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역대 최다 관객 펜타포트…"서태지 5만 기록 넘어" 전망도

폭염도 열대야도 물리친 넬·잔나비·크라잉넛 등 '국가대표 밴드'

입력 : 2022-08-07 오후 2:02:43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저희가 '트라이포트 페스티벌'부터 지금까지 어쩌다보니 펜타포트의 역사를 함께 해오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저 뒤에 (힐스테이트 같은) 건물도 없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이 곳도 이렇게나 많이 변했다는 걸 실감합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그간 이런 대규모 야외 페스티벌을 오랜 만에 하게 돼 감회가 새롭네요."
 
5일 인천 인천시 연수구 송도 달빛축제공원.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첫 날 마지막 무대, 간판출연진(헤드라이너)으로 무대에 오른 밴드 넬이 말했다.
 
올해 데뷔 23년차 밴드 넬은 펜타포트가 첫해를 맞던 2006년 출연을 시작으로 역사(2016년 메인무대 헤드라이너, 2020년 비대면 출연)를 함께 하고 있다. 이들이 밴드명을 넬로 정하게 된 것도 펜타포트 전신인 1999년 7월31일 트라이포트 록 페스티벌을 보러 갔다가 비를 피하기 위해 찾은 한 PC방에서다.
 
2001년 'Reflection of'와 'Speechless' 앨범으로 시작해 2002년 서태지의 인디레이블 '괴수인디진'에 합류했고 인피니트 소속사 울림을 거쳐 현재 독립해 활동하고 있다. 2003년 'Let It Rain'을 시작으로 지난해 'Moments in between'까지 총 9개의 정규앨범을 낸 한국을 대표하는 모던 록 밴드다.
 
이날 무대에 오른 넬은 '유령의 노래', 'Stay', '백색왜성' 같은 데뷔 초 괴수인디진 시절 음악부터 23년 밴드사 전반에 걸친 선곡들로 관객들과 호흡했다.
 
대표곡 '기억을 걷는 시간' 때는 객석 전체가 핸드폰 백플래시로 뒤덮였다. 후주를 길게 늘어뜨리는 편곡(마지막 곡 '믿어선 안될 말' 등)과 무대 뒤 LED의 화려한 연출은 현란한 라이브의 진수를 제대로 느끼게 해줬다. 밴드는 기자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조명의 특별함을 위해 직접 우리가 쓰는 물량을 동원할 정도로 무대 연출에 신경을 썼다"고 했다. 현란함으로 11시가 넘어가는 늦은 시간에도 송도를 뜨겁게 달궜다.
 
'2022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첫날 헤드라이너로 무대에 오른 넬. 사진=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주최 측
 
넬과 역사를 함께 해온 펜타포트는 1999년 '트라이포트 페스티벌'에서 시작됐다. 이후 2006년 '인천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로 명칭을 바꾼 후 17년째 이어져 오고 있다. 딥퍼플, 뮤즈, 트레비스, 언더월드, 콘, 들국화, 서태지 등 1200팀 이상을 무대에 세웠고 약 100여만명의 누적관객을 동원한 국내 록페의 자존심으로 꼽힌다.
 
2019년 주관사 변경과 '사골' 라인업(이전 출연한 뮤지션들의 재출연), 행사 본 취지와 상관 없는 프로모션 부스 섭외 등으로 지적을 받았다. 올해도 라인업 약세에 대한 지적은 있지만 코로나 팬데믹 영향에 이 정도면 선방했다는 평가도 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지난 3년 간 야외에서 진행되지 못한 만큼, 올해 관객들의 열기는 예년보다 뜨겁다. 주최 측에 대한 취재를 종합해보면 매일 3만 명이 넘는 관객이 행사장을 찾고 있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특히 전체 티켓 예매 수의 약 20% 정도는 현장에서 티켓을 구매하고 있다. 주최 측 홍보 관계자는 기자와의 대화에서 "올해 펜타포트가 역대 가장 많은 관객 수를 동원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첫날 관객 만으로 2015년 가장 뜨거웠던 '서태지(5만명 동원) 펜타포트'를 넘어섰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고 했다.
 
'인천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관객들. 사진=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최근 일일 확진자 수가 12만명을 넘어서고 누적 확진자수가 2000만명을 넘어선 가운데, 방역 긴장감도 고조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펜타포트 주최 측은 안전관리 요원을 400명 규모로 배치하고 젖은 마스크를 수시로 갈아 끼울 수 있도록 새 마스크 600장을 현장에 비치하며 방역에 만전을 기하며 긴장감 속에 진행되고 있다. 행사장 시설 전체를 대상으로 상시 방역이 진행되고 발열 등 의심 증세가 있을 경우 누구나 자가키트로 검사를 진행할 수 있도록 이상증상자 자가진단부스와 확진자 발생 시 다른 관람객의 접촉을 차단할 수 있는 격리부스도 설치했다.
 
'2022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넬 무대 전경. 사진=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주최 측
 
헤드라이너 넬 무대 이외에도 첫날 서브 무대의 타히티 80 무대도 관객들의 반응이 좋았다. 
 
프랑스 노르망디 루앙 출신 팝밴드인 타히티 80은 1995년 결성된 팀으로, 2000년대 초반부터 한국 공연을 이어왔다. 나비(butterflies), 햇빛(sunshine), 수영복(swimming suite) 같은 예쁜 단어들을 아름답고 절제된 멜로디로 구현해내는 팀이다. 이번 공연에선 올해 초 발표한 신작 'Here With You' 수록곡들을 다수 들려줬다. 공연 직전 본보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밴드 멤버들은 "한국의 관객들은 미칠 듯한 반응을 해준다. 올 때마다 그 기분 좋은 경험으로 계속해서 오게 된다. 한국식 바비큐 등 음식도 사랑스럽다"고 말했다.
 
