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배한님 기자] 혐오범죄에 대한 대응 관련법 제정에 대한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 법으로 규제하지 않는 이상 온라인상 혐오 발언을 막지 못한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법과 제도만으로는 혐오의 굴레를 끊을 수 없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혐오 댓글'이 문제가 아니라 '혐오' 그 자체가 문제라는 인식 개선도 동시에 필요하다는 의미다.
포털 댓글 막으니 유튜브·DM으로
2019년 설리 사망 사태 이후 포털은 사회적 책임 강화를 외치며 댓글 정책을 줄이어 내놓았다. 혐오 발언이 가장 많이 발생하는 연예·스포츠 뉴스 댓글창을 막았고, 인공지능을 활용한 필터링 기술도 적용했다.
카카오의 댓글 개편. 사진/카카오
그러나 양대 포털이 다양한 자구책을 내놓자 악플러들은 무대를 옮겨가며 활동을 지속했다. 포털 댓글에서의 악플을 줄었지만, 개인 소셜미디어(SNS)로 보내는 다이렉트 메시지(DM), 유튜브 댓글,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글 등에서는 관련 문제가 더욱 심각해지는 '풍선효과'가 발생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에 따르면 비방의 목적으로 명예를 훼손하거나 정당한 권한 없이 타인의 사진, 영상 등을 게재해 인격권을 침해하는 '권리침해' 시정 요구는 2016년 7783건에서 2020년 3만5881건으로 약 5배 증가했다. 이 중 국내 양대 포털에 대한 네이버와 카카오에 대한 권리침해 시정 요구는 90건에서 96건으로 대동소이했으나, 유튜브가 포함된 구글에 대한 시정 요구는 2019년 37건에서 2020년 303건으로 1년 만에 급증했다.
교묘해지는 혐오 댓글…'고소각' 잰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악플 다수는 명예훼손보다 모욕 또는 혐오·차별 표현에 속한다. 범죄심리학자들은 이런 유형의 혐오 댓글이 '수동적 공격' 행태라고 설명한다. 공정식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악플러들에 대해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한 자들, 존재감이 약하거나 피해의식이 있는 사회부적응자들이 직접적인 공격 대신 악플이라는 수동적 공격을 통해 자신의 심리적 결함을 보충하는 행태"라고 했다.
문제는 이런 혐오성 댓글의 처벌이 약하다는 점이다. 현행법상 모욕죄는 1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2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받는다. 혐오와 차별 표현을 처벌할 근거도 약하다. 지난 2020년 더불어민주당 전용기 의원이 온라인상 혐오·차별 표현 등 모욕에 대한 죄를 명시하는 '전기통신망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몇 년째 논의에 진전이 없다.
상황이 이래지자 악플러들은 '고소각'을 재며 혐오 발언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모욕과 혐오의 의미는 그대로 담되, 고소당하지 않을 정도로 교묘하게 악성 댓글을 작성하는 것이다. 김수아 서울대 언론학과 교수는 이런 상황을 놓고 "우리 사회 공동체가 법으로 처벌될 때만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는 담론에서 법 규제를 어디까지 이야기해야 하는가"라고 꼬집었다.
혐오에 대한 인식부터 바뀌어야
사진/뉴시스
전문가들은 악플을 다는 사람의 인식이 바뀌지 않는 이상 같은 문제는 반복될 것이라 주장한다. 법과 제도를 만들면서 정부 기관과 시민 단체가 함께 교육이나 캠페인을 펼쳐 인식 변화를 이끌어 나가야 한다는 의미다. 혐오 콘텐츠를 제작하거나 댓글을 다는 것만이 범죄라고 생각하거나, 교묘하게 '고소각'을 재는 사람들 사이에서 '혐오' 그 자체에 대한 인식부터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혐오 콘텐츠를 소비하는 사람의 인식 변화도 필요하다. 호기심에, 재미 삼아 큰 고민 없이 자극적인 혐오 콘텐츠를 시청하는 이들이 많은 상황에서 관련 콘텐츠의 확대·재생산을 막기는 어렵다. 이런 문제는 유튜브나 커뮤티니뿐만 아니라 언론 보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지난 9일 "온라인 커뮤니티나 소셜미디어, 댓글창, 유튜브 등에서 생산된 각종 루머나 비난 여론을 무분별하게 인용 보도해온 언론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지 되돌아보게 된다"고 지적했다.
온라인 폭력 방지법을 준비하고 있는 정의당 장혜영 의원도 근본적인 해결책은 인식 전환이라고 강조한다. 무차별하게 학습·재생산되는 혐오 발언을 막기 위해 차별금지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장 의원은 "어떤 차별들을 우리가 금지해야 하는 거냐에 대한 최소한의 규정이 있어야 되는 것"이라며 "차별금지법이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자꾸 개별 사안을 중심으로 접근하게 되는 한계들이 생겼다고 본다"고 분석했다.
자율 규제에 미온적인 해외 플랫폼의 변화를 끌어내기 위해서도 혐오 자체에 대한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박엘리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KISO) 정책팀장은 구글과 페이스북, 트위터 등이 프랑스의 인터넷자율규제기구에 참여한 사실을 언급하며 "혐오 표현 쪽에서 해외가 더 예민하기 때문에 (구글 등도) 적극적으로 대응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배한님 기자 bh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