원법 개정안은 여야 정쟁으로 법안심사 소위에서 표류되고 있다.
 
평시 군사법원 재판권 축소 vs 전쟁 발발 가능성
 
현재 국회 각 상임위에는 정부가 제출한 군사법원법 일부법률개정안 등이 계류 중이다. 민홍철, 송기헌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도 군사법원법 개정안을 내놨으나 모두 법안심사소위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우선 정부안이 내놓은 개정안은 △군사재판 항소심을 서울고법으로 이관하고 △부대 소속 검찰부를 폐지하는 대신 국방부 장관 및 군 참모총장 산하 검찰단을 설치하며 △지휘관의 감경권을 보장해주는 '관할관 확인조치권 제도' △일반장교를 재판관으로 임명하는 '심판관 제도'의 폐지 등의 내용을 골자로 한다.
 
민 의원 등의 개정안은 정부안을 좀 더 보완했다. 군사재판 항소심을 특수법원인 군사항소법원으로 이관하고, 1심 담당 보통군사법원을 폐지해 국방부에 각 군 군사법원을 통합한 중앙지역군사법원을 설치하는 내용이 담겼다.
 
기존 장성급 장교 지휘 부대 내 보통검찰부 대신 국방부 장관 및 각 군 참모총장 소속의 검찰단을 설치해 각 부대의 군검사에 대한 구체적 지휘권 행사를 제한하는 내용 등도 포함됐다.
 
군사재판 항소심을 서울고법에 이관하거나, 민간 특수법원인 군사항소법원을 신설하는지 여부 정도가 차이점이며, 개정안의 핵심은 군 수사 및 재판을 '중앙화'하는 방식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군사법원법 개정안’의 조속한 처리를 요청하는 등 정부가 개혁 드라이브를 걸어 이번엔 군사법원법 개정안이 이달 말쯤 법안소위를 통과할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이번에도 거센 반대에 부딪혔다. 여야 합의가 쉽지 않아 보이는 상황에 군의 반발도 만만찮은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민국은 북한과의 휴전 상태일 뿐 전쟁이 언제 발발할지 예측할 수 없고, 무엇보다 헌법 위반의 문제를 야기할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에서다.
 
헌법 110조 1항은 군사재판을 관할하기 위해 특별법원으로 군사법원을 둘 수 있다고 규정한다.
 
제 식구 감싸는 군 사법체계
 
여론은 군사법원 폐지를 요구하며 전반적으로 개정안 통과를 지지하는 분위기다. 현재 전시가 아닌 평시 상황으로 순수 군사 사건이 많지 않다는 점을 감안하면 군사범죄가 아닌 군인들의 성범죄 등 일반 형사범죄는 민간법원에서 재판받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군 사법제도는 군사법원, 관할관, 심판관 등 일반 형사절차와 다른 제도로 운영된다. 일반법원(사법부)은 행정부와 철저히 독립돼 있지만 사법부인 군사법원은 국방부(행정부)에 하에 운영된다.
 
또 일반법원에서 형사절차는 검사, 판사, 변호사에 따라 각각 독립적으로 진행되지만 군사법원에서는 군 검사, 군판사, 국선변호인이 통상 같은 소속에 있다. 게다가 군 판사와 검사가 순환보직으로 운영돼 군 검사를 하다 군 판사로, 군 판사를 하다 군 검사로 이동이 가능하다.
 
성범죄 등 형사 사건에 대한 군사법원의 판결이 장교급에 비교적 관대한 배경이기도 하다.
 
실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송기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군사법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성폭력특별법, 아청법, 성매매특별법 위반으로 재판을 받은 사람 909명 중 징역형을 선고받은 사람은 106명으로 11.66%에 불과했다.
 
이 중 장교신분으로 재판받은 119명 중 징역형을 선고받은 사람은 단 9명(7.56%)이었다. 반면 병사 신분으로 재판에 넘겨진 501명 중 징역형을 선고받은 사람은 70명(13.97%)으로 장교 신분으로 징역을 받은 비율의 2배에 달했다.
 
각급 법원별로 고등군사법원을 제외한 모든 법원에서 징역형을 받은 피고인의 수는 10%도 되지 않았다. 고등군사법원의 경우 282명 중 61명(21.63%)이 징역형을 선고받았으나, 보통군사법원에서는 단 1명도 징역형을 선고받지 않았다.
 
2016~2020년 6월 군사법원 내 성범죄 관련 판결. 제공/송기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또 최근 5년간 군대 내에서 성범죄를 저질러 실형을 받은 비율은 10%대에 그쳤다. 박성준 의원이 국방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5년부터 2020년 6월말까지 군대 내에서 성범죄를 저질러 민간법원의 1심급에 해당하는 각 군의 군사법원으로부터 징역형 이상의 실형을 받은 비율이 △육군 10.3% △해군 10.5% △공군 9.4%에 불과했다.
 
같은 기간 민간인들이 성범죄를 저질러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비율인 25.2%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2015~2020년 고등군사법원 성범죄 처리현황. 제공/ 박성준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군인도 군사법원 보다 일반법원 재판 원해”
 
이에 따라 법조계에서는 군사법원을 축소·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을 싣는다. 군 법무관 출신 이지훈 변호사는 “군 재판의 경우 지휘관의 의중에 따른 판결 편차가 너무 크다”면서 “군사법원을 평시에 유지할 이유가 없을 뿐 더러 군인 입장에서도 군사법원보다 일반법원에서 재판 받는 것이 더 공정하다”고 강조했다.
 
성추행 피해 부사관 사망 사건 관련 부실수사 의혹을 받고 있는 전익수 공군본부 법무실장이 여론에 몰리자 자신의 사건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로 이첩해달라고 요청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 변호사는 “군 형법이 일반 형법 보다 처벌 수위가 센 편”이라며 “오히려 실무에서 보면 피의자 중 행위에 비해 지나치게 센 형량을 받아 억울한 사례도 있었다”고 말했다. 군사법원의 재판권을 가급적 폐지해 재판의 형평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군법무관 출신 신종범 변호사도 “군사법원에서의 형사 재판 절차와 민간법원에서의 절차는 크게 다르지 않다”며 “그런데 군사법원 구조는 지휘관의 의사가 반영될 수밖에 없는 구조로 돼 있다”고 설명했다.
 
신 변호사는 “군 형법에는 벌금형 자체가 거의 없고 처벌 수위가 센데, 재판 과정에서 형량이 감경되는 사례가 문제”라면서 “군사법원법 개정안 통과로 재판의 독립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군법무관 출신 이지훈 변호사는 “헌법상 (군사법원) 폐지는 어려울 수 있다”면서 “지금으로선 군사법원의 독립성 보장이 중요하다”고 했다.
 
간신히 불붙은 군 사법개혁 논의가 금방 사그러들 것이라는 비판적인 전망도 있다. 군 사법개혁을 오랫동안 연구해 온 한 법조인은 "이 중사가 목숨을 던져 제기한 문제지만 대선 시기와 맞물려 더 공론화 되지 못하고 있다"면서 "이 중사의 고귀한 결단이 이대로 묻힐까 안타깝다"고 말했다. 
 
성추행 피해 부사관 사망 사건 관련 2차 가해 의혹을 받고 있는 공군 제20전투비행단 소속 노모 상사가 지난 12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보통군사법원에 열린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들어서고 있다. 사진/뉴시스
 
박효선 기자 twinseve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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