쇄신·패기는 실종…돌격대로 전락한 여야 초선들

국민의힘, 윤 대통령 눈짓에도 초선들 집단행동…민주당, '처럼회' 소속 초선들 강경흐름 주도
기득권에 저항했던 '소장파' 초선은 실종…중진들이 쇄신 주도하며 민심 전달
2024년 총선 공천권이 배경…윤심·이심에 공천 좌우될까 엄호세력 전락

입력 : 2022-09-12 오후 1:29:48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5일 충남 천안 재능교육연구원에서 열린 국민의힘 국회의원 연찬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뉴스토마토 박주용 기자] 여야 모두 '외길'로 치닫는 초선 의원들의 한계를 노출하고 있다. 대통령과 당대표의 눈짓 하나에 일사불란하게 엄호 대열을 짜고 강경 목소리만 내면서 민심과의 괴리를 더욱 크게 한다는 지적이다. 오히려 재선급 이상 중진 의원들이 이 같은 초선 기조에 반발하는 기이한 현상도 빚어지고 있다. 다만 이들 목소리는 극히 일부로, 영향력도 제한됐다. 진영논리로 무장된 초선 의원들의 강경 주장이 여야를 더욱 극단적 대결로 몰고 간다는 비판도 소용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경우, 초선 의원들이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의사결정 국면마다 윤 대통령의 의중을 강조하며 해결사를 자처하고 있다. 지난 7월29일에는 배현진 의원의 선제적 최고위원 사퇴선언 직후 초선 주도로 비대위 전환을 촉구하는 연판장이 돌기도 했다. 이들은 법원이 '주호영 비대위'에 제동을 건 후에도 2차 비대위 전환에 앞장섰다. 지난달 30일 당헌 96조 개정안을 '박수'로 밀어붙인 데 이어, 새 비대위 전환에 반대 의사를 밝힌 중진 의원들에게는 자제를 촉구하기도 했다.
 
당 안팎에서는 윤석열 대통령이 초선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힘을 실어주고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윤핵관'(윤석열 핵심 관계자)의 두 축이었던 권성동 원내대표와 장제원 의원이 2선으로 후퇴한 상황에서 초선들이 '신윤핵관' 그룹으로 부상했다는 평가도 이어졌다. 현재 국민의힘은 전체 의원 115명 중 63명이 초선으로, 당내 의석수의 절반이 넘는다. 특히 이들은 차기 총선 공천에서 '윤심'이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할 것으로 보고, 윤 대통령의 의중을 뒷받침하기에 바쁘다. 국민의힘 한 초선 의원은 "더 이상의 갈등을 방지하고 당의 조속한 안정을 위해서"라며 집단행동의 명분을 강조한 뒤 "문자("내부총질이나 하던 당대표")에서 확인됐듯 대통령은 더 이상은 이준석과는 함께 할 수 없다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민주당의 경우 더 심하다. 당내 강경파의 상징 모임인 '처럼회'가 대표적이다. 검찰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하는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박탈) 법안을 강행했고, 지난 전당대회 과정에서는 당대표를 포함한 당직자의 직무정지 기준을 '기소시'에서 '1심 유죄 판결시'로 바꾸는 당헌 80조 개정에 앞장섰다. 이 과정에서 '개딸'(개혁의딸)로 불리는 강성 팬덤의 목소리를 적극 대변했다. 이재명 대표 체제 출범 이후에는 이 같은 초선들의 강경 목소리가 더욱 커졌다. '김건희 특검법'은 처럼회 소속 김용민 의원의 법안을 뼈대로 초선들이 주도했다. 또 한동훈 법무부 장관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동시 탄핵까지 주장하고 나섰다. 이재명 대표에 대한 검경 수사를 '정치보복'이자 '야당탄압'으로 규정, 이에 대한 맞대응으로 윤 대통령에 대한 고발과 대통령실 국정조사 추진 등 사실상 이 대표 엄호에 매진하고 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지난 1일 광주 서구 김대중컨벤션센터 4층 컨벤션홀에서 '더 나은 민주당 만들기 타운홀 미팅'을 마친 뒤 지지자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뉴시스)
 
그러면서 오히려 여야 모두 중진 의원들이 민심과 쇄신을 말하는 기이한 현상에 직면했다. 국민의힘 내에서도 중진들의 합리적인 목소리가 돋보인다. 서병수 의원의 경우 새 비대위 구성을 위한 당헌 96조 개정이 법원 결정 취지에 어긋난다며 전국위원회 의장직에서 스스로 물러났다. 조경태, 홍문표, 김태호, 윤상현 의원 등도 권성동 원내대표의 '사퇴'를 주장하며 새 비대위 출범에 반대했다. 5선의 조경태 의원은 <뉴스토마토>와의 통화에서 "선수를 떠나서 정치를 하는 사람은 민심을 거스르면 안 된다"며 "초선 의원들이 개혁의 선도자가 되어 줬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전했다.
 
