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1일부터 5일간 코엑스에서 대한출판문화협회 주최로 서울국제도서전이 개최됐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3년 만에 대규모 대면 도서전을 연 결과 약 10만 명의 관람객이 참가하는 성과를 거뒀다. 3년 전보다 국내외 참가사가 줄었지만 책을 좋아하는 독자들이 건재함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타는 목마름 같은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많은 분들이 찾아오셔서 굉장한 기쁨을 느꼈다"고 개막식 축사를 했듯이, 근래 보기 드문 책의 향연이었다.
도서전은 변화를 위한 꾸준한 노력을 뜻하는 '반걸음'을 표제어로 내걸었다. 나라 이름에서 커피가 연상되는 나라, 『백 년의 고독』의 작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나라인 콜롬비아가 주빈국이었다. 수교 60주년 기념으로 지난 4월 보고타국제도서전에서 한국이 주빈국으로 참가한 데 이어 콜롬비아가 교차 주빈국으로 참가한 것이다. 15개국 195개(국내 177개) 참가사와 167명의 국내외 저자 및 강연자가 참여해 306회의 풍성한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주제 '반걸음'에 맞춰 용기 있게 반걸음을 뗀 의미 있는 브랜드를 소개하고 공동체의 미래를 생각하는 책 큐레이션을 선보인 주제 전시회, 국내외 작가들의 강연과 세미나, 신간 발표 도서를 모은 '여름 첫 책', 리커버 도서를 선보인 '다시, 이 책', 디지털북 프로그램 '책 이후의 책', 독립·아트북 출판 마켓 '책마을', 오디오북 부스와 체험 프로그램 등 볼거리가 적지 않았다.
특히 국제적으로 명성이 확인된 지난 3년간의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 전시, 전시 판매 부스에 입추의 여지가 없었던 민음사와 문학동네, 마음산책 출판사는 두터운 팬덤을 확인시켰다. 반걸음을 주제로 15편의 시와 5편의 소설을 모아 만든 도서전 한정판 기획 도서인 '리미티드 에디션'은 전시장에서 당일 5만 원 이상 책 구입자에게 증정하는 오리지널 콘텐츠로, 인터넷서점들과의 연동 이벤트를 통해 신간 발표 도서나 리커버 도서 구입자에게도 증정해 도서전의 확장 기획으로 주목받았다. 다만 오프라인서점에게 이 기회가 주어지지 않은 것은 편의주의적 차별이다.
종합적으로 볼 때 이번 서울국제도서전은 코로나19 팬데믹을 비롯한 여러 난관 속에서 훌륭하게 반걸음을 뗀 행사라 하겠다. 그렇지만 돌파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 경제적 장벽을 제거해 보다 많은 참가사와 관람객이 참여하고 누리는 진정한 책 축제의 장을 펼쳐야 한다. 그 많은 출판사 중에서 200개 미만의 소수 출판사만 전시장에 출판사 명패를 내건 데는 매우 부담스러운 부스 임차료가 걸림돌이 됐다. 관람객의 현장 입장권 구매액이 1만 원인 것도 독서인구가 줄어드는 마당에 과도하다는 지적이다. 물론 사전 예약 할인 등이 있었지만 제한적이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예산 지원 확대와 서울시 등 지자체의 적극적인 지원이 뒷받침돼야 할 대목이다.
지난 5월 개최된 파주어린이책잔치의 경우 실내 부스의 무료 제공으로 참가 출판사의 만족도가 매우 높았다. 적어도 참가비 때문에 자사 콘텐츠를 선보일 기회를 마련하지 못하는 고충을 겪지는 않았다. 부산국제영화제를 비롯해 도시 이름을 내건 지자체의 대표적인 문화 행사에는 큰 규모의 예산을 지자체가 부담하는데, 문화도시를 표방하는 서울시는 역대 도서전에서 한 차례도 재정 지원을 한 적이 없다. 보다 많은 출판사, 관련 기업과 단체, 언론, 관련 학과가 있는 대학, 시민이 참가하는 진정한 책 축제로 나아갈 수 있도록, 서울도서전이 서울시의 대표 문화 브랜드의 하나로 자리잡도록 탈바꿈해야 한다.
우리나라 도서전은 한국전쟁으로 국토가 폐허가 된 1954년 11월에 7일간 국립도서관(당시 소공동 롯데백화점 자리)에서 '지식은 광명이다'를 내걸고 제1회 전국도서전시회가 개최되면서 시작됐다. 계몽적 독서 캠페인 성격의 도서전이 변신한 것은 광복 50주년을 위해 국제도서전으로 격상된 1995년이다. 한동안 아동·교육 출판사들의 할인 판매장으로 비판받던 도서전은 도서정가제 강화 조치로 2015년부터 단행본 출판사들이 주축이 되는 방향으로 운영돼 왔다. '국제' 도서전으로의 발전을 위한 과제도 중차대하다. 이제 반걸음을 뛰어넘어 한 걸음씩 크게 전진하는 서울도서전을 기대한다.
백원근 책과사회연구소 대표, 출판평론가(bookclub21@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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