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칼럼)형사사건의 불문율과 대선의 불문율

입력 : 2021-12-20 오전 6:00:00
"이제부터 뭘 하려고 하지 말고 그대로 두십시오. 그리고 사실 그대로 인정하십시오." 
 
형사사건 전문 변호사들이 피의자들에게 늘 하는 말이다. 무죄를 적극 다투는 사안이라면 다르겠지만 객관적 피의사실이 존재하는 한 이 조언은 그대로 통용되고 있다. 사안이 무겁든 가볍든, 지능범죄든 강력범죄든 같다. 
 
죄를 지은 사람들을 기소하는 검사들도 똑같은 말들을 한다. 최근 만난 전직 베테랑 특수사건 전문 검사도 "죄를 지은 다음에는 뭘 하려고 하지 말고 가만히 있어야 한다"고 했다. 가리고 지우고 변명할 수록 더 덧이 날뿐이라는 것이다. 판사들도 이 '불문율'을 인정하고 있다. 형사사건을 오래 다뤄오고 있는 한 중견 법관은 "어찌 보면, 검찰이 정말 주목하고 있는 것은 행위 이후 피의자의 모든 행동"이라고도 말했다.   
 
최근 대선 정국을 강타하고 있는 '김건희 허위 이력 의혹' 보도를 보고 있자면, 이 '불문율'의 위력을 실감하게 된다. 
 
현재까지 언론을 통해 제기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 배우자 김건희씨의 허위 이력 의혹은 '5개 대학 18건'이다. 처음에는 '가십' 정도로 하나 둘 나왔던 이 의혹은 까면 깔수록, 파면 팔수록 나오고 있다. 그 무게도 결코 가볍지 않다.
 
2001년 한림성심대 허위 이력서로 시작된 이 의혹은 워낙 오래 전인 데다가 결혼 전 일이라는 이유로, 윤 후보와 국민의힘의 대응은 그냥 '퉁'치는 분위기였다. 법적으로는 문제삼을 수 없다는 이유다. 그러나 지금은 사문서위조·업무방해 의혹이 사기 의혹으로까지 번지면서 건건마다 공소시효가 하나 둘 살아나고 있다.
 
여기서 문제는 윤 후보와 국민의힘의 태도다. 윤 후보는 김씨의 '허위 이력 의혹'이 제기될 때마다 회피하거나 모호한 답변을 늘어놨다. 지난 14일 언론을 통해 불거진 김씨의 2007년 수원여대 교수 초빙 지원서 허위 경력과 가짜 수상 기록에 대해 윤 후보는 "부분적으로는 모르겠습니다만, 전체적으로 허위 경력은 아니다"라고 했다. 같은 날 진행된 관훈클럽 토론회에서의 답변이다. 국민의힘 선대위도 '부풀려진 일'이라거나 '오래 전 일로 불분명'하다고 주장했다.
 
윤 후보는 다음날 당사에서 만난 기자들이 입장을 묻자 "현실을 좀 잘 봐라. 한번 대학에 아는 분들 있으면 한번 물어봐라. 시간강사 어떻게 뽑는지"라고 반박했다. 상당히 엇나간 말이다. 앞서 김씨 본인은 "돋보이려고 한 욕심이었다", "그것도 죄라면 죄"라고 했다. 부창부수다. 시간강사들에게는 피눈물을 흘릴 2차 가해다. 선대위도 어물쩍 '사실관계 확인이 먼저', '결혼 전 일'이라는 주장을 반복했다.
 
사과를 하네 마네, 공식이네 비공식이네 아웅다웅 하는 사이, 여론이 더욱 들끓자 윤 후보는 17일에서야 "제 아내와 관련된 논란으로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논란 자체만으로",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경력 기재가 정확하지 않고", "논란을 야기한 것 그 자체만으로도"라고 여러 사족을 달았다. 문언상은 사죄이나 '알았으니까 그만하라'라는 취지로 들리는 것은 필자만의 생각일까.
 
미디어토마토가 <뉴스토마토> 의뢰로 지난 11~12일 실시한 여론조사(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를 보면 '대통령 후보 배우자 사생활도 검증대상이 돼야 한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검증해야 한다'는 응답은 59.2%로 과반을 기록했다. 영부인의 법적 지위를 생각할 때 타당한 결과다.
 
그동안 '김건희 리스크'를 대처하는 윤 후보와 국민의힘의 자세는 은폐와 축소·변명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최근에는 외면·방치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직관적으로 볼 때 체포 장면을 의심케 하는 김씨의 언론 회피 사진 한장이 그 단면이다.
 
대선후보 배우자에 대한 검증은 배우자 자체에 대한 문제로 축소될 수 없다. 앞서 중견 법관이 한 말 처럼 이번 대선의 심판관인 국민은 그에 대한 설명과 대처의 면면에서 대선후보와 소속 당의 도덕성·준법성, 위기관리 능력을 보고 있다. 형사사건의 불문율이 그대로 적용되는 것이다. 이는 비단 배우자 뿐만 아니라 대선 후보의 친족과 인척의 문제도 이 검증에서 제외될 수 없음은 물론이다. 검찰총장 출신인 윤 후보와 상당수 법률가가 속한 국민의힘은 '공정·상식·법치'를 말로만 외칠 일이 아니다. 
 
최기철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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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