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유라 기자] 대만 반도체업체 TSMC는 영업비밀을 제출하라는 미국의 요구에 응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영업비밀을 넘길 경우 고객사와의 관계가 틀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이유로 업계 전문가는
삼성전자(005930),
SK하이닉스(000660)도 영업비밀을 제출하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5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미국 상무부는 다음달 8일까지 삼성전자, 대만 TSMC, 인텔 등 글로벌 반도체 제조업체에 재고, 주요 생산제품, 핵심 고객사와 고객사별 매출 등 민감한 영업비밀을 요구했다.
주요 반도체 공급업체들이 아직 공식 입장을 밝히지 않은 상황에서 TSMC는 미국 상무부 요구에 응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대만 국가발전위원회 NDC(National Development Council)는 지난달 30일 보도자료를 내고 "TSMC는 개별 고객의 영업비밀을 공개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제조업체들은 영업비밀을 제출하라는 미국의 무리한 요구에 응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TSMC 전경. 사진/TSMC
TSMC는 미국이 반도체 공급망을 자국 중심으로 재편하려는 움직임에 대해 불편한 기색을 드러낸 적이 있다. TSMC를 만든 장중머우 창업주는 "미국은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을 장악하려 하면 안된다"며 "전 세계 반도체 교역은 자유와 평등을 기반으로 해야 한다"고 천명했었다.
특히 TSMC가 자료제출을 거부한 것은 미국의 IT업체 애플 등 주요 고객사와의 관계를 염두에 둔 결정으로 풀이된다. 파운드리 대표 업체인 TSMC가 제출 거부 의사를 밝히면서 향후 다른 반도체 제조업체도 어떤 입장을 낼지 주목된다.
이 사안에 대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최대한 말을 아끼는 분위기다. 이석희 SK하이닉스 사장은 지난달 28일 열린 '반도체 연대·협력 협의체' 출범식에서 "글로벌 반도체 회사는 다 해당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관보에 올라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내부적으로 검토를 해봐야 한다"고 밝혔다.
삼성전자는 조만간 20조원 규모의 미국 제2파운드리 공장 부지를 결정할 계획이다. 현재 후보지와 세제혜택 등 인센티브에 대해 협상하고 있다. 미국의 요구에 고심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미국은 자발적 제출을 요청했지만 제출하지 않았을 경우 강제력을 동원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삼성전자 평택 반도체 공장 전경. 사진/삼성전자
하지만 일각에서는 아무리 미국이라도 반도체 업체들이 강하게 반발하는 사안을 밀어붙이기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박사는 "반도체는 여러 산업과 경제적 시너지가 크기 때문에 미국이 반도체 업체들에게 제재를 가한다면 국제적 여론이 악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안기현 반도체산업협회 전무는 "미국 정부 차원에서 영업비밀을 요구했는데, 이런 식이면 한국이나 중국 정부 역시 반도체 업체들에게 같은 요구를 할 수 있는 것 아니겠나"라며 "이는 산업의 질서를 깨트리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렇다 보니 반도체 업체들은 영업비밀을 제출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김양팽 박사는 "인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생산량이 많은 업체들은 영업비밀을 제출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며 "미국이 어떤 조치를 들고 나올지 모르지만 그렇다고 업체들이 나서서 영업비밀을 먼저 내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최유라 기자 cyoora17@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