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넘게 이어온 코로나19시대가 끝나간다.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의 근황을 듣는다. 위축됐던 음악계는 이제사 좋은 시절을 기대한다. 희망이란 달달한 것이 없어보였던 지난 2년, 조용히 한 여름의 빛이 내려쬔 곳도 있다. 오디오 업계다. 얼마전, 한 고급 오디오 취급 업체 사장을 만났다. “어려우셨죠?” 라는 질문에 그는 미안한듯 대답했다. “사실… 남들한테 미안해서 말은 못했는데 이 쪽 시장은 엄청 호황이었어요.” 빛과 어둠은 늘 공존하는 법이다. 금융자산 가치가 폭등하던 시기였지만 돈 쓸 일은 줄었으니 번 돈이 많아진 사람이나 원래 많이 벌던 사람들 중 일부가 고급 오디오 시장에 진입한 것이다.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오디오 시장이란 게 그리 크지 않아서 정확한 통계를 알 수는 없지만 체감은 할 수 있었다. 중고가 오디오를 주로 들여놓던 편집샵이 있다. 올 봄 언젠가 그곳을 방문했다. 더 이상 ‘중'고가 샵이 아니었다. 그냥 고가 오디오가 즐비했다. 몇 천만원대 세트를 찾는 사람들이 늘어났다는 것이다. 최근 강남 못지 않은 고급 주거지로 떠오르는 이 지역에 이사오는 사람들이 몇 천만원 짜리 세트를 다이소에서 물건 사듯 구입한단다. 조금 비현실적인 기분이 들었다.
10여년전 오디오에 입문했다. “음악평론가라면 좋은 오디오 하나 쯤 있어야죠”라는 말에 ‘뽐뿌’가 끓어올라 몇 년에 걸쳐 하나 하나 세팅을 했다. 있는 돈이 없으니 노력과 시간으로 버텼다. 중고 오디오 거래 사이트에 특급형사처럼 장복했다. 괜찮아 보이는 물건이 있으면 누구보다 빠르게 낚아 챘다. 맘에 안들면 되팔고 다른 물건을 또 사냥했다. 시지프스가 바위를 굴리듯 사고 팔고 바꾸고 또 바꿨다. 조촐하나마 (물론 환자가 아닌 정상인에게는 많은 비용으로 보일) 시스템을 갖췄다. 오랜 시간 안분지족의 마음으로 살았다. 억대 시스템을 갖춘 이의 집에 놀러가기라도 하면 마음속 심연 어딘가에서 뭔가가 끓어올랐다. 그럴 때는 통장잔고를 떠올렸다. 액체수소급 냉매였다. 이제 냉매를 처분할 때가 됐다. 돈은 없지만 여분의 공간이 생겼으니.
이사를 하면서 다시 십여년 만에 강호로 돌아왔다. 바뀐 환경에 맞는 시스템을 갖추기 위해서다. 앰프를 바꾸기로 했다. 문제는 거기서 부터였다. 과거, 내가 강호를 누비던 시절 쉽게 구할 수 있던 매물들이 씨가 말랐다. 거래 이력들을 보니 제법 이름 있는, 적당한 가격의 중고 매물은 나오는 족족 마치 노른자위 아파트 청약처럼 사라지고 있었다. 꾸준히 강호에 머물고 있던, 중고 오디오 시장 애널리스트급 환자에게 물어봤다. “코로나19 이후에 중고가 씨가 말랐어. 전통의 인기 매물은 당연하고, 그리 유명하지 않은 회사 것도 괜찮다는 평 있으면 바로 나가.” “이 바닥에도 큰 손들이 많이 들어온건가?” “아니, 사람들이 돈 쓸 곳이 없으니까 평범한 월급쟁이들도 많이 들어온 것 같애. 주식 시장으로 치면 개미들이 떼지어서 들어온거지.” 오디오는 자동차 못지 않게 감가상각이 심한 세계다. 포장만 뜯어도 ‘수업료’라는 이름으로 가격이 쭉쭉 빠진다. 재테크와는 거리가 멀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시장이 활황이라니. 지난 봄 고급 오디오 샵에서 다이소 고객처럼 쇼핑을 한다는 이들을 보며 느꼈던 약간의 비현실감이, 좀 더 생생하게 다가왔다. 해외 뉴스와 국내 뉴스의 체감 차이 정도로. 결국 나는 중고거래를 포기하고 오디오 샵에서 원하는 기기를 살 수 밖에 없었다.
비록 이 시장 비슷한 것, 이 뜨거워지면서 원하는 매물을 원하는 가격에 구하기가 힘들어졌지만 한 편으로는 좋기도 하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19 이전보다 더 좋은 소리로 자기가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있다는 얘기일테니까. 나는 생각해왔다. 세상에 ‘막귀’란 없다고. 단지 좋은 소리를 경험할 기회가 그만큼 없었을 뿐이라고. 오디오에 처음 입문했을 때, 밖에서 술을 마시다가도 집으로 달려가곤 했다. 소리가 주는 황홀경이 자꾸 귀에 맴돌아서다. 이유야 어쨌든 이 쪽에 입문한 이들, 즉 환자들이 늘어났다. 동병상련, 아니 동병상축을 전한다.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일일공일팔 컨텐츠본부장(noisepop@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