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장윤서 기자] 이해찬 민주당 전 대표가 대선판에 등장했다. 이재명 후보가 외연 확장에 힘을 싣는 동안 이 전 대표는 물밑에서 친노·친문 표심 결집에 주력하겠다는 이중 전선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올드보이 이 전 대표의 등장이 민주당의 완고한 이미지만 강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특히 대선 최대 승부처로 떠오른 2030 표심에서는 역효과만 불러 일으킬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 전 대표는 지난 16일 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에서 상임고문을 맡은 뒤 첫 정치 일정으로 제주지역 언론사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 전 대표는 인터뷰에서 "이 후보와 대선 캠프에 대한 자문과 조언이 자신의 역할"이라며 "필요한 경우 당원을 만나 지원 유세와 강연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이 전 대표는 제주 순회를 시작으로, 당 핵심 지지층인 친노·친문 표심 결집을 주도할 것으로 보인다. 이 전 대표는 2002년 노무현 캠프에서 선거대책반을 맡아 참여정부 탄생에 일조했고, 이후 2004년 한나라당이 주도한 탄핵 사태를 총선 압승으로 전환시킨 대표적 친노 인사이자, 전략가다. 폐족의 수장으로 숨 죽이던 그는 국정농단 사태 속에 문재인 대통령을 청와대에 입성시키며 '킹 메이커'로서의 진가를 여지없이 드러냈다. 당대표로 진두지휘한 지난해 총선은 역대급 압승으로 이어졌다. 지금은 누구보다 이 후보를 지지하며 친노·친문의 결집을 유도하고 있다.
이처럼 화려한 전력에도 불구하고, 달라진 정치환경은 노쇄한 그를 '올드보이'의 덫에 가두고 있다. 또 완고한 그의 성정은 민주당의 이미지에 투영돼, 어렵사리 시작한 쇄신 바람을 차단시킬 수도 있다. 이 전 대표는 지난 4·7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친여 성향의 한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선거가 아주 어려울 줄 알았는데 요새 돌아가는 것을 보니 거의 이건 것 같다"고 말해 논란을 낳은 바 있다. 특히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투기 의혹으로 여권이 수세에 몰린 상황에서 "거의 이긴 것 같다"고 말해 오만함으로 비치기도 했다.
국민의힘 측에서는 이 전 대표가 올드보이에 불과하다며 오히려 그의 등장을 내심 반기는 분위기다. 김병준 상임선대위원장은 지난 15일 "이 전 대표가 나오면서 오히려 이 후보가 타격을 받는 '이비이락'"이라며 "이해찬이 날면 이재명이 떨어진다"고 했다. 김재원 최고위원은 "이해찬 '상왕'이 다시 등장했다"며 "이제 이재명 선대위는 '상왕지졸'"이라고 조롱했다. 이밖에도 국민의힘에서는 '이나땡(이 전 대표가 나오면 땡큐)' 등과 같은 신조어를 만들며 자신만만한 모습도 보였다.
이 전 대표가 4·7 재보궐 선거 때처럼 오만하거나 완고한 이미지만 보일 경우 이 후보의 중도 확장 전략에도 일대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 이 후보는 지난 2일 방송기자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민주당이 국민의 공정성에 대한 기대를 훼손하고 실망시켜 드리고 아프게 한 점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질문"이라며 "'우리는 작은 하자인데 너무 억울하다', '왜 우리만 갖고 그러느냐'는 태도를 보인 것이 국민께서 민주당을 질책하는 주원인인 내로남불"이라고 거듭 반성했다. 조국 사태에 대해서도 "가장 낮은 자세로 사과드린다"며 중도층 및 청년층의 환심을 사기 위해 노력했다.
때문에 이 전 대표가 대선 정국에서 어떤 역할을 맡게 될 지를 놓고 당내에서조차 이견이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 전 대표가 김종인 국민의힘 총괄선대위원장처럼 캠프 진두지휘를 맡게 될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세 대통령을 배출한 검증된 킹 메이커이자 전략가라는 점이 매력으로 다가온다. 또 국민의힘이 김종인·김병준·김한길 등 노회한 이들로 노련한 전략을 구사하는 상황에서 굳이 나이로만 따져 그의 경륜을 배제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이해찬 대 김종인 대결로 구도를 짜는 시각도 존재한다. 현근택 선대위 대변인은 지난 13일 "이 전 대표가 1988년 13대 총선 때 관악서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과 붙은 이후 져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다만, 중론은 그가 대선 전면에 등장할 일은 없다는 쪽이다. 선대위 상임고문으로서 친노·친문 결집 등 측면 지원에 한정할 뿐, 어렵사리 쇄신으로 전열을 재정비한 상황에서 위험을 무릎쓰고 그를 끌어올릴 일은 없다는 게 선대위 관계자들의 대체적 의견이다. 한 선대위 고위 관계자는 "아직 친노·친문이 이 후보를 중심으로 뭉친 상황은 아니다"며 "이를 위한 이 전 대표의 역할은 분명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이 전 대표가 중심에 서서 선거 전략을 지휘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이 전 대표도 이를 원치 않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이 전 대표가 전면에 등장하는 순간 2030 표는 날라간다고 봐야 한다"고 했다.
이해찬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6일 오후 더불어민주당 제주특별자치도당사에서 열린 제주지역 원로당원·상무위원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장윤서 기자 lan4863@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