민주당도 중진 의원들이 합리적 목소리를 내며 민심을 전달하려 애쓰고 있다. 당헌 80조 개정 추진으로 이 대표의 사당화 논란이 벌어졌을 때 이상민 의원은 '이재명 방탄용' 문제를 지적하며 이를 적극적으로 비판한 바 있다. 김종민·이원욱·조응천 의원 등도 각종 현안에 대한 당의 일방적 대응을 비판하며 쇄신을 주장하는 대표적 인사로 꼽힌다. 이원욱 의원은 당내 초선 의원들의 강성 행보에 대해 "지난번 초선 5적 논란(조국 사태를 비판한 민주당 내 초선 5명, 오영환·이소영·전용기·장경태·장철민)도 있었는데, 팬덤정치에 질려버리면서 이렇게 된 것"이라며 "팬덤정치의 폐해"를 지적했다.
 
특히 여야 초선들이 보이는 강성 일변도의 행보는 과거와는 다르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과거 초선들은 기득권을 가진 당의 주류 세력에 맞서 저항했던 개혁 소장파의 모습으로 기억된다. 국민의힘은 과거 한나라당 시절 개혁 성향의 소장파 모임인 '새정치 수요모임'이나 '민본21'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여당 내 야당'을 자처하며 권력을 좇기보다 권력에 민심을 전달하는 역할을 주로 했다. 민주당도 마찬가지였다. 새천년민주당 시절 정풍운동을 주도했던 '천신정'(천정배·신기남·정동영), 더불어민주당 소신파 상징인 '조금박해'(조응천·금태섭·박용진·김해영) 등이 있었다. 이들은 패기로 대통령이나 정부에 쓴소리를 하며 당 쇄신·혁신을 주도했다.
 
지난 6·1 지방선거와 함께 치러진 제주 제주을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에서 당선되며 국회에 입성한 김한규 민주당 의원은 "(초선 의원들이)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대표를 지지하는 게 오히려 변화와 개혁, 쇄신과 맥을 같이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김 의원은 "그런 면에서 각 당의 중진 의원들보다는 오히려 초선 의원들이 윤 대통령이나 이 대표를 지지하는 그룹들이 많다"며 "또 서로 대립각을 세우는 면에서 더 선명한 모습을 보일 수 있다고 생각해서 (초선 의원들은)민주당 같은 경우 당대표를, 여당 같은 경우 대통령 편에 서 있는 게 아닐까 싶다"고 해석했다. 국회 부의장을 지낸 4선의 김상희 민주당 의원은 "(여당은)기존의 권력을 잡고 있는 주류 쪽에 더 강한 입장을 힘을 실어주는 목소리를 낸다는 것이고, 민주당은 대여 투쟁에 있어서 강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 상황"이라고 해석했다.
 
지난 2015년 4월12일 국회 사랑재에서 미래연대, 수요모임, 민본21 모임 주최로 열린 초청강연회에서 당시 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교수가 '휘둘리지 마라 유연하라'란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대다수 전문가들은 2024년 총선을 앞두고 공천 문제가 현재와 같은 현상을 만들었다고 진단했다. 특히 윤 대통령과 이 대표를 중심으로 한 양당의 주류 세력에 대항할 만한 세력과 인물이 마땅치 않다는 게 초선 의원들의 공천권에 대한 주류 의존도를 높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소장은 "과거에는 친이(친이명박)든, 친박(친박근혜)이든 계파를 따지지 않고 초·재선이 당의 개혁 세력으로 분류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다"며 "그런데 지금은 초·재선이 의지할 수 있을 만한 중진 세력이 사실상 와해된 상태"라고 지적했다. 그는 “지금은 윤명(윤석열·이재명) 대첩으로 전쟁을 치루고 있는 상황에서 결국 윤 대통령이나 이 대표 쪽으로 무게 중심이 압도적으로 실려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독자세력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했다. 김두수 시대정신연구소 대표는 "과거 중진들은 낡은 이미지나 구태 이런 게 있었고, 이에 대칭되는 신진 그룹은 정치교체를 주장했다"며 "그런데 지금은 여야 모두 윤 대통령과 이 대표를 중심으로 하는 신진 세력이 (주류로)올라섰다. (당의)구 집단이 집권한 게 아니다. 이런 부분이 같이 연동된 것으로 봐야 된다"고 진단했다.
 
박주용 기자 rukaoa@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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