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이재명은 누구?…'소년공'에서 '여당 대선후보'까지

만12세부터 공장 노동…굽은 팔·후각 마비 등 후천적 장애
검정고시로 대학 진학, 사시도 패스…인권변호사 활동하다 정계 입문
정동영 지지하며 친노와 대립…시장·도지사로 '사이다' 존재감

입력 : 2021-10-10 오후 6:21:12
 
[뉴스토마토 권새나 기자] 10대 대부분을 소년공으로 전전한 소년이 있었다. 주경야독으로 검정고시를 통과, 가까스로 대학에 입학한 뒤 사법고시까지 패스했다. 가난과 장애를 딛고 성장한 소년은 인권 변호사가 돼 시민사회 활동에 뛰어들었다. 이후 정치에 입문, 우여곡절 끝에 재선 성남시장과 경기도지사가 됐다. 역경에 굴하지 않고 끊임없이 도전한 이 소년은 이재명이다. 그는 내년 3월 20대 대통령선거에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나선다.
 
이재명은 1963년 경북 안동 산골에서 9남매 가운데 일곱째로 태어났다. 삼계국민학교(현 삼계초등학교)를 졸업한 직후인 1976년 가족들과 함께 생계 마련을 위해 경기도 성남시로 이주했다. 찢어지게 가난한 살림살이가 도시로 왔다고 형편이 나아질 리 만무했다. 만 12세 소년 이재명은 학교 대신 공장으로 출근해야 했다. 그는 한 목걸이 공장에서 황동선을 납과 염산으로 땜질하는 작업을 했다. 그는 저서 <이재명의 굽은 팔>에서 "납과 염산에 얼굴을 묻고 살았다. 납 같은 게 몸을 얼마나 상하게 하는지 알지 못했다"고 적었다.
 
이후 이재명은 수많은 공장을 전전했다. 그 과정에서 굽은 팔이라는 '후천적 장애'를 갖게 됐다. 기계의 고무벨트에 왼손이 감겨 왼쪽 중지가 으스러졌고, 프레스에 왼손이 눌렸으나 제때 치료받지 못해 뒤틀려 버렸다. 오리엔트시계 공장에서 일할 때는 화학약품에 후각이 마비, 지금까지도 냄새를 잘 못 맡는다.
 
공장에서 구타도 당했다. 하지만 가난한 집안 형편은 그를 소년공에서 해방시켜 줄 수 없었다. 그의 모친은 성남의 화장실에서 청소하고 휴지를 파는 일을 했다. 그는 후일 이 시기를 떠올리면서 "가방 메고 학교 가는 또래들이 그렇게 부러웠다"고 했다. 하지만 한편으로 이 시절은 이재명에게 자양분으로 작용한다. 당시 경험한 불평등과 부조리, 가난으로 인한 결핍은 그가 '공정세상 구현'을 외치는 정서적 근거가 됐다.
 
SBS '집사부일체'에 출연해 과거를 회상하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주자. 사진/SBS 집사부일체
 
소년 이재명의 탈출구는 공부밖에 없었다. 정식으로 학교를 다닐 여건이 안 된 그는 중학교와 고등학교 검정고시를 준비했고, 시험을 통과했다. 이재명은 사석에서 "검정고시를 준비할 땐 잠을 쫓기 위해 책상에 압정을 뿌려놓으며 공부했다"고 할 만큼 독했다. 그 결과 등록금 면제와 생활비 20만원을 조건으로 중앙대 법대에 입학했다. 이재명은 대학에 입학할 때도 "교복을 입어보는 게 소원이라서 남들은 안 입는 대학 교복까지 구해서 입학식에 갔다"고 말했다. 이재명은 다시 공부에 매진, 1986년 사법고시에 합격한다.
 
이재명은 처음엔 판·검사 임용을 희망했다. 가난의 한을 풀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당시 인권변호사였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강의를 듣게 된다. 이때 이재명은 '판·검사를 안 해도 변호사로 살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에 '노동자 도시' 성남으로 내려와 인권변호사 길을 걷는다. 그리고 1989년부터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에서 활동하고, 1995년 성남시민모임 창립에 참여하면서 본격적으로 시민운동에 발을 들였다. 이재명은 2002년 분당 파크뷰아파트 특혜 분양 사건을 파헤치는 과정에서 '검사를 사칭했다'며 구속되기도 했다.
 
이재명이 정치 입문에 대해 직접적으로 마음을 먹게 된 계기도 시민운동가로 활동하던 경험에서 비롯됐다. 이재명은 2004년 성남시립의료원 건립 운동을 벌였는데, 주민 2만명의 동의를 받았음에도 시의회 반대로 의료원 건립이 좌절되는 아픔을 겪었다. 이재명은 "시민들을 위한 공공의료원 하나쯤은 만들어야겠다는 각오로 정계 입문을 결심했다"고 했다. 그리고 2005년 열린우리당에 입당하자 마자 성남시장 출마 의사를 표명했다. 2006년 민선 4기 지방선거에서 공천을 받아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이재명은 정치 입문 초창기인 2007년 17대 대선을 앞두고는 이상호 전 민주당 부산 사하을 지역위원장 등과 함께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를 지지하고 나섰다. 이재명은 정 후보 지지단체인 '정통(정동영과 통하는 사람들)'의 공동대표까지 맡았다. 하지만 이때 겪은 일은 두고두고 이재명의 정치인생에서 발목을 잡는다.
 
