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정해훈 기자] 화재를 진압하다가 상처를 입어 치료를 받던 중 발생한 질병으로 극단적 선택을 한 것도 위험직무순직에 해당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소방공무원 A씨의 유족이 인사혁신처를 상대로 낸 위험직무순직 유족급여 청구 부지급 결정 처분 취소 청구 소송에 관한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24일 밝혔다.
재판부는 "A씨가 화재 진압 업무를 수행하던 중 발생한 사고로 부상한 후 수술 과정, 감염, 간암 등의 발병, 사망의 일련의 경과에 비춰 A씨는 결국 화재 진압 중 입은 부상이 직접적인 주된 원인이 돼 사망에 이르게 됐다고 볼 수 있고 공무원재해보상법상의 위험직무순직 공무원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A씨는 지난 1984년 11월23일 화재를 진압하던 중 전기에 감전돼 쓰러지면서 유리 파편이 우측 대퇴부에 관통되는 부상으로 수술을 받았고, 이 과정에서 동료 B씨의 혈액을 수혈했다. B씨는 B형 간염바이러스 보균자로 밝혀졌고, 2000년 7월 간암을 진단받은 후 2003년 10월 사망했다.
이후 A씨도 2011년 5월 'B형 간염, 간경변, 간암'을 진단받고 치료를 받았지만, 증상이 악화해 2013년 6월 퇴직했다. 계속 치료를 받던 A씨는 2013년 6월26일 살던 아파트에서 극단적 선택을 했다.
법원은 "A씨의 사망과 공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된다"면서 공무상재해로 판단했고, 판결이 확정되면서 인사처는 2018년 8월 A씨 유족에게 순직유족보상금 가결 결정을 통보했다.
하지만 A씨 유족은 2019년 5월14일 인사처에 "A씨가 순직을 넘어 위험직무순직에 해당한다"면서 위험직무순직 유족급여를 청구했고, 인사처가 2019년 11월27일 "A씨의 사망은 위험직무순직의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부지급 처분을 하자 소송을 제기했다.
1심과 2심은 A씨 유족의 청구를 받아들여 인사처가 내린 위험직무순직 유족급여 부지급 처분을 취소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A씨는 이 사건 부상의 치료 과정에서 질병을 얻은 후 극심한 심신의 고통을 받다가 이를 견디지 못하고 정상적인 인식 능력이나 행위 선택 능력, 정신적 억제력이 결여되거나 현저히 저하돼 합리적인 판단을 기대할 수 없을 정도의 상황에 이르러 자살해 사망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또 "이와 같은 사망 경위에다가 기록상 달리 망인을 자살에 이르게 할 만한 다른 사정도 보이지 않는 점을 더해 보면 A씨의 자살은 이 사건 질병이 주된 원인이 됐다고 할 것이어서 결국 위험직무 수행 중 입은 위해가 직접적인 원인이 돼 사망에 이르게 됐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부연했다.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법원. 사진/뉴스토마토
정해훈 기자 ewigjung@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