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용준 기자]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에서 혐오를 부추기고 있다. 남혐·여혐·세대 가릴 것 없이 사회적 갈등을 증폭하는 혐오 언어를 사용하며 편가르기에 악용하고 있다.
대선판에서 검증이란 명목으로 상대방에 대한 공격을 일삼는 일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번 대선정국은 상대방에 대한 비방을 넘어 각종 사회적 이슈를 당리당략 차원에서 이용해 유권자에게 혐오를 조장하는 모양새다.
‘건강한 페미니즘’, ‘안산 선수 남혐 논란’, ‘쥴리 벽화’ 등 최근 정치권을 휩쓴 각종 이슈에는 여야 가릴 것 없이 대권 주자부터 당 대변인, 국회의원들까지 입을 열고 있다. 모두 후보 검증보다는 혐오 코드를 품고 있는 이슈다.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인 유승민 전 의원과 같은 당 하태경 의원의 '여가부 폐지' 발언이 대표적 사례로 지목된다. 유 전 의원은 지난달 6일 자신의 SNS를 통해 "여성가족부가 과연 따로 필요한가. 인구 절반이 여성이고 정부 모든 부처가 여성 이슈와 관계있다"고 주장해 '젠더 갈등' 논란을 키웠다. 하 의원도 같은 날 국민의힘 의원과 청년 정치인 모임인 ‘요즘것들연구소’ 시즌2 출범식에서 "현재 여가부는 사실상 젠더갈등조장부가 됐다"며 가세했다. 이준석 국민의힘 당대표 역시 개인 의견임을 전제했지만 유 전 의원 등의 주장에 힘을 실어 논란을 더욱 가속화했다.
유 전 의원 등의 발언은 여성가족부 해체, 여성 할당제, 남녀평등복무제 등도 정책적인 성격을 띄고는 있지만, 모두 MZ세대를 남성과 여성으로 갈라놓는 이슈들이라는 지적이다. 성평등이나 세대 갈등을 건강하게 논의하고 토론해 해법을 찾기보단 서로를 대립시키고 멀어지게 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야권 유력 대선 후보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최근 발언도 문제가 되고 있다. 윤 전 총장은 지난 2일 국민의힘에 입당한 후 초선 의원 공부모임에 참석해 "페미니즘이라는 것도 건강한 페미니즘이어야지, 정권을 연장하는 데 악용돼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며 "페미니즘이라는 게 너무 정치적으로 악용돼 남녀 간의 건전한 교제도 정서적으로 막는 역할을 많이 한다는 이야기도 있다"라고 밝혔다. 이에 건강한 페미니즘의 기준을 남성적 관점의 주관적 잣대로 재단했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2019년 3월14일 ‘정치하는엄마들’ 회원들이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혐오·차별 프로젝트 ‘핑크 노 모어’ 캠페인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국민들은 정치인들의 '혐오 갈등 군불 지피기'를 우려하고 있다.인권위가 지난 2019년 실시한 혐오표현에 대한 국민인식조사에서 국민 10명 중 6명(58.8%) 가까이는 정치인이 혐오표현을 조장한다고 응답했다. 이런 문제인식을 바탕으로 인권위는 국회의장에게 국회의원 윤리강령 및 국회의원 윤리실천규범에 혐오 표현 예방·대응에 관한 사항을 규정하는 방안을 모색해줄 것을 권고했다.
인권위는 “일반적으로 정치인과 같은 공인의 혐오 표현은 더 넓게, 더 빠르게 전파될 가능성이 있고 그 파급효과도 더 크다”며 “특히 국회의원과 같은 정치인은 공직자 신분을 가지므로 공무 수행 과정에서 이들의 표현 행위가 특정 집단의 존엄성을 침해하거나 공론장을 왜곡하는 형태로 행해져서는 안 된다”고 밝힌 바 있다.
앞선 인권위 조사에서는 정치인의 혐오표현 조장 유형으로 출신지역 혐오가 가장 많고 여성·성소수자·이주민 등이 뒤이었지만, 서울시장 재보궐선거를 전후해 20대를 겨냥한 젠더 혐오가 급증한 양상이다. ‘이대남’이란 신조어까지 탄생시킨 야당은 20대 여성보다 20대 남성을 끌어안는 데에 초점을 맞추는 모습이다. 여당은 20대 여성을 기본적으로 안으면서 20대 남성까지 포괄하는 전선을 구축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종훈 시사평론가는 “정치적으로 이득이 된다면 숟가락을 얻는 본능이 작동하는 것”이라며 “집토끼를 잡고 산토끼를 어떻게 갈라먹느냐로 MZ세대의 표심 공략을 하는 건데 서로 방향성의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정치인의 혐오 표현이 갈수록 과열되는 것과 달리 실제 유권자 유입이나 부동층 장악 같은 실체적 효과로 이어질까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젠더 혐오든 세대 혐오든 MZ세대는 남성과 여성으로만 갈리지 않고 경제적 상황이나 일자리 유무 등 복합적 요인에서 지지자를 결정할 확률이 높다.
게다가 혐오 관련 이슈들은 첨예하게 대립되는 성격을 띄기 때문에 정치인들이 설화에 휩싸이며 역풍을 맞기 쉽다. 전문가들은 지나친 혐오 이슈에 몰두하는 것보다 젠더나 세대 관련 정책을 개발하는 게 효과적이라고 조언한다.
이 시사평론가는 “편 가르기 발언도 이제 국민들이 가려서 듣는다”며 “특히 근거 없는 네거티브는 과거에 비해 민감하게 반응을 보이지 않고 무시한다. 기성정치인들은 그 변화를 아직 잘 인지를 못하고 보수·진보 가릴 것 없이 반복하는 것이 한계”라고 강조했다.
박상병 인하대 정책대학원 교수는 “20대들이 아무리 이기적이라고 하더라도 혐오를 부추기는 나쁜 정치에 휘둘리지는 않을 것”이라며 “국민의 통합을 견인해야 할 정치가 분열을 가중시키고 혐오를 부추기다 오히려 역풍을 맞을 수 있다. 20대도 사는 지역, 학력, 경제력 등으로 분화된 상황에서 타겟을 세워 정책과 공약으로 풀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2017년 8월6일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서 열린 여성혐오 살인 사건 공론화 집회. 사진/뉴시스
박용준 기자 yjunsay@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