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와 군사경찰대대장 B중령이 지난 4월10일 나눈 카카오톡 대화 내용. 출처/군인권센터
[뉴스토마토 최기철 기자] 공군부대 지휘관이 남자 상사가 소속부대 여군 장교를 성추행한 사실을 인지하고도 고소 취하를 종용하는 등 수사를 무마했다는 정황이 또 드러났다.
군인권센터는 8일 서울 마포구 센터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공군 10전투비행단(공군10비) 군사경찰대 소속 A상사가 초임 여장교를 성추행한 사실을 대대장이 인지하고도 진상조사와 수사를 무마하려 했다"고 주장했다.
군인권센터가 이날 언론에 제공한 자료들을 종합하면, A상사는 지난 4월 피해 여장교에게 태권도와 장기복무에 필요한 자격증 취득을 도와주겠다는 구실로 접근해 신체를 만지고, 자신의 집으로 와 마사지를 받으라고 요구한 것으로 드러났다. 햄버거를 사오라는 자신의 말을 거절하자 A상사는 피해자에게 "순진한 줄 알았는데 받아치는 게 완전 요물"이라고도 했다. 상관모욕적 언사다.
피해자는 이 사실을 보고체계를 통해 부대장인 B중령에게 보고했다. 그러나 B중령은 전화로 가해자 처벌 의사를 물은 뒤 '형사사건화 할 경우 네가 지휘자로 역량이 부족하다고 보일 수 있다. 수사진행과는 별개로 주홍글씨가 남을 수 있다. A상사가 너를 역고소·무고죄로 고소할 수 있다"며 피해자를 협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도 피해자가 A상사를 고소하겠다는 의사를 굽히지 않자 B중령은 기본 조사 과정에서 피해자를 압박했다고 한다. 진술서를 작성 중인 수사실에 찾아와 '네가 불리하다. 고소를 안 하는 게 좋겠다'라고 하는가 하면 수사관에게는 '알아서 처리하라. 폐기하라'는 취지로 얘기했다는 게 피해자 주장이다.
이렇게 조사를 중단한 B중령은 피해자에게 '책임지겠다'고 안심시킨 뒤 A상사를 다른 부대로 전출시켰다. 그러나 사유는 상관모욕과 소대 지휘관리 소홀이었다. 성범죄 부분은 없었다. 피해자에게도 "너도 이 이상의 것들에 대해서는 구태여 말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며 함구령을 내렸다. 피해자는 비편제 보직으로 좌천됐다.
피해자와 군사경찰대 A상사가 지난 4월10일 나눈 카카오톡 대화 내용. 출처/군인권센터
이게 끝이 아니었다. 며칠 뒤 A상사를 원대 복귀시키겠다며 피해자에게 동의를 요구했다. "군대 생활을 오래 해야 할 것 아니냐? A상사 전출을 통해서 네가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다"며 협박도 했다고 한다. 결국 A상사는 성범죄 피해를 입힌 피해자가 있는 부대로 복귀했다. 참지 못한 피해자가 A상사와 B중령을 각각 강제추행과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 및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로 고소했다.
그러나 고소를 접수받은 공군본부 군검찰단은 A상사와 B중령을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했다. 불기소 이유서에는 '피의사실이 인정되더라도 A상사가 성적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 자신의 집에 와서 마사지 받으라고 한 것은 '부상치료 목적으로 제한 한 것으로 보이고 (통증이 심한) 피해자가 소리를 너무 크게 냈기 때문'이라고 적었다. B중령에 대해서는 "형사 절차진행을 원하지 않은 피해자를 배려한 것이지 조사를 중단시키거나 신고를 방해할 목적으로 협박을 한 적이 없었다"는 B중령의 주장 그대로 이유를 달았다.
피해자는 현재 불기소 처분에 대한 재정신청을 한 상태다. 재정신청 사건은 국방부 고등군사법원이 맡고 있다.
임태훈 군인권센터장은 "‘몸은 만졌지만 가해자에게 성적 의도가 없어 성추행이 아니다’라는 불기소 논리가 공군본부 법무실에서 어느 선까지 보고되고 결재되었는지에 대해서도 즉시 직무 감찰 후 관련자를 엄중처벌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기철 기자 lawch@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