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조동진부터 김광석까지…‘아카이브 K-ON’

‘동아기획’과 ‘학전 소극장’ 무대로 재현한 콘서트 ‘우리, 지금 그 노래’
한국 대중음악사 가치 집중 “역사 인식, 출발점 될 수 있을 것”

입력 : 2021-10-27 오후 3:06:35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한대수, 송창식, 김민기 선배님들의 포크 음악은 우리 시대 서사의 적지 않은 부분이자, 삶의 은유였죠. 저 역시 오늘 이 자리에서 모두의 가슴 속에 있을 법한 어린 시절 이야기를 꺼내볼까 합니다.”
 
22~23일 서울 이태원 블루스퀘어 마스터카드홀에서 열린 ‘아카이브 K-ON’ 콘서트. 첫날 첫 순서로 무대에 오른 가수 조규찬이 양희은의 ‘백구’ 노랫말을 단출한 기타 멜로디에 얹자, 공연장 시계가 거꾸로 흐르기 시작했다. 1980, 90년대 그 동네, 혜화동 거리에서 보던 풍경과 향기로운 추억이 은은한 가을 달빛처럼 관객들에게 가 닿았다.
 
이틀 간 이 곳에서 열린 ‘아카이브 케이온’은 올해 초 SBS에서 방영된 ‘전설의 무대-아카이브 K’(일일공일팔)를 무대로 옮긴 첫 시도다. 10부작 중 뜨거운 반응을 얻었던 ‘동아기획’과 ‘학전 소극장’ 편 출연진들, 조규찬, 김현철, 박학기, 동물원, 함춘호, 장필순, 여행스케치, 유리상자가 ‘우리, 지금 그 노래’라는 부제 아래 뭉쳤다. ‘우리, 지금 그 노래’는 1990년대 동아기획 음반 시리즈 ‘우리 모두 여기에’에서 따온 것.
 
이틀 간 솔로로 먼저 무대에 섰다가, 셋씩 팀을 꾸리기도 하고, 마지막 출연진 전원이 무대에 올라 앙코르 곡을 열창하는 진풍경은 이들의 음악 공동체이자 터전을 되새기기 충분했다. 조동진의 ‘제비꽃’이 함춘호의 따뜻한 기타 공명과 장필순의 안개 같은 음성을 통과할 때, 동물원이 ‘거리에서’ 한 소절을 읊조리며 고 김광석(1964~1996년)의 그림자를 드리울 때, 한국 대중음악사의 거대한 ‘고목(古木)’이 드러났다.
 
22~23일 서울 이태원 블루스퀘어 마스터카드홀에서 열린 ‘아카이브 K-ON’ 콘서트. 사진/일일공일팔
 
“가을바람이 통과하던 대학로, 기억하나요?”
 
“마로니에 공원의 어느 맑은 날이었어요. 김민기 선배님과 함께 점심 먹고 큰 벚꽃 나무 아래 차 한 잔 하며 파란 하늘을 올려다봤어요. 벚꽃이 첫눈처럼 쏟아질 때, 가사까지는 아니지만 흥얼거리면서 몇 마디 적었어요.”
 
22일 ‘향기로운 추억’, ‘비타민’을 들려준 뒤 박학기는 곡 ‘아직 내 가슴속엔 니가 살아’를 만들던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상처 난 자리에는 지나고 나면 꽃이 핀다. 여러분 가슴 속에 아름다운 사람이 잘 지내고 있는지, 아프지 않은지 생각해 달라”던 그는 특유의 미성을 분산화음에 겹쳐내며 관객들을 학전 앞, 어느 봄날로 데려갔다. 
 
80~90년대 학전에 얽힌 이야기들은 곡과 곡, 무대와 무대 사이를 계속해서 이었다. 박학기는 1988년 ‘우리 노래 전시회’라는 프로젝트 음반으로 데뷔했던 시절, 고 조동진(1947~2017)과 ‘들국화’ 최성원, ‘시인과 촌장’ 하덕규가 물어준 ‘노래 한번 해볼래?’를 떠올렸다. 조규찬은 낯선사람들의 고찬용, 이소라와의 합주 때를 떠올리며 “가을바람이 여유 있게 통과하던 거리에서 사과향기가 나는 듯했다”고 그 시절 대학로를 노랫말처럼 표현했다. 
 
