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는 지난 10일 열린 이사회에서 기업분할을 결정했다. '포스코홀딩스'라는 이름의 지주회사와 철강사업회사인 '포스코'로 나누기로 한 것이다. 이에 따라 2000년 10월 민영화된 이후 21년 만에 새로운 지배구조를 세우게 됐다. 포스코케미칼, 포스코에너지, 포스코인터내셔널, 포스코건설 등의 계열사들도 포스코홀딩스 산하의 자회사로 편입된다.
포스코가 성장하고 계열사가 많아짐에 따라 지배구조를 새롭게 하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관심의 초점은 지주회사 전환방식이었다.
예상대로 포스코는 물적분할을 선택했다. 이에 따라 포스코가 물적분할된 후 포스코홀딩스가 사업회사 100% 지분을 소유하게 된다. 다른 계열사들도 마찬가지다. 주식시장에는 포스코홀딩스가 '대표'로 상장되고, 포스코를 비롯한 다른 계열사들은 비상장으로 남는다. 포스코의 절묘한 판단과 결정이 돋보인다.
물적분할은 최근 국내 많은 재벌들이 애용하고 있다. LG그룹이 LG화학에서 전기차 배터리회사인 LG에너지솔루션을 물적분할한 것을 비롯해 SK케미칼와 SK이노베이션, CJ ENM 등이 같은 방식으로 중요한 계열사를 분리했다. 이들 재벌이 물적분할 방식을 채택한 것은 한 푼도 들이지 않고 새로운 계열사에 대한 지배력을 확보하기 위함이다.
만약 인적분할을 채택하면 다르다. 새로운 자회사를 계속 지배하기 위해서는 공정거래법상 지분 확보 의무가 있다. 이에 기존 주주가 추가로 자금을 투입해 지분을 매입해야 한다. 아무리 재벌총수라고 하더라도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막대한 자금이 필요해질 수도 있다. 특히 계열사가 크면 부담도 역시 커진다. 그렇기에 중요한 계열사를 물적분할하는 것이 안전하다.
게다가 물적분할된 기업은 상장까지 해 시중 자금을 긁어모을 수 있다. 재벌의 지배력이 그만큼 커지는 것이다. 그런 방식으로 계열사를 무한히 늘리고 지배력을 한없이 확장하는 것도 이론상 불가능하지 않다. 한마디로 물적분할과 중복상장은 재벌들이 소액주주의 자금을 이용해 지배력을 확장하는 데 안성맞춤이다.
실제로 LG화학에서 독립한 LG에너지솔루션은 내년 초 상장될 예정이라고 한다. 올해 상장하려고 하다가 곳곳에서 일어난 전기차배터리 화재사고로 말미암아 신인도가 추락함에 따라 연기됐다. LG화학이 상장회사인데 분할된 LG에너지솔루션도 기업공개한다고 하니 전형적인 '중복상장'이다. 아니 지주회사인 ㈜LG도 이미 증시에 상장돼 있으니 '3중 상장'이다.
물적분할과 중복상장은 재벌의 양적성장에는 유리하지만, 기존 기업의 주주에게는 별다른 이점이 없다. 이를테면 LG화학의 주주들은 배터리 사업의 성장에 큰 기대를 걸어왔다. 그러나 이 사업이 별도법인으로 '물적분할'돼 나갔으니 그동안의 기다림이 모두 허사로 돌아간 것이다.
그러니 기존 기업의 주주들은 배신감을 느끼게 된다. 배신감이 누적되면 'LG디스카운트'나 'SK디스카운트' 혹은 '카카오디스카운트'로 커질 수도 있다. 나아가서는 국제적으로 코리아디스카운트를 고착화시킬 한가지 요인이 될 수도 있다.
이런 재벌에 비해 "물적분할하되 별도 상장은 하지 않겠다"는 포스코의 방침은 기업의 성장과 주주이익의 보호 사이에 나름대로 균형을 취했다고 여겨진다. 그렇지만 포스코도 다른 재벌처럼 나중에 마음을 바꾸지 않는다고 확신하기 어렵다. 다만 포스코가 족벌이 지배하는 재벌들과 달리 '포스코 디스카운트'는 발생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다.
다른 재벌들도 앞으로 포스코의 이번 전환사례를 잘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는 물적분할과 중복상장을 거침없이 해왔지만, 언제까지나 그럴 수 있다고 믿어서는 안된다. 국내외 주주의 감시망이 더욱 촘촘해지고 특히 행동주의 주주운동으로부터 언제든 공격의 표적이 될 수도 있다.
아울러 물적분할과 중복상장에 대한 법적규제론이 거세질 수도 있다. 이미 윤석열 국민의힘 대통령후보는 기존주주들에게 신주인수권을 부여하는 등 투자자보호 제도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소액주주 권익을 보호해야 하는 정부와 정치권에서 이 문제가 더 활발하게 논의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 규제가 만들어지기 전에 재벌 스스로 자제력을 발휘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할 것이다.
차기태 언론인(folium@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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