특히 밴드 보컬이자 밴드 전반 프로듀싱을 담당하는 자비에르 보이에르와 베이시스트 페드로 르상드가 국내 밴드 더보울스의 프로듀서로도 활동하는 등 한국 음악과 연을 이어오고 있는 팀이다.
 
'2022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타히티 80 무대. 사진=펜타포트락페스티벌 주최 측
 
국내 대표 펑크 록 밴드 크라잉넛도 첫날 관객들을 '록의 현장'으로 이끌었다. '말달리자', '마시자', '서커스 매직 유랑단', '룩셈부르크' 같은 곡이 나올 때 현장은 관객들이 그린 원의 슬램(몸을 격하게 부딪히는 동작)으로 들끓다가도, '밤이 깊었네' 같은 서정적인 곡에서 함께 떼창을 쏟아내며 축제를 즐기는 관객들이 눈에 띄었다. 대만 매스록 밴드 엘리펀트짐과 한국 슈게이징 밴드 TRPP, 넉살·까데호의 합동 무대를 비롯해 올해 펜타포트는 적재, 선우정아, 유라 등 장르의 폭을 소울·R&B까지 넓히는 시도들도 눈에 띄었다.
 
둘째 날 메인 무대에 오른 잔나비도 독무대에 가까운 모습으로 현장을 뜨겁게 달궜다. 30도를 오르내리는 8월 한여름의 폭염도, 열대야도 무색했다. '주저하는 연인들을 위해', '뜨거운 여름밤은 가고 남은건 볼 품 없지만', '전설' 등 대표곡들이 노래 될 때 한글 가사가 적혀 떼창을 하고, 관객들은 알록달록 거대한 공들을 튀기며 방방 뛰고 팔을 흔들었다. 
 
남아프리카 출신으로 현지 한국대사관에서 봉사자로 일하고 지난해 영어교사를 위해 한국에 왔다는 관객 샹떼 엄케(Chante Ehmke)씨는 잔나비의 무대가 진행되는 동안 쉴새없이 박수를 치며 호응했다. 그는 "무대 건너편 힐스테이트에 살고 있는데 어제 굉장한 사운드를 지켜보다가 오늘 인생 첫 '펜타포트'를 현장 관객으로 참여했다. 잔나비라는 팀을 이번에 알게 됐는데 무대 카리스마를 보고 반했다. 한국의 전통악기인 꽹과리를 치는 모습도 흥미롭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또 "투애니원과 슈퍼주니어, 제시 등 K팝을 좋아한다"는 그는 "잔나비 같은 한국 밴드들의 독특한 매력에 끌린다. 특유의 리듬감은 한번 들어도 흥얼거릴 수 있을 만큼 중독적이다"고 했다.
 
'2022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에서 만난 남아프리카 출신 관객 샹테 엄케 씨. 사진=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마지막 서브 헤드라이너로 무대에 오른 미국 포스트 메탈밴드 데프 헤븐은 시원한 '사운드 샤워'를 선보여 음악 팬들 사이 주목을 끌어냈다. 2010년 결성된 밴드는 이 해에 첫 데뷔작 'Formation and demo'으로 데뷔했다. 거칠게 포효하는 스크리밍과 굵은 기타 톤의 메탈 사운드가 장기다. 총 5개의 정규 앨범을 내오며 세계적인 메탈 밴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무대에 오르기 전 본보 기자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우리들의 음악은 아이슬란드의 여행과도 같다. 우주 어딘가를 떠돌아다니는 느낌의 사운드로 초대할 것"이라 자신했다. 2014년부터 서태지의 음향 감독이자, 넬과 혁오, 잠비나이 등 국내 록 음향 전문가 조상현 몰스튜디오 감독이 이날 데프헤븐의 사운드를 매만져 '지진 같은 사운드'로 관객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갑작스런 소나기가 쏟아지는 상황에도 이날 마지막 헤드라이너 뱀파이어 위켄드까지 수만 관객들이 자리를 지키는 등 열기는 뜨거웠다.
 
데프헤븐. 사진=펜타포트락페스티벌 주최 측
 
마지막 날 헤드라이너로는 대한민국 1세대 인디 밴드로 지금까지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자우림이 오른다. 자우림은 지난 2018년 펜타포트 메인무대 헤드라이너로 참여, 현장을 '자우림 월드'로 만든 바 있다. '고래사냥' 무대 때 관객 수백명이 삽시간 바닥에 앉아 한 ‘노젓기 퍼포먼스’는 펜타포트 역사의 잊지 못할 순간으로도 기록된다.
 
올해 데뷔 25년차인 밴드는 김윤아를 필두로 이선규(기타), 김진만(베이스) 3명으로 구성돼 있다. 현재까지 총 11장의 정규 앨범을 내온 장수 밴드다. 지난해에는 코로나19 여파에 작업 방향을 틀어 밝은 곡들을 담아 11집 '영원한 사랑'을 냈다.
 
마지막 날에는 서브 헤드라이너로 나서는 1995년 스코틀랜드의 글래스고에서 결성된 포스트 록 밴드 모과이를 비롯해 록과 일렉트로닉을 결합한 한국 대표 전자음악 밴드 '이디오테잎', 싱어송라이터 백예린 주축의 '더발룬티어스', 밴드 '혁오' 기타리스트 임현제와 '술탄 오브 더 디스코' 베이스 지윤해, '장기하와 얼굴들' 출신 드러머 전일준의 새 밴드 '봉제인간' 등도 주목할 만하다.
 
'2022 펜타포트를 즐기는 관객들 모습'. 사진=펜타포트락페스티벌 주최 측
 
인천 송도=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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