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신태현 기자] 논란의 중심에 선 대학 구조개혁 정책, 대학기본역량진단의 판을 다시 잘 필요가 있다는 점은 정부부터가 인정하고 있다. 교육부는 현 진단 결과를 수정하지 않겠다면서도 대학협의체, 국회 등의 추천을 받고 꾸릴 별도 협의기구에서 진단제도 개선을 논의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에 대해 교육부 관계자는 "정책 방향을 어떻게 가져야 할지 대해 '처음부터' 논의하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소송전까지 불사하겠다는 대학 중 일부도 참여를 고민하고 있다. 수도권의 A사립대 관계자는 "협의체가 만들어진다면 당연히 가능한 범위 내에서 적극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학들은 일정 수준의 '커트라인'을 통과한 대학인데도 일반재정지원을 전혀 제공하지 않는 기조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즉 일반재정지원은 산학협력이나 지역특화사업 같이 특수한 목적을 띤 사업이 아니라 말 그대로 보편적인 성격의 지원 정책인데도, 현재 교육부는 부실대학이 아닌 대학들까지 지원에서 배제하고 있다는 것이다. 4년제 대학 관련 단체인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 52개 대학 총장단은 미선정 대학에게도 차등 지원을 촉구한 바 있다.
일부 대학은 지원받을 수 있는 커트라인 기준을 대교협의 기관평가인증제로 잡기도 한다. 기관평가인증제는 관련 법률에 따라 대교협이 주기적으로 시행하는 대학 평가다.
아예 일반재정지원에 있어서 성과 중심 평가 비중을 대폭 낮추고 평가 없는 지원을 늘리자는 제안도 나온다. 임은희 대학교육연구소 연구원은 "어떻게 평가 지표를 짜든간에 성과 중심 평가를 유지하는 한 평가 공정성, 획일성에 대한 문제는 계속 지적되고 답이 나오지 않을 것"며 "심지어 정량 평가도 조작이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국민권익위원회는 지난해 11월 교육부에 '대학 기본역량 진단' 공정성 제고를 권고하면서, 교육부가 정량 지표인 신입생 충원율을 평가할 때 중도탈락률을 제대로 잡아내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일부 대학들이 교직원 친인척이나 입학 의사가 없는 '허위 입학생'을 입학시킨 뒤 진단이 끝나고 등록을 취소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권익위는 신입생 중도탈락률이 정상 범주를 벗어난 경우 최대 1.5점까지 감점하라고 개선안을 제시했으나 교육부는 2019년 발표된 지표에 미처 반영하지 못해 차기 진단에서 반영 여부를 타진하고 있다.
성과 중심 평가를 벗어나서 지향할 수 있는 모델로는 일본이 거론된다. 한국처럼 사립대 비중이 70~80%인데다 대학의 등록금 의존도도 상대적으로 높기 때문이다. 일본은 1971년 제정된 사학조성법에 따라 지원금의 90%를 학생과 교원 수에 따라 일반재정지원 형태로 경상비 등을 제공하고 나머지 10%를 특수목적으로 지원한다.
임 연구원은 "지원 안해줄 경우 대학은 어려운 재정 여건상 등록금을 인상해야 한다"며 "재정이 쪼그라들게 되면 학생에 대한 투자가 안되고 교수 급여가 깎이는데다, 비정규직을 채용하게 돼 고등교육의 질적 저하로 이어진다"고 경고했다.
지원을 대폭 늘릴 경우 정원 감축과 재정 지원을 연계하고, 관리 감독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문도 있다. 임 연구원은 "한국은 대학이 많은 게 아니라 대학생이 많은 것"이라며 "전체 정원 감축을 20%로 잡고 10% 차감분에 해당하는 수입을 재정지원하는 방안을 제안한다"고 말했다. 이어 "임금 체불, 교수 비정년 트랙, 부채 등에 대한 관리감독 강화도 병행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김태훈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위원회 부위원장도 "일반재정지원에서 선정과 미선정을 구분했다고 학령 인구 감소에 대처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지 않는다"며 "현 체제처럼 정원 감축 등 대학 구조개혁을 대학 자율에만 맡기면 안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부가 재정 투명성, 공공성, 대학 서열 완화 등 안을 제시하고 수용하는 대학의 재정을 전향적으로 책임질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지난달 27일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서울 중구 한국장학재단 서울사무소 대회의실에서 열린 청년 학비부담 완화 및 대학 일상회복을 위한 대학생과의 간담회에 참석해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교육부
신태현 기자 htenglish@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