“노래 해봐, 여기 자리 있어, 그렇게 안아주시고 곁을 주시던 선배님들을 기억합니다. 응원으로 메워주시던 관객 분들도요. 그 계절, 겨울이 아직 많이 떠오릅니다.”(조규찬)
 
‘동네’, ‘오랜만에’ 같은 데뷔 앨범 수록곡부터 11집 신곡까지 아우르며 “30여년 큰 변화 없죠?”라며 너스레를 떤 김현철에 이어 무대에 오른 동물원은 “김현철씨가 첫 곡으로 ‘동네’를 불렀다면 우리의 동네는 이것”이라며 ‘혜화동’으로 응수했다. 김창기가 작사, 작곡한 1998년작 동물원 2집 수록곡. 이어 한편의 멜로영화를 머릿속에 수놓는 대표곡들, ‘널 사랑하겠어’,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변해가네’…. 아련한 멜로디언 전주만으로 홀의 시공이 전환됐다. 음의 곡선은 가을바람이 통과하던 그 시절 대학로의 향기가 돼 관객에게로 스며들었다.
 
22~23일 서울 이태원 블루스퀘어 마스터카드홀에서 열린 ‘아카이브 K-ON’ 콘서트. 사진/일일공일팔
 
조동진부터 김광석까지...‘우리, 지금 그 노래’
 
23일 함춘호 손끝에서 기타가 진동하는 순간, ‘그 시절’은 다시 한 폭의 풍경화처럼 펼쳐졌다.
 
특유의 정갈하고 따뜻한 그의 연주에 장필순과 박학기가 차례로 음을 색칠해갔다. 조동진의 ‘제비꽃’이 장필순의 안개 같은 음성을 지날 때, 시인과촌장의 ‘풍경’이 박학기와 주고받는 선율로 담백한 필치를 그려갈 때, 80~90년대 학전은 무대 위에 있었다.
 
“당시 여성 솔로 가수로서 대중음악을 한다고 하면 쉽지 않던 시기였습니다. 그럴 때마다 제 곁에는 들국화, 시인과촌장, 어떤날, 신촌블루스, 봄여름가을겨울 선배님들이 든든히 곁을 지켜주셨습니다. 그런 시절 저는 기둥 같은 (조동진) 선배님의 이 노래(‘제비꽃’)로 혼을 부여 잡았습니다.”(장필순)
 
1997년 12월 학전 소극장에서 첫 무대를 가진 유리상자는 데뷔곡 ‘순애보’와 대표곡 ‘신부에게’, 박학기 원곡 ‘아름다운 세상’ 등을 들려주며 “보조의자를 동원하는지, 아닌지가 당시 학전 소극장 공연의 성공 여부를 가늠했다. 첫날 잔뜩 긴장한 모습으로 문틈으로 객석을 봤는데, 스탭들이 보조의자를 까는 모습을 보며 하이파이브를 나누고 무대에 오르던 기억이 생생하다”고 회상했다.
 
22일 동물원은 단출한 어쿠스틱 기타 연주로 ‘거리에서’부터 ‘말하지 못한 내 사랑’, ‘변해가네’를 이어가며 전 멤버이자 동료였던 고 김광석에 관한 기억까지 무대 위로 소환했다. 23일 마지막 주자 여행스케치(현재 조병석, 남준봉 2인 체제)는 10년 만에 이선아, 성윤용, 윤사라까지 합류한 5인조로 무대에 섰다. ‘왠지 느낌이 좋아’부터 ‘초등학교 동창회 가던 날’, ‘시종일관’, ‘난치병’, ‘운명’ 같은 대표곡들을 메들리 형식으로 들려주자, 당시 향수를 간직한 객석에서 연이어 박수가 터져나왔다.
 
앙코르 때는 출연진 전원이 무대에 올라 함께 노래를 불렀다. 22일에는 동물원의 ‘시청 앞 지하철역에서’, 23일에는 여행스케치의 ‘산다는 건 그런 거 아니겠니’로 피날레를 장식했다.
 
이틀 간 무대는 과거의 음악을 단순히 ‘소비’하는 데 그치던 기존 방송이나 공연과는 확실히 다른 느낌을 줬다. 
 
동물원 멤버 박기영(홍익대 공연예술학부 교수)은 공연 뒤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우리가 하는 대중음악이 문화적 콘텐츠와 더불어 역사적으로, 학술적으로 다뤄질 수 있다는 사실이 반가웠다”며 “만약 학전이라는 공간이 사라진다면 우리 대중음악의 소중한 자료들이 같이 소멸되는 것과 같을 것이다. 이번 공연은 공간에서 비롯된 역사 인식의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장필순 역시 통화에서 “늘 외톨이 같은 음악을 해온 사람으로서, 고 김광석 같은 친구들의 곡을 함께 부르며 음악 뿐 아니라 인간적 유대를 환기했던 자리가 아닐까 싶다”며 “우리가 했던 음악은 늘 시간과 공간에 닿아있었다. 이번 무대에서도 학전과 동아기획 음악들이 일회성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생명력을 지니고 있음을, 관객들과 공유한 것 같아 뜻 깊었다”고 돌아봤다.
 
22~23일 서울 이태원 블루스퀘어 마스터카드홀에서 열린 ‘아카이브 K-ON’ 콘서트. 사진/일일공일팔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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