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지영 기자] 국내 기술로 만든 첫 고로인
포스코(005490)의 포항 1고로(용광로)가 48년 6개월간의 '뜨거운 근속'을 마무리하고 물러난다.
포스코는 29일 포항제철소에서 1고로 종풍식을 했다. 종풍(終風)은 고로에 뜨거운 바람을 불어넣는 것을 끝낸다는 의미로 수명이 다한 고로의 불을 끄는 것을 말한다. 이날 종풍식에는 김학동 사장, 이시우 안전환경본부장, 양원준 경영지원본부장, 남수희 포항제철소장, 이덕락 기술연구원장, 포스코 노동조합·노경협의회 등 주요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1고로는 1973년 6월 9일 오전 첫 쇳물을 쏟아냈다. 다만 첫 쇳물이 나오는 과정이 순탄치는 않았다. 당시 포스코 초대 사장이었던 고 박태준 명예회장이 1고로에 직접 불을 지폈지만 예정된 시간에도 쇳물은 감감무소식이었다. 잠시 후 기다렸던 쇳물이 흘러나오자 현장에 있던 직원들은 만세를 부르며 성과를 자축했다.
김학동 사장은 이날 행사에서 "첫 출선(용광로에서 주철을 뽑아내는 것) 당시 고 박태준 명예회장님께서 직원들과 함께 1고로 앞에서 만세를 외치며 눈물 흘리시던 모습이 아직도 선한데, 종풍을 맞게 됐다니 실로 만감이 교차한다"며 "변변한 공장 하나 없었던 변방의 작은 국가가 짧은 기간 내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포항 1고로와 여기 계신 여러분들의 노고가 있었기에 가능했다"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일해준 직원들을 격려했다.
1973년 6월 9일 오전 포항 제1고로가 첫 쇳물을 쏟아내자 고 박태준 명예회장(가운데)과 임직원들이 만세를 부르고 있다. 사진/포스코
1고로가 본격적인 생산을 시작하면서 우리나라는 '산업의 쌀'로 불리는 철을 스스로의 힘으로 생산하는 국가가 됐다. 이 쇳물은 조선과 자동차, 가전 등에 쓰였고 이에 따라 국내 제조업은 단기간 내 성장할 수 있었다. 1고로의 쇳물이 한국 경제의 밑거름이 된 셈이다.
포항 1고로는 국가 경제 성장을 뒷받침한 공로를 인정받아 '민족 고로' 또는 ‘경제 고로’라고 불려왔다. 또한 철강협회는 국내 최초·최장수인 포항 1고로의 상징적 의미를 기념하며 첫 출선일인 6월 9일을 '철의 날'로 제정하기도 했다.
포항 1고로가 반세기 가까이 생산해 낸 쇳물의 양은 총 5520만 톤에 이른다. 이는 30만톤급 초대형 유조선 1380척을 건조하거나, 중형 자동차 5520만대를 생산할 수 있는 양이다. 인천대교는 1623개를 건설할 수 있다.
1973년 6월 9일 오전 1고로가 첫 쇳물을 쏟아내고 있다. 사진/포스코
다만 세월이 흐르면서 1고로는 최근에 준공되는 5500㎥ 이상의 초대형 고로와 비교해 규모가 작아 생산성과 안정성에 대한 우려도 커졌다. 이에 포스코는 제선 기술을 바탕으로 역사적 상징성이 깊은 1고로의 생명을 계속해서 연장해 왔다.
고로는 통상 10~15년 주기로 개수를 해야만 다시 사용할 수 있다. 1고로의 경우 48여년간 가동되면서 2번 개수했다. 1979년 1차, 1993년 2차 개수 작업을 마쳤다. 2차 개수 이후 28년간 가동되면서 '세계 최장 조업'이라는 기록을 썼다.
포스코는 향후 1고로의 역사적 가치와 의의를 고려해 고로 내부를 완전히 냉각하고 철거 작업을 거쳐 '포항1고로 뮤지엄'으로 새단장할 계획이다. 포스코 관계자는 "1고로 종풍에 따라 연간 100만톤가량 감소하는 출선량을 만회하기 위해 남은 8개 고로의 연원료 배합비 개선을 추진할 예정"이라며 "효율적인 운영으로 연계 산업에서 철강 수급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대응해 나간다는 방침"이라고 밝혔다.
김지영 기자 wldud91422@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