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용준 기자] “100년에 한 번 내리는 비가 어떤 사람에게는 삶을 송두리째 빼앗을 수 있기에 100년에 한 번 쓰더라도 자연재해에 끊임없이 대비해야 합니다. 신월빗물터널은 양천의 십만양병설 같은 겁니다.”
지난 19일 양천구청 집무실에서 만난 이기재 양천구청장은 집중호우가 지나간 후에도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었다. 국무총리·장관 등 바쁜 정부 고위 관료들이 잇달아 양천구를 찾아 현장견학에 나섰기 때문이다.
이번 집중호우에서 서울에 150년 빈도가 넘는 비가 내리며 7개 자치구가 특별재난지역 신청을 할 정도로 막심한 침수 피해를 입었다. 하지만, 침수 피해의 단골손님이던 양천구만은 이번에 인명피해 없이 일부 도로가 파손되며 비교적 조용하게 지나갔다.
서울시가 장마철 집중호우 하천 범람 등 수해를 막기 위한 빗물저류조와 배수시설을 확충하고 있다. 사진은 2015년 12월30일 오후 서울 양천구 목동빗물펌프장 내 신월 빗물저류배수시설(지하 40m) 공사현장 모습.(사진=뉴시스)
그 중심엔 신월빗물터널이 있다. 지하 40m 깊이에 설치된 신월빗물터널은 길이 4.7km, 최대 지름이 10m나 된다. 폭우가 내리면 각 지역 하수관에서 빗물을 끌어와 역류를 막고 이를 32만t까지 임시 저장했다가 비가 그치면 안양천으로 방류한다. 이번에도 17만t을 저류하며 집중호우를 버텨냈다.
이 구청장은 “2010년에 수해로 이 일대에만 한 6000가구가 잠겼다. 이후 이명박 정부에서 빗물터널 아이디어가 나왔고 김용태 전 국회의원이 강력하게 요구했다”며 “7개 빗물터널이 추진되다가 여기만 살아남은 게 김 전 의원의 성과”라고 말했다.
2010~2011년 연이은 침수피해 이후 오세훈 당시 서울시장은 7개 빗물터널 설치를 발표했으나 이후 지하 공사와 부동산 가격 하락 등을 우려하는 해당 지역 주민들의 반발에 부딪히다 시장이 바뀐 후 후순위로 밀려났다. 이 중 신월빗물터널만 살아남아 2020년 완공해 이후 세 차례 장마를 보내며 단 한 건의 침수피해도 발생하지 않고 있다.
오랜 공사에 고통받던 주민들도 신월빗물터널의 효과를 체감하면서 한결 안심하는 분위기다. 지역의 고질적인 약점이었던 수해를 이겨내면서 행정에 대한 신뢰심이 커지고 지역에 대한 자긍심까지 생겨나고 있다. 이 구청장도 당선 직후부터 인수위 첫 일정으로 신월빗물터널을 찾는 등 집중호우를 앞두고 수차례에 걸쳐 방재시설을 점검해 왔다.
이 구청장은 “신월·신정 다 상습침수지역이었는데 2005년 원희룡 당시 국회의원이 요구해 빗물펌프장을 증설한 후 빗물 피해가 많이 줄었다”며 “이런 걸 겪으며 주민들의 반감이 다른 지역보다 상대적으로 적었고, 터널을 뚫을 때 발생했던 민원들은 전임인 김수영 전 구청장이 잘 관리해준 덕분에 제가 든든하게 버티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기재 양천구청장이 지난 6월20일 신월빗물터널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양천구)
이 구청장은 1호 공약으로 특정사업을 꼽지 않았다. 대신 '7대 숙원과제'라고 했다. 7대 숙원과제 모두 경중을 따지기 어려울 정도로 양천의 발전을 위해 시급한 사업들이란 얘기다. 목동아파트 재건축 문제, 신월·신정 주택지역 재개발, 신정차량기지 이전과 국회대로 공원화 및 인근지역 개발, 서부트럭터미널 조속 준공, 공항소음피해지역 해결, 경전철 등 교통문제 해결 등이다.
이 구청장은 “그동안 양천구에서 주민들의 숙원과제들이 한 7가지 정도 되는데 그 7가지를 해결하는 CEO가 되겠다는게 제 첫 번째 공약”이라며 “여러 가지 공약을 많이 얘기했는데 지금 잘 정리해서 100대 과제를 만들고 4년 동안에 어떤 로드맵으로 실현할 것인지에 대한 세부 계획을 세우고 있는 중으로 취임 100일에 맞춰 발표하겠다”고 말했다.
지난 10일에도 목동 재건축을 추진하는 한 아파트 외벽이 떨어져 주차돼 있던 차량 1대가 파손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미 재건축 기한을 넘긴 목동 일대의 대규모 아파트들은 대부분 안전진단 단계에 묶여 더이상 절차가 진행되지 못하는 상태다.
이 구청장은 “새벽이었으니 다행이지 인명피해로도 이어질 수 있는 아찔한 상황”이라며 “다른 외벽도 탈락 현상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시급히 안전진단을 통과해 재건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구청장은 도시공학 박사이자 토목시공기술사 자격증을 갖고 있는 도시계획 분야 전문가다. 목동 재건축은 각 단지별로 재건축이 진행되고 있지만, 동시에 목동과 양천의 도시 지형을 바꿀 지점으로도 꼽히고 있다. 이 구청장은 누구보다 양천이라는 도시의 미래를 준비하는 데 있어 강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이 구청장은 “국토부도 안전진단 완화 의지를 밝힌 만큼 저희도 대응계획을 마련해 하루빨리 새로운 미래형 아파트 단지가 들어설 수 있도록 해야한다”며 “목동은 1기 신도시 이전에 만들어진 최초의 계획도시인 것을 감안하면 지구단위계획으로 스카이라인·보행로·바람길 등을 보완해 앞으로 50년의 양천 도시 디자인을 새로 만들 과제가 저에게 있다”고 덧붙였다.
이기재 양천구청장이 지난 19일 양천구청 집무실에서 <뉴스토마토>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박용준 기자)
박용준 기자 yjunsay@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