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수병 사건 피해 구제, '직무상 갈등' 여부가 쟁점

법조계 "직장 내 사건도 개인적 갈등이면 산재 아냐"
업무상 범죄 동기 명확해야 산재 인정 가능성 높아져

입력 : 2021-10-26 오전 6:00:00
[뉴스토마토 이범종 기자] 경찰이 '생수병 사건'의 배경을 업무상 갈등으로 보는지 여부에 따라 산업재해 인정 가능성이 확연히 갈릴 전망이다. 법조계에선 경찰이 업무 관련 살인사건으로 결론을 내리고, 회사 관계자 진술도 명확히 업무 관련성을 가리킨다면 산재 인정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25일 경찰은 생수병 사건 용의자 강모씨가 생전에 인터넷으로 독극물을 구매한 사실을 확인하고 살인 혐의를 적용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날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피해자 부검이 끝나면 강씨 혐의는 기존 특수상해에서 살인으로 바뀐다.
 
지난 18일 서울 서초구 소재 한 회사에서 생수병에 든 물을 마신 남녀 직원이 쓰러졌다. 이후 여직원은 퇴원했지만 남성 직원이 23일 사망했다. 용의자 강씨는 사건 이튿날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피해자 혈액에서 나온 독극물은 강씨 자택에서 나온 물질과 같은 종류로 나타났다.
 
경찰은 강씨의 범행 동기를 밝히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용의자 사망으로 사건은 곧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된다. 경찰은 이번주 내 사건 종결을 목표로 수사중이다.
 
회사 관계자 일관된 진술 중요
 
이번 수사의 결론은 피해자 산재 인정 가능성을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 따르면, 업무상 재해 인정 기준은 크게 업무상 사고와 질병, 출퇴근 재해로 나뉜다. 만일 회사가 해당 음료를 일괄구매·제공했다면 업무상 재해가 인정되지만, 인과관계는 숨진 강씨 범행으로 정리되고 있다.
 
이 때문에 강씨의 범행 동기가 산재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밝혀야 한다. 전문가들은 근로복지공단이 미궁에 빠진 사건 피해자의 산재를 인정하기는 쉽지 않다고 본다.
 
노무법인 나원의 이민영 노무사는 "만일 업무와 관련 없는 일로 회사 동료끼리 싸움이 났다면 업무상 재해로 인정되지 않는다"며 "(경찰 수사 결과에는) 갈등 관계가 있었다면 업무 때문인지 개인적 원인인지에 대한 가능성만 기록될 것 같다"고 내다봤다.
 
공단이 경찰 수사기록만으로 사실관계 파악이 어렵다고 판단하면 추가로 사업장을 조사하는데, 이때 회사 관계자 진술이 경찰 조사 때의 내용과 크게 달라져선 안 된다.
 
이 노무사는 "공단에서 사실관계 파악을 위해 소방서 출동과 경찰 조사 기록 등을 보는데, 나중에 (회사 관계자의 경찰 진술과 공단 조사 때) 진술이 엇갈리면 경찰 진술 내용만 인정된다"며 "업무상 사망 사건은 나중에 (공단 조사) 진술서를 만들어도 의미 없다. 경찰 수사 내용과 일맥상통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유족은 경찰 조사를 앞둔 회사 관계자들에게 용의자와 피해자 간 관계를 묻고, 갈등 관계가 있었다면 어떤 내용인지 경찰에서 명확히 밝혀달라고 부탁해볼 수 있다.
 
직무 관계에 내재된 갈등 명확해야
 
범행 동기의 명확성은 향후 소송에서도 중요하게 작용한다. 법무법인 예강의 김정욱 변호사는 "가해자의 폭력 행위가 피해자와 사적인 관계에서 기인했거나 피해자가 직무 한도를 넘어서 상대방을 자극하거나 도발해서 발생한 경우에는 직무 관련성을 인정할 수 없다"면서도 "직장 안의 인간관계 또는 직무에 내재하거나 통상 수반하는 위험이 현실화돼 발생한 것으로 볼 수 있으면 업무상 재해로 인정한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직무 관계에서 내재된 갈등으로 볼 여지가 있다면 산재 처리될 여지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앞서 서울행정법원은 지난 2017년 2월 공사대금 문제로 갈등하던 포크레인 기사에게 살해된 관리자 유족의 유족급여와 장의비 지급이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공단은 피해자가 일부러 자신의 차를 포크레인으로 들이받은 가해자에게 돌을 던진 행위가 직무 한도를 넘은 자극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법원은 공사 대금 문제로 갈등하던 가해자가 범행 전날 해고 통보를 받은 점 등 업무에 내재된 위험이 현실화 됐다고 봤다.
 
'생수병 사건'이 발생한 서울 서초구 양재동 모 풍력발전업체 내부 모습. 21일 오전 사무실 내부 불이 다 꺼져 있다. 사진/뉴시스
 
이범종 기자 smil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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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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