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생회사 LG에너지솔루션에서 비보가 끊이지 않는다. 최근 <뉴스토마토> 보도에 따르면 미국 발전사 비스트라가 캘리포니아주에서 가동 중인 에너지저장장치(ESS) 시설이 화재 우려로 정지됐다. 가동한 지 3주도 채 안 된 상태였다. 여기에는 LG엔솔의 신형 ESS 배터리 제품이 공급됐다.
지난 7월 말에는 미국의 자동차회사 제너럴모터스(GM)가 2017∼2019년에 생산된 볼트 전기차 6만9000대를 리콜하기로 했다. LG엔솔의 배터리를 탑재한 볼트 전기차에서 발생한 자동차 화재 때문이다.
GM은 이어 지난달 20일 10억달러를 들여 전기차 '쉐보레 볼트' 7만3000대를 추가 리콜한다고 밝혔다. 미국과 캐나다에서 팔린 2019∼2022년형 모델이 대상이다. GM은 배터리 공급업체인 LG로부터 리콜 비용을 받아낼 방침이라고 한다.
테슬라가 호주 빅토리아주에 설치한 초대형 ESS '메가팩'에서도 대형 화재가 일어났는데, 여기에도 LG엔솔(분사 전 LG화학)과 파나소닉 원통형 배터리가 공급됐다. 이밖에도 최근 몇 년 사이 LG엔솔 제품에서 일어난 화재 사건은 일일이 다 나열하기도 어렵다.
LG엔솔은 현재 국내에서 1위의 전기차 배터리 생산업체다. 세계적으로도 중국의 CATL과 선두 다툼을 치열하게 벌이고 있다. 국내에서는 경쟁기업으로 삼성SDI와 SK이노베이션이 있지만, 규모 면에서 아직 비교가 안 된다.
그렇지만 시가총액은 삼성SDI와 엎치락뒤치락한다. 종전에는 LG엔솔의 모회사인 LG화학의 시가총액이 훨씬 컸지만, 지금은 뚝 떨어졌다. 맏형 같은 회사로서는 체면을 구긴 셈이다.
이런 수모의 이유는 결국 국내외에서 잇따라 일어나는 사고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각종 사고로 LG는 적지 않은 금액을 배상금으로 물어내거나 대손충당금으로 묻어둬야 한다.
지난달 10일에는 쉐보레 볼트의 리콜 충당금으로 LG전자와 함께 총 3256억원을 설정했다. 지난 3월 현대차가 코나 EV 등 8만여대의 리콜 비용 70%도 LG엔솔이 짊어져야 한다.
지금까지 워낙 여러 곳에서 사고가 일어났으므로 충당금이나 배상금 부담규모는 더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어쩌면 다른 곳에서 벌어들인 이익금이 모두 사고 뒤치다꺼리하느라 새 나갈지도 모른다.
숫자보다 더 중요한 것은 품질 신뢰다. 품질에 대한 신뢰와 명성마저 치명타를 입게 될지도 모른다. 한마디로 구매자가 제품을 믿고 사기가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기세 좋게 LG화학으로부터 독립한 LG엔솔은 초반 신뢰를 얻는 데는 실패한 것 아닌가 한다. 앞날에 대한 우려도 금할 수 없다. 10월로 예정됐던 코스피 상장도 연기됐다. 아마도 연내 상장은 불가능할 것 같다.
<뉴스토마토> 보도를 다시 인용하자면, 업계에서는 LG엔솔의 사업 초기 공격적 수주 전략이 리스크로 반전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시장을 선점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안정된 품질을 확보하는 데는 소홀했다는 지적이다.
진실로 무엇이든 조급하면 나중에 대가를 치르는 법이다. 잘못된 길을 서두르면 서두를수록 그 후유증은 더 크다.
LG엔솔의 요즘 모습을 보면 과거 LG카드의 비극이 떠오른다. LG카드는 2000년대 초반까지 국내 전업카드사 1위를 달리고 있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정부의 내수회복 드라이브에 편승해 매출과 이익이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그렇지만 신용카드를 '묻지마 발행'하는 등 부실하게 경영했다. 그 결과 LG카드는 이카로스처럼 추락했다.
지금 LG엔솔이 LG카드의 경우와 똑같은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업계 1위라는 욕심과 즐거움에 취한 나머지 기본을 소홀히 했다는 점에서는 다를 바 없어 보인다.
LG엔솔은 막강한 역량을 가진 제조업체로서 과거의 LG카드보다는 훨씬 튼튼해 보인다. 그렇지만 품질 의구심을 야기하는 사건이 계속 일어난다면 앞날은 정말 알 수 없다.
저주하는 것이 아니다. 옛 철인의 말씀처럼, 잘못이 큰 만큼 두려움이 클 뿐이다. 그런 두려움이야 물론 기우로 끝나야 한다. 그러려면 LG엔솔이 지금이라도 스스로를 철저히 되돌아보고 쇄신할 것이 있으면 확실하게 쇄신해야 한다.
차기태 언론인(folium@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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