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효선 기자] 한국의 소송제도는 이른바 '패소자부담주의'를 취하고 있다. 소송에 패소하면 승소한 상대방의 소송비용까지 부담하는 방식이다.
반면 미국, 일본 등 다수 국가들은 소송비용 각자부담주의를 취하거나 법원에서 공익목적을 인정하는 경우 패소자의 소송비용을 면제해주는 방식을 적용한다. 이와 달리 한국은 소송 패소자에게 모든 부담을 지우고 있어 적어도 ‘공익소송’에 있어서는 해외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영미법계, '공익 보호' 우선
미국은 전통적으로 변호사보수 각자부담주의를 취하고 있다. 소송이 끝나면 결과에 상관없이 소송비용을 당사자가 각자 부담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그러면서 인권에 관한 소송·소비자 보호소송·고용관계 소송·환경보호소송 등 공익소송에 대해서는 ‘편면적 패소자부담주의’을 채택하고 있다. 공익소송을 낸 원고가 승소한 경우 상대방(패소자)에게 변호사비용을 청구할 수 있고, 패소하더라도 상대방의 변호사비용을 부담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공익적 소송을 적극 유도하면서도 패소자가 부당하게 응소해 다투는 등 사법제도를 남용하는 것을 억제하기 위해 도입됐다.
이 같은 미국의 제도가 표방하는 원칙은 ‘공익소송을 제기한 원고가 승소했다면 자신의 개인 재산으로 공익을 대변한 결과가 돼선 안 되고, 패소하더라도 관련 법률의 의미를 명확하게 하거나 공익적이고 중요한 쟁점을 시험한 대가로 벌을 받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영국의 경우 한국과 마찬가지로 ‘패소자 부담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다만, ‘보호적 비용명령’ 제도를 두고 있어 공익소송을 낸 원고가 패소한 경우 피고 측 소송비용의 지불의무를 면제하거나, 원고가 지불할 상대방 소송비용의 상한을 법원 재량으로 설정할 수 있도록 했다. 이 제도는 환경오염피해 소송 등 공익소송에서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캐나다 법원 ‘폭넓은 재량권’ 인정
캐나다는 소송비용에 관한 법원의 폭넓은 재량권을 인정한다. 법원이 패소자에게 비용부담 명령을 할 때 소송절차를 진행함으로써 달성할 수 있는 공익이 비용부담 명령을 정당화하는지 여부를 중요하게 고려한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기본적으로 ‘패소자 부담주의’를 채택하고 있지만 공익소송 패소자의 보수 부담을 완화한 법리를 확립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헌법재판소는 공익을 목적으로 소를 제기한 원고가 패소하더라도 상대방 소송비용을 부담하지 않는 ‘보호적 비용구제 제도’를 제안한 바 있다.
한국 헌재, 민소법 조항 헌법소원 각하… 공익소송 비용 감면 법안 계류
반면 한국은 일률적 ‘패소자부담주의’를 적용하고 있어 공익소송을 낸 원고가 패소하면 상대방 소송 비용까지 모두 부담해야 한다. 민사소송법 98조에 따르면 ‘소송비용은 패소한 당사자가 부담한다’고 적시돼 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는 지난 2월 이 같은 현행법이 공익소송을 위축시킨다며 민사소송법 98조 및 109조에 대한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그러나 헌재는 심판대상 조항이 재판의 전제성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부적법하다며 지난 3월 각하 결정을 내렸다. 본안 판단을 하지 않고 심리를 종결한 것이다.
공익소송 패소비용을 감면하기 위해 양정숙 무소속 의원이 지난 7월 발의한 민사소송법 및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소송에 관한 법률 개정안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회부돼 계류 중이다.
워싱턴 DC의 미 연방 대법원. 워싱턴=AP/뉴시스
박효선 기자 twinseve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