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백주아 기자] 배터리 핵심 소재 양극재 원료 '니켈·코발트·망간(NCM) 삼원계 전구체'의 중국 의존도가 심화하고 있다. 정부가 이차전지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올해부터 NCM 전구체 수입 관세를 유예하면서 수입 비중은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수입 의존도가 높아질수록 국내 전구체 산업 경쟁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우려한다. 특히 과거 한·일 무역 분쟁 때처럼 경제·외교적 충돌 발생시 배터리 공급망이 위태로워질 수 있는 만큼 전구체 내재화를 위한 정책적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4일 한국무역협회 통계서비스(K-stat)에 따르면 올해 1~9월(누적) 국내 NCM 전구체 수입량 13만8180톤 중 중국 수입량은 12만6881톤으로 전체 91.8% 비중을 차지했다.
전구체는 배터리 4대 핵심 소재 중 하나인 양극재의 핵심 원료다. 니켈·코발트·망간을 적정 비율로 섞어 리튬을 첨가하면 양극재가 된다. 양극재 1톤을 만들기 위해서는 전구체 1톤과 리튬 0.5톤이 필요하다. 전구체 단계에서 NCM 농도 분포 구조가 결정되기 때문에 배터리 성능에도 직접 영향을 준다.
전기차 배터리 산업이 성장하면서 NCM 전구체의 중국 의존도 높아지고 있다. 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 2018년(8571톤) 이후 3년 새 NCM 전구체 수입량은 1500% 이상 늘었다. 이에 비해 중국 수입량은 2018년(4940톤)에서 올해 12만6881톤으로 약 2500% 폭증했다. 전체 수입량에서 중국산 NCM 전구체가 차지하는 비중도 2018년 57.6%에서 2019년 88.5%로 급증한 이후 지난해 89.1%까지 늘었다.
문제는 수입 의존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국내 생산 기반은 약해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업계에 따르면 전구체 수요 대비 국내 전구체 생산량은 약 30%로, 나머지는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배터리 수요가 늘면서 소재 산업도 덩달아 몸집이 커지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전구체 관련 투자는 미흡하다. 전구체 가격은 양극재 제조 원가의 약 70%를 차지하는 만큼 배터리 가격을 좌우한다.
업계에서는 중국 의존도가 심화할수록 K-배터리 산업 공급망이 위태로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특히 올해부터 정부가 이차전지 산업 육성을 위해 NCM 전구체에 할당관세를 적용하기로 한 가운데 전구체 수입 의존도는 더욱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산업계 부담을 줄이기 위해 도입한 정책이 오히려 국내 산업 경쟁력을 떨어뜨릴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지난 2019년 한일 무역 분쟁 때와 마찬가지로 한중 관계에 적신호가 켜질 경우 국내 이차전지 분야는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에서 전구체 수출 가격을 올리거나 규제를 강화할 경우 핵심 원료 공급이 막히면서 배터리 산업은 직격탄을 맞을 위험이 높다"면서 "정부가 기업 부담을 줄이기 위해 관세를 유예했지만 오히려 이것이 나중에 화살로 돌아와 전구체 산업은 물론 배터리 산업 전체를 흔들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안정적인 배터리 공급망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전구체 내재화에 힘을 실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배터리 원가 경쟁력 강화 측면에서도 내재화 외에는 대안이 없다는 설명이다.
윤성훈 중앙대 융합공학부 교수는 "수입 할당관세 부과는 일시적으로 산업에 도움을 줄 수 있겠지만 전체 시장 가격에도 영향을 미치는 데다가 배터리 가격경쟁력을 지속적으로 확보하기 어려운 문제가 있다"면서 "장기적으로 이부분을 줄여가는 대신 내부 경쟁력을 제고할 수 있도록 국산 전구체에 세제 혜택을 준다든가 전구체 원천 기술 관련 개발 투자 등의 지원이 뒷받침 돼야 하는 시점"이라고 조언했다.
전구체 내재화를 통해 배터리 후방산업도 커질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박철완 서정대학교 자동차학과 교수는 "삼원계 전구체 산업과 맞닿아 있는 산업이 배터리 리사이클링인데 중국과 같이 배터리 리사이클링과 전구체 산업을 잘 연계하기 위해서라도 삼원계 전구체 산업 리쇼어링이 꼭 필요한 시점"이라면서 "전지협회 이외의 대표 단체가 전담하도록 산업통상자원부가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말했다.
백주아 기자 clockwork@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