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사랑은 남을 거야. 사랑은 남을 거야. 사랑은 남을 거야, 결국에는….’(수록곡 ‘The Last Thing Left’ 중)
시원한 파도처럼 카랑카랑한 기타 리프와 부서지는 햇살처럼 해사한 리듬. 부산 출신 세계적 록 밴드 세이수미의 정규 3집(13일 발매)에는 여전히 도시를 삼킬듯 광안리 바다가 넘실댄다.
서구의 서프 록, 슈게이징 방법론을 빌려온 맑고 묽은 화성과 선율 진행, 그러나 ‘염불 외듯’ 덤덤하게 읊조리는 목소리, 삶의 그늘로부터 빛과 낭만을 향하는 가사에는 그들 고유 인장이 오롯이 찍혀있다.
햇수로 약 5년 만의 정규앨범. 10곡 전곡을 미리 들어봤다. 비치보이스를 연상시키는 경쾌한 사운드 위로 록에서 팝의 영역까지 횡단한 수많은 음악가들, 비틀즈, 욜 라 탱고, 라몬즈, 블론디의 환영이 스쳐갔다. 10일 광안리 바다 200m 앞 작업실에서 화상 모니터를 켠 멤버들, 최수미(보컬, 기타), 김병규(기타), 김재영(베이스), 임성완(드럼)은 “2집 월드투어가 정점이던 때 코로나가 닥쳤고 자연스럽게 음반 작업에 몰두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코로나 직전에는 병상에 오래있던 원년멤버(전 드러머) 세민이 세상을 떠나는 아픔도 겪어야 했다.
10일 광안리 바다 200m 앞 작업실에서 화상 모니터를 켠 세이수미 멤버들, 왼쪽 상단부터 지그재그로 임성완(드럼), 최수미(보컬, 기타), 김재영(베이스), 김병규(기타). 사진=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나쁜 감정들은 잠시 제쳐두려 했어요. 결국 마지막까지 남는 것은 무엇일까. 사랑이더라고요.”(최수미) 이번 앨범명이 ‘The Last Thing Left(마지막에 남은 것)’인 이유다. 사랑은 일종의 실존주의적 질문이 된 것일까. 밴드는 “타인과 자기 혐오가 들끓는 시대에, 반대로 사랑에 대해 소중한 마음을 가지면 어떨까 싶었다. 불확실한 이 시대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조금이나마 음악으로 극복할 힘을 가졌으면 한다”고 부연했다.
타이틀곡이자 선공개곡 ‘Around You’는 본작이 록에서 본격 팝의 영역까지 넘어가는 인상을 주는 대표 곡이다. 부드럽고 캐치한 기타 멜로디와 밝은 목소리가 팝적 음률을 이룬다. 가사는 팬데믹 시기의 고립된 자아가 “이렇게는 안되겠다”는 다짐과 함께 세상으로 나아간다는 이야기. 거리두기 해제로 일상을 되찾고 있는 오늘날과 의도치 않게 맞아떨어졌다.
“펑크적이지만 뜯어보면 팝이었던 라몬즈 같은 음악을 좋아해요. 수미가 통기타 반주로 짧게 데모를 들려줬을 때 의도적으로 캐치한 사운드를 내보고자 했고, 이 곡 기점으로 앨범 전체가 밝아졌어요.”(김병규)
정규 3집 ‘The Last Thing Left’으로 돌아온 세이수미. 사진=세이수미
전작과 구별되는 사운드 실험들이 엿보이는 지점도 있다. 수록곡 ‘We Look Alike’는 펑키기타 리듬에, 보컬 딜레이의 실험이 뒤섞인 사이키델릭 펑키 록이다. 흡사 캐번클럽처럼 공간감 큰 공연장에서 라이브 연주를 듣는듯한 느낌을 준다. ‘나도 웃으면 너도 따라 웃듯’ 서로 공감하면 닮아갈 수 있다는 얘기를 담았다고. “다름을 인정하자는 뻔한 이야기를 하려했던 것은 아니에요. 특정 사람을 떠나, 인류 전체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앨범 전체 중 유일한 한국어 곡 ‘꿈에’는 뭉개지는 기타 노이즈가 색소포니스트 김오키의 아방가르드한 금빛 지류와 난장을 이루는 후주 파트가 특히 압권이다. 곡은 죽음에 관한 이야기다. “사별, 그게 끝이 아닐 거라고 믿게 됐어요.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내용입니다.”(최수미)
상실, 슬픔을 완벽하게 걷지는 못하지만 그럼에도 살아가야겠다는 이야기 아니었을까. 마지막곡 ‘George & Janice’에서 앨범은 행진곡 같은 느낌으로 막을 내린다. 실제 이들의 해외 활동을 돕는 영국 유명 인디 레이블 ‘댐나블리’ 수장 조지와 자니스의 결혼 축하 선물로 쓴 곡을 재편곡 한 것이다.
사랑은 똬리를 틀어 인류를, 지구를 돌돌 만다. “사랑만 있다면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궁극적으로는 그것을 깨닫기까지 과정에 대한 이야기에요.”(최수미)
창작집단 모임별이 도움을 보탠 울긋불긋 포스터는 대번에 눈길을 사로잡는다. 네 정체불명 생명체는 멤버들을 의미한다고. 사진=세이수미
2012년 결성. 한국대중음악상 수상. 2017년 댐나블리 계약 후 유럽과 일본, 동남아, 북미 투어. 피치포크, BBC 6 Music Radio, KEXP LIVE 같은 굵직한 해외 매체에선 이들과 록의 변방 한국에 주목하며 ‘부산이란 도시가 대체 어딘가’ 질문하기 시작했다. 3집 발매 이후 북미와 아시아 투어도 현재 계획 중이다.
“잊을 수 없는 경험은 웨일즈에서 열린 ‘그린맨 페스티벌’ 때입니다. 저희들의 ‘아이돌’... 욜라 탱고 분들과 DM 하는 사이거든요.(웃음) 그 분들이 자신들 무대 날 백스테이지로 안내해 주셔서 공연도 보고 이야기도 나눈 그때는 정말이지 짜릿했어요.”(최수미)
“막내 역할이 익숙했는데 어느덧 부산 밴드 10년차네요. 요즘 소음발광, 보수동쿨러, 해서웨이 같은 팀들의 활약도 잘 지켜보고 있어요.”(김병규)
이번 앨범이 청자에게 어떤 공간으로 가 닿으면 좋을까, 마지막으로 물었다.
“좋은 대화가 오가는 어떤 곳이라면 될 것 같아요. 어떤 때는 귀 기울이고 싶다가도 노이즈 같은 게 나올 때는 집중 않고 가만있어도 되고. 술을 마셔도 좋고. 집에서 혼자 듣는다면 가볍게 춤을 춰보시는 것도 추천 드립니다.”(세이수미)
정규 3집 ‘The Last Thing Left’으로 돌아온 세이수미. 사진=세이수미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