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지영 기자] 현대중공업 노조가 전면 파업 과정에서 31년 만에 크레인을 점거하는 등 초강수를 두면서 노사 대립각이 첨예해지고 있다. 이번 파업의 참여 인원과 생산 손실 규모 등에 대해 노사가 각각 다른 주장을 펼치는 가운데 사측은 불법 행위에 대해 법적 책임을 묻겠다며 강경한 태도를 고수 중이다. 갈등이 깊어지면서 2019년 회사 분할 때처럼 물리적 충돌까지 빚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7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중공업 노조는 전날에 이어 이틀째 크레인 점거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전날 오전 9시께 크레인에 오른 조경근 현대중공업 노조 지부장은 "경영진이 공정한 분배를 했더라면 고공농성을 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라며 "이 순간부터 죽음을 각오하고 투쟁하겠다"고 말했다.
노조가 점거한 턴오버 크레인은 판넬공장 앞에 있는 선박 블록을 뒤집는 데 사용한다. 높이는 약 40m에 달한다.
현대중공업 노사는 2019·2020년 임금과 단체협약을 3년째 진행 중이지만 기본급 인상 등을 두고 좀처럼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최근 노조가 추가 제시안을 전달했지만 사측이 이를 거부하면서 노사 갈등은 극에 치달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노조는 이에 따라 전날부터 오는 9일까지 매일 8시간씩 전면 파업을 한다는 방침이다.
노사가 대립하면서 파업 진행 상황과 과정을 두고도 주장이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 노조는 전날 파업 참여 인원을 약 800여명이라고 밝힌 가운데 사측은 400여명에 그친다고 추산했다. 다만 현대중공업 노조원이 8000~9000명 수준인 점을 고려하면 노조의 주장이 사실이더라도 참여율은 10%를 밑돈다.
현대중공업 노조가 6일 2년 치 임단협 마무리를 촉구하며 전면파업에 돌입한 가운데 일부 조합원들이 울산 본사 턴오버 크레인을 점거한 뒤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 사진/뉴시스
아울러 노조는 이번에 점거한 턴오버 크레인의 경우 조선소 내에 2기밖에 없어 생산에 큰 타격을 입힐 것으로 관측하고 있지만 사측의 입장은 다르다. 블록을 뒤집는 일은 꼭 턴오버 크레인이 아니더라도 다른 장비가 대신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생산 라인을 멈추면 전 공정이 작업을 중단해야 하는 자동차와 달리 조선소는 크레인 한 기가 멈춰도 이를 제쳐두고 다른 일을 하면 된다"며 "파업이 장기화하지 않는 한 하루 손해액을 추산하기도 쉽지 않은 일"이라고 말했다.
다만 사측은 노조의 크레인 점거에 대해 생산 타격이 크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하면서도 내심 긴장하는 분위기다. 이를 불법행위라고 규정하고 향후 법적 책임을 묻는다며 강경 대응에도 나섰다. 사측은 크레인 점거 농성의 경우 노조법 제38조 '정상적인 업무를 방해하는 형태의 쟁의행위를 금지하는 조항'을 위반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사측이 노조의 파업에 강경한 입장을 보이면서 2019년 법인 분할 과정에서 빚어진 물리적 충돌이 다시 한번 반복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커진다.
현대중공업 노조는 법인 분할을 막기 위한 투쟁 과정에서 주주총회장 점거와 함께 기물을 파손해 사측과 소송전에 휩싸인 바 있다. 당시 사측은 노조를 상대로 90억원대 소송에 착수하고 파업에 참여하거나 폭력 행위를 한 조합원 1300명가량에 정직 등의 처분을 내렸다. 손해를 끼친 정도가 심각하다고 판단한 4명에 대해선 해고 조치를 하기도 했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일방적인 요구 사항을 관철하기 위해 크레인을 점거하고, 방역수칙을 위반하는 등 시대착오적인 불법 행위에 대해 엄중히 책임을 물을 방침"이라고 밝혔다.
김지영 기자 wldud91422@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