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병호 기자] 20대 대선이 역대 최악의 비호감 선거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가족' 논란마저 더해졌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초반부터 부인과 장모에 대한 의혹에 휩싸였다. 이재명 민주당 후보도 최근 아들의 불법도박·성매매 의혹으로 궁지에 몰렸다. 의혹을 수습하지 못하면 지지율 하락은 물론 대선승리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 같은 가족 리스크는 역대 대선에서도 반복된 바 있다. 특히 보수가 낳은 최고의 후보라던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는 16대 대선에서 병풍에 휘말리면서 대세론에 만족해야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아들 준용씨의 취업특혜 공세에 시달린 바 있다.
19일 오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와 부인 김혜경씨가 서울 여의도 순복음교회에서 열린 예배에 참석해 기도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재명 후보는 19일 오전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에서 열린 '매헌 윤봉길 의사 순국 89주기 추모식'에 참석해 장남 동호씨의 불법도박 논란에 대해 "자식을 둔 죄인"이라며 연신 머리를 숙여야 했다. 앞서 지난 16일 조선일보는 동호씨가 상습 도박을 했다는 의혹을 보도했다. 이 후보는 즉각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하지만 도박자금 출처를 비롯해 아들의 성매매 의혹까지 제기된 상황으로, 이 후보는 동욱씨의 부인에만 의존하고 있다.
이 후보는 이날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후보합동검증위원회를 설치해 후보자와 그 가족을 검증하자"고 주장한 것에 대해서도 "검증할 것은 충분히 검증하고, 문제가 있는 점에 대해선 상응하는 책임을 지도록 하겠다"며 "다시 한 번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자세를 낮췄다. 자신을 직접 겨냥한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이 제기됐을 당시 "칭찬받아 마땅한 일"이라며 강경 대응기조를 유지하던 모습과 사뭇 다른 태도다.
이날 같은 행사에 참석한 윤 후보는 기자들과 만나 부인 김건희씨의 허위경력 논란에 대해 "제 처의 미흡한 부분에 대해 국민 비판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지난 17일)사과의 말씀을 올렸습니다만, 민주당 주장이 사실과 다른 가짜도 많다"면서 "그런 걸 잘 판단해 달라"고 했다. 앞서 자신에게 제기된 검찰 고발 사주 의혹에 대해선 "특별검사 수사를 받겠다"고 했던 윤 후보가 부인에게 제기된 의혹을 '가짜뉴스'로 규정한 건 민주당 공세에 휘말려 가족 의혹을 더 이상 키우지 않겠다는 전략적 판단이라는 해석이다.
18일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서울시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국민의힘 청년보좌역 공개 모집 현장을 방문해 면접자들을 격려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두 사람이 가족 문제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건 한국 정치에서 해당 사안이 갖는 특수성 때문이다. 유교사회인 한국에서 정치인, 특히 대통령에겐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 몸과 마음을 닦아 수양하여 집안을 안정시킨 후에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평정한다)를 주요 덕목으로 요구한다. 가족 리스크는 '제 가정도 제대로 돌보지 못했는데 어떻게 대통령이 되겠다는 것이냐'는 비판으로 이어질 소지가 다분하다. 부인의 허위경력 및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장모의 양평군 공흥지구 등 부동산투기 의혹과 관련해 윤 후보에게 비판이 제기되는 대목도 '검찰총장 출신'으로 수신제가에 실패했다는 점이 아프게 와닿는다.
같은 맥락에서 가족 리스크는 후보의 비호감을 높이는 일등공신이다. 가족 문제는 후보에게 직접 책임을 묻기 어렵고 자질 및 능력과도 관계 없지만, 오히려 그런 이유로 의혹은 완전히 규명되지 않고 추문은 꼬리를 물면서 일파만파 여론을 파고든다. 이 후보와 형수 간 사적인 말다툼에서 비롯된 '형수 욕설' 사건이 대표적이다. 해당 사건은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지만, 유교적 국민정서를 건드렸다. 이 후보에게 덧칠된 '패륜' 이미지는 2017년 대선 경선, 민선7기 지방선거, 20대 대선까지 연거푸 거론되면서 이 후보를 곤란하게 만들었다.
역대 대선에서도 후보의 가족 리스크는 주요 쟁점이었다. 가장 유명한 사례는 1997년 15대 대선과 2002년 16대 대선 당시 이회창 한나라당(15대 대선에선 신한국당) 후보의 두 아들에게 제기된 병역기피 의혹, 이른바 병풍사건이다. 이 후보는 병풍으로 대선에서 두 번이나 고배를 마셨다. 특히 16대 대선 당시 이 후보는 6월부터 11월까지 줄곧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후보를 앞서고도 대선 승리를 놓쳤다. 노사모를 시작으로 한 노풍, 정몽준 후보와의 단일화와 결렬 등 대형 이벤트가 있었지만, 치명타가 된 건 병풍이었다.
2017년 8월22일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서울시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예인홀에서 열린 회고록 출간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병풍이 16대 대선 때 더 큰 논란이 된 건 병역비리 관련 녹음 테이프가 있다고 주장한 전직 부사관 김대업씨의 등장 때문이었다. 대선 후 이 후보의 두 아들은 검찰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김씨는 1년10월의 징역을 받았고, 민주당에서 해당 의혹을 제기한 설훈 의원은 벌금 400만원을 선고 받아 피선거권이 10년간 제한됐다(2007년 사면). 이 후보는 법적으로는 무죄를 받았지만, 국민에게 가장 민감한 문제인 '병역'과 관련해 제기된 가족 리스크로 '대쪽' 이미지에 큰 내상을 입었다. 이 후보는 이후 17대 대선에 다시 출마하고 자유선진당 총재, 18대 국회의원 등을 지냈지만 과거만큼의 영광은 누리지 못했다.
가족 리스크는 19대 대선에서도 불거졌다. 문 대통령은 아들 준용씨가 2005년 한국고용정보원에 취업한 것으로 취업특혜 공격을 받았다. 결론적으로는 준용씨의 취업 절차엔 문제가 없었고 의혹도 사실이 아닌 걸로 확인됐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해명하는 과정에서 일부 거짓말을 한 게 문제가 돼 다시 도마에 올랐다. 안철수 후보도 부인 김미경 교수 채용특혜 의혹, 딸 설희씨의 원정출산·이중국적·호화유학 논란을 겪었다. 이보다 앞서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2년 당내 경선 과정에서 장인의 좌익 논란에 휩싸였지만 "아내를 버리란 말이냐"는 특유의 정공법으로 되레 지지를 끌어모으기도 했다.
최병호 기자 choibh@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