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좋은 공연, 의도치 않은 여행길 같은 것

9일 서울 마포구 벨로주 홍대서 열린 '오소영의 다이어리'
지난해 데뷔 20주년 싱어송라이터 오소영
재주소년·이주영·A.TRAIN·시와…음악-토크 결합 이색 합동 공연

입력 : 2022-07-14 오후 6:06:32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일렉기타와 이펙터가 생성하는 전자음의 잔향, 루프스테이션을 활용한 반복 악절들의 증축. 피톤치드처럼 뿜어지는 전자음들은 쌓이고 우거지며 ‘소리의 숲’을 조성했다. 원곡의 가사가 어쩐지 애달픈 물빛처럼 번졌다. 
 
“내 안에 슬픔이 고이고 넘쳐도/내 눈물은 아무 맛도 나지 않을거야.”
 
9일 오후 6시, 서울 마포구 벨로주 홍대. 싱어송라이터 재주소년이 재해석한 편곡 무대. 지난해 데뷔 20주년을 맞은 싱어송라이터 오소영의 포크 노래 ‘숲’(2009·2집 ‘A Tempo’ 수록)을 이렇게도 들을 수 있다니, ‘대체 뭘까’ 하며 질문들이 솟아났다.
 
9일 오후 6시, 서울 마포구 벨로주 홍대. 공연 직전 출연 뮤지션들의 실험적인 영상을 보는 시간도 있었다. 사진=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평소 좋은 공연은 많은 질문을 던지게 하는 공연이라 생각해왔다. 무대 위 알 수 없는 행동들을 봤을 때, 그에 숨은 미묘한 의미가 무엇인가 행간을 읽는 과정에서 시대의 질문이 생겨나기 마련이고, 그것이 좋은 공연과 그렇지 못한 공연을 결정한다.
 
이날 이곳에서 열린 공연 ‘오소영의 다이어리’는 결론적으로 좋은 공연이었다. 기획부터 오소영 자기 안의 물음에서 출발했다. 오랜 시간 ‘음악이 대체 뭔가’, ‘왜 음악을 하고 있나’ 품던 자문은 주변 음악가들(재주소년, 이주영, A.TRAIN, 시와)과 ‘깊은 이야기가 오가는 공연으로써 답을 찾아보자’는 생각으로 번져, 이 공연 기획으로까지 이어졌다.
 
이날 재주소년에 이어 무대에 오른 이주영은 단출한 음표 위로 천천히 걸어가듯 노래했다. 하나하나 누르는 건반 타건 위로 곡 ‘소나기’의 가사가 붓질을 시작하자, 바로 옆 숨을 최대한 죽인 관객 누군가가 마스크 뒤 흐르는 눈물을 연신 훔쳐댔다. “영어 제목은 마이선샤인. 소나기처럼 쏟아지던 나의 빛, 반짝이고 찬란했던 시절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이주영) 
 
무대 위 기묘한 초록 유령 분장의 퍼포머를 ‘분신’처럼 앞세운 A.TRAIN은 “코로나 시대 누군가는 세상을 떠났고 우린 여전히 부유하는 마음들이다. 결국 가라앉을 테니 견딜 수 있는 만큼만 아파하자”며 첼로와 미디건반 사이에서 ‘우리가 불 속에 놓고 온 것들’을 연주했다.
 
어쿠스틱 기타 튕김의 너른 잔향으로 3박자 왈츠를 펼치던 시와는 오소영의 대표곡 ‘기억상실’을 편곡해 들려주며 “오소영의 노래는 친구가 끌어안는 것처럼 부드럽고 강한 힘이 있다. 자신의 마음을 풀어내더라도 누군가에게는 위로로 가 닿는 음악”이라고 풀어줬다.
마이크와 대본을 들고 사회자 역할까지 맡은 오소영이 관객들과 대화 할 때, 음악에 얽힌 관객들의 사연을 한줄 한줄 읽어내려갈 때, 음악은 시냇물처럼 흘렀다. 이야기가 되고 삶이 되어 관객 마음을 계속해서 덧칠해갔다.
 
스스로 다시 물었다. 좋은 공연이란 무엇인가. 의도치 않은 길을 맞닥뜨리는 여행 같은 것이다. 여러 갈림길을 맞닥뜨리고, 여러 질문들이 샘솟고, 다시 해답을 찾아가는 여정에서, 우리는 우리를 만나게 된다. 이날 그런 여러 순간이 있었다. 투박하지만 정감 있게 사연들을 하나하나 읽어줄 때, 입을 동글게 말고 “오늘도 하늘을 보자” 다 같이 떼창할 때, 공연날을 위해 썼다는 신곡 ‘너는’에 앞서 아르페지오를 투닥이던 오소영이 “다시 할래요” 시원솔직하게 얘기할 때. 
 
‘절반의 립싱크’가 표준화돼 기계처럼 차갑게 느껴지는 일부 아이돌의 대형 공연에서라면 볼 수 없을 광경이다. 좋은 공연이란 이렇게 사람 내음이 나는 것이다. 
 
9일 오후 6시, 서울 마포구 벨로주 홍대에서 열린 '오소영의 다이어리'. 사진=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이 기사는 서울문화재단에서 진행하는 '2022 인디음악 생태계 활성화 사업: 서울라이브' 공연 평가에 게재된 글입니다.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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