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은행이 스타트업과 같이 일하려면

입력 : 2021-07-08 오전 6:00:00
최근 온라인 플랫폼과 스타트업 벤처기업이 급성장하면서 이른바 '제2벤처 붐'을 맞이하고 있다. 하지만 전통적인 은행이 신용도 낮고 담보 제공이 어려운 스타트업 기업에 돈을 빌려준다는 것은 쉽지 않다. 그렇다고 디지털 경제로의 대전환이 이뤄지고 유니콘 스타트업들이 속속 등장하는데 구경만 할 수도 없는 사정이다. 그렇다면 전통적인 은행은 어떻게 스타트업과 같이 일할 수 있을까.
 
미국 실리콘밸리 지역에 스타트업 벤처기업을 대상으로 벤처부채(Venture Debt) 서비스를 제공하는 실리콘밸리은행(SVB)이 있다. 1980년대 은행원과 교수가 설립한 SVB는 벤처기업, 벤처캐피털 및 사모펀드와 공조하는 사업 모델을 개발해 나스닥에 상장했다. SVB는 에어비앤비, 우버, 트위터 등 유명 스타트업들을 고객으로 유치했고, 2015년 기업공개(IPO)를 한 테크·생명과학 스타트업 중 47%가 SVB와 거래를 할 정도로 성장했다. 
 
구체적으로 SBV는 스타트업 벤처기업을 대상으로 예금, 대출, 외환 등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는 동시에 벤처캐피털 및 사모펀드 벤처캐피털과 관계를 형성하면서 얻게 된 정보를 바탕으로 우수 스타트업 투자 딜을 확보한다. 특히, 뛰어난 벤처캐피털의 투자를 이끌어낸 스타트업은 기술력뿐 아니라 후속 투자 가능성도 높기 때문에 충분한 유동성 확보가 가능하다. 보통 스타트업이 Series A 투자 이후에 후속 투자를 진행할 경우, SBV는 운영자금이나 장비 구입을 위한 자금 대출 서비스를 제공한다. 만일 SBV의 금융 서비스가 없다면 스타트업 기업은 필요 자금을 모두 투자를 통해 받을 경우 지분이 희석되는 문제가 있고, 벤처캐피털은 후속 투자 단계 이전에 회사 가치에 대해 투자 심사를 진행하고 출자를 하는 데 어려움이 있게 된다. SVB는 이런 금융 서비스 수요의 갭 문제를 해결하고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SBV가 벤처부채 리스크를 관리하기 위해 높은 금리를 유지해야 할까. 일반적으로 스타트업은 후속 투자를 유치하는 경우 곧바로 대출한 자금을 상환하므로 SBV는 장기적 채무불이행 위험을 지지 않아도 된다. 게다가 대출 금액의 4~5% 수준의 워런트를 확보함으로써 대출을 한 스타트업이 크게 성장할 경우 투자 수익도 기대할 수 있어 그렇게 높지 않은 수준의 금리를 유지하게 된다. 여기서 워런트란 일종의 신주인수권으로 주식을 미리 정해진 가격에 살 수 있는 권리가 동반되는 증권이다. SBV는 대출을 진행하면서 통상 가장 최근 투자받은 지분의 가격으로 워런트를 갖게 된다.
 
우리나라 스타트업 벤처의 스케일업이 촉진되기 위해서는 벤처부채가 활성화돼야 한다. 스타트업들이 제품과 서비스를 개발하고 시장에 진입한 다음 본격적인 성장을 하는 스케일업 단계에서는 대규모 자금이 필요하다. 자금이 필요한 스타트업 기업은 벤처부채를 통해 지배구조에 대한 걱정 없이 사업을 확대할 수 있고 투자자는 투자한 기업이 급성장해 투자 회수를 빠르게 할 수 있다. 한편 은행은 신산업에 대한 대출을 할 수 있어 고객 포트폴리오를 다양화하고 자산수익률도 개선될 수 있다. 
 
그런데 벤처부채를 위해 워런트를 발행하는 것은 현행 우리나라 상법상 제3자에 대한 신주인수권 발행에 해당해 기존 주주의 신주인수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향후 무효로 판단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므로 스타트업을 위한 자금 조달의 후속 투자를 조건으로 워런트를 인정하는 법제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현재 미국은 대형 상업은행, 캐피털사, 벤처캐피털 펀드 등에서도 적극적으로 벤처부채를 이용해 모험자본을 공급하고 있다.
 
물론 벤처부채가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스타트업들은 경기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자금시장이 경색될 경우 후속 투자가 진행되지 않을 수 있다. 또한 지나친 부채는 후속 투자의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IT 버블이 붕괴되던 시절에 벤처 관련 도덕적 해이가 있었던 것처럼 리스크 관리가 잘못된다면 금융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다. 
 
벤처부채는 모험 자본 시장에 민간자본이 투입될 수 있게 하는 매우 중요한 장치가 될 수 있다. 벤처부채를 통해 스타트업들은 재무적인 선택권이 확장되고 은행은 투자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할 수 있게 된다. 전통적인 금융기관들이 스타트업, 벤처캐피털, 사모펀드와 함께 일할 수 있도록 모험자본 시장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가 시급하다.     
 
전성민 가천대 경영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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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응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