우선 일명 '박스떼기'로 불리는 부정 경선 논란이다. 정 후보 측이 유령 선거인단의 명부를 박스째로 실어나르며 선거인단으로 동원했다는 의혹이다. 부정 경선 논란을 놓고는 손학규 후보 캠프 등과 여러 건의 법적 분쟁도 벌어졌다. 정통 대표인 이재명은 박스떼기를 주도했다는 의혹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또 하나는 정 후보의 노 대통령에 대한 공개적이고도 직접적인 비난이다. 정 후보는 참여정부에서 통일부 장관까지 역임하는 등 황태자로 불렸다. 그런데 노 전 대통령이 임기 막판 지지율 추락 등 정치적 위험에 처하자, 가차없이 등을 돌렸다. 이 비난에 이재명도 동조했고 가세했다. 친노와의 첫 악연이 이 때 빚어졌다. 결국 정 후보는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에게 참패했고, 다시는 민주당 주류로 복귀하지 못했다. 정 후보를 도운 이재명 역시 이 일로 친노 눈밖에 났다. 이는 14년이나 지난 지금까지도 노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강성 친문 등이 이재명을 비토하는 이유로 작용한다. 
 
이재명은 2008년 총선에서 통합민주당 후보로 도전했으나 또 떨어졌다. 그러나 굴하지 않고 도전을 계속, 2010년 성남시장에 당선됐다. 이후 전국 지방자치단체 중 최초로 모라토리엄(채무불이행)을 선언하면서 화제를 모았다. 2014년 재선에 성공한 뒤에는 기본소득을 주창, '스타 시장'으로 떠오르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으로 불거진 대장동 개발사업도 이재명이 성남시장 때 추진한 일이다. 이재명은 대장동 개발이익 중 5500억원을 환수한 것을 자신의 최대 치적으로 소개했다. 민간사업자의 부동산 개발이익 독점을 막고, 그 절반을 시민 몫으로 환수했던 모범적 사업이자, 칭찬받을 일이란 게 이재명 주장이다.
 
그로부터 6년여가 흐른 이번 민주당 경선에서 이재명은 과거 측근이었던 유동규 전 경기관광공사 사장이 대장동 개발 사업 관련해 배임, 뇌물 혐의로 구속되면서 정치인생 최대 위기에 봉착했다. 국민의힘은 '대장동 의혹은 이재명 게이트'라며 압박하고 나섰다. 이에 대해 이재명은 유 전 사장 측근설을 적극 부인하며 연결고리 차단에 나섰다. 또 개발이익 환수제 전면 도입을 통해 부동산 불로소득을 환수하겠다고 했다. 
 
2017년 1월23일 이재명 성남시장이 성남시 오리엔트시계 공장 앞 마당에서 2017년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출마를 선언했다. 사진/뉴스토마토
 
이재명은 2016년엔 박근혜정부의 지방재정 개혁 추진을 정면으로 비판하면서 광화문에서 단식 투쟁에 나서기도 했다. 같은 해 11월에는 박근혜 국정농단 와중에 탄핵을 가장 먼저 주장하는 등 돌직구 행보와 사이다 발언으로 대선주자 반열에 올랐다. 2017년 민주당 대선 경선에 뛰어들어 3위를 기록했다. 이변이었다.
 
이재명은 2017년 경선에서 낙선했지만, 무명의 변방 장수에서 차기 대선주자로 인지도를 높이는 데 성공한다. 특히 당시 그가 주창한 공정한 나라를 만드는 대여정의 시작, 이재명식 뉴딜 성장정책으로 함께 잘 사는 경제, 기본소득 100만원 지급과 국민 95%가 혜택을 보는 국토보유세 신설, 국민발안제와 국민소환제, 국민투표제 등 직접민주주의 도입 등은 국민들의 이목을 끄는 효과를 거뒀다.
 
공정을 주요 정책 아젠다로 제시, 차후 정치 행보를 대비할 자산을 얻은 그는 2018년 지방선거에 도전, 16년 만에 진보진영 경기도지사에 올랐다. 이재명은 경기도정을 이끌면서 기본소득을 비롯해 기본금융, 기본주택, 기본대출 등 기본시리즈 정책 어젠다를 구체화했다. 도지사 재임 최대 위기였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도 2020년 7월 대법원에서 무죄 취지 판결을 받아냈다. 이후 이재명의 지지율은 고공행진했다.
 
경기도지사의 성과를 바탕으로 대선 재도전에 뜻을 굳힌 이재명은 지난 7월1일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그는 출마선언문에서 "정치적 후광, 조직, 돈, 연고 아무 것도 없는 저를 응원하시는 것은 성남시와 경기도를 이끌면서 만들어낸 작은 성과와 효능감 때문일 것"이라며 "실적으로 증명된 저 이재명이 대한민국을 위해 준비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 새로운 대한민국, 더 나은 국민의 삶으로 반드시 보답하겠다"고 했다.
 
이재명의 이력에 민심과 당심은 호응했다. 마침내 흙수저, 비주류라는 꼬리표에도 거침없는 행보로 뚜렷한 성과를 보여준 이재명은 대한민국 정치 대세가 됐다. 그리고 민주당 경선에서 과반 승리로 대선후보가 됐다. 1987년 체제 이후 최초의 국회 경험이 없는 0선 집권여당 대선후보다.
 
더불어민주당 대선주자인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지난 7월 온라인을 통해 제20대 대통령 선거 출마를 선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권새나 기자 inn1374@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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