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한국, 마약청정국 아니야…이대로 두면 통제 불가"

넷플릭스 '수리남' 모델 '마약왕 조봉행' 구속기소 검사 '김희준 변호사'
"드라마와 실제는 차이…수리남, 홍어 많지 않고 차이나타운 없어"
"마약거래 패러다임 변화…'던지기' 수법에 점조직 활동"
"검찰-관련부처 수사협의체 실효성 의문…통합 컨트롤타워 필요"
"마약범죄는 대표적 암수범죄…강력부 축소는 위험한 방향"

입력 : 2022-09-28 오전 6:00:00
[뉴스토마토 박효선·김수민 기자] "마약은 한번만 접해도 인생이 끝납니다. 이대로 방치한다면 한국도 얼마 되지 않아 통제 불가능한 상황이 될 거예요."

검사 시절 ‘마약수사 전문가’로 이름을 떨쳤던 김희준 변호사(법무법인 LKB앤파트너스 대표)는 “한국이 아직도 ‘마약청정국’이라는 환상에 빠져있다”며 이 같이 밝혔다. 그는 이른바 ‘물뽕’(GHB)을 처음 적발하고, 수면마취제로 사용됐던 프로포폴을 마약류로 등재하는데 기여한 인물이다.

최근에는 넷플릭스 드라마 ‘수리남’의 실제 주인공인 마약왕 조봉행을 수사했던 검사로 다시금 부각됐다.

지난 23일 김 변호사를 만나 검사 시절 조봉행을 7년여 간 추적한 경위, 변화된 마약거래 패러다임, 한국의 마약 실태, 현재 마약 수사의 한계, 한국에 ‘마약청’과 같은 컨트롤타워가 필요한 이유 등에 대해 들어봤다.
 
검사 시절 ‘마약수사 전문가’로 이름을 떨쳤던 김희준 변호사(법무법인 LKB앤파트너스 대표)가 지난 23일 <뉴스토마토>와의 인터뷰에서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김수민 기자

‘국제마약왕’ 조봉행 검거부터 기소까지 상황을 듣고 싶다.
 
조봉행씨에 대해 2005년도 인터폴 적색 수배를 했었다. 당시 조씨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우리나라 사람들을 속여 이들을 마약 운반책으로 이용했다. (마약 운반책들이) 프랑스 공항이나 페루 공항 등에서 잡혔는데, 잡힌 사람 중 한 사람이 장모씨(영화 ‘집으로 가는 길’ 배우 전도연씨가 연기한 인물)였다. 장씨 등은 그 가방에 보석 원석이 들어있는 줄 알고 옮겨줬는데, 코카인이 들어간 사실이 공항 입국 과정에서 적발돼 프랑스나 페루 법원에서 각각 최소 1년6개월에서 최대 10년의 실형 선고를 받았다. 범행의 배후가 누군지 파악해보니 조봉행이라는 게 밝혀져 2005년도 검찰에서 인터폴 적색수배를 한 것이다.
 
그런데 조봉행이 있는 ‘수리남’과는 형사사법공조 조약이 체결돼 있지 않아 브라질에서 코카인 50만 유로 상당을 거래하기로 하면서 그를 유인했다. 이에 따라 조씨가 브라질로 넘어오면서 2009년 7월경 브라질 연방경찰에 의해 체포됐다.
 
하지만 조봉행을 바로 국내로 데려올 수는 없었다. 브라질에 범죄인 인도 청구를 해 2011년 5월 말에야 그를 국내로 압송할 수 있었다. 브라질에서 조봉행을 국적기에 태우는 순간부터 체포시한이 시작됐다. 구속영장 청구는 48시간 이내 이뤄지기 때문에 시간이 너무 촉박했다. 그래서 사전 준비를 미리 철저하게 해두고, (조봉행을 한국에 데리고)오자마자 바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드라마와 실제 사건 다른 점은.
 
수리남에는 홍어가 그렇게 많이 나지 않고, 차이나타운도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조봉행이 살인을 저지르거나 코카인을 톤단위로 거래하는 내용 등도 모두 각색된 부분이다. 공소 사실에는 조봉행이 48.5kg의 코카인을 소지한 것으로 적시돼 있다.
 
다만 조봉행이 수리남에서 마약 조직을 구축해서 마약 밀매 사업을 한 것은 맞는데, 그게 가능했던 것은 수리남 대통령과의 친분(수리남 ‘데시 바우테르서’가 대통령이 되기 전인 80년대 군 간부 시절 마약을 실은 선박이 고장 났는데 이를 조봉행이 고쳐주며 두 사람 친분관계가 시작된 것으로 추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마약사범에게 수리남 같은 국가는 어떤 곳인가.
 
마약 종류에 따라 다르다. 남미에서는 주로 코카인 등의 마약류, 동남아나 팔레스타인 등에선 아편 등의 마약류를 거래하는 식이다. 한국에는 과거 일본에서 넘어온 메스암페타민(일명 히로뽕, 과거 근로자 각성제로 이용)이나 필로폰 등이 거래된다. 각 지역별로 어떤 마약이 주로 생산되는지에 따라 거래도 달라지고 저마다 특성이 있다. 아무래도 내란이 잦고, (사법체계가 느슨하며) 경제 수준이 낮은 나라에서 마약을 통해 돈벌이 하는 경우가 많다. 북한에서도 필로폰을 제조해 중국을 거쳐 넘어오는 것으로 알고 있다.
 
조봉행을 어떻게 한국에서 기소할 수 있었나.
 
조봉행은 한국에서 1994년에 사기죄로 지명수배되자 다음해 95년 수리남으로 도망을 가서 수리남 국적을 취득했다. 우리나라 국적법은 이중 국적을 허용하지 않다보니 한국 국적을 상실하고 수리남 사람이 된 것이다.
 
그런데 외국인이 국외에서 저지른 범죄는 대한민국 법에 의해 처벌할 수가 없다. 속인주의(자국민의 범죄에 대해 장소 불문 자국형법을 적용하는 원칙)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외국인의 국외범도 처벌할 수 있는 규정이 있다. 형법 5조는 내란죄나 외환죄의 경우 외국인의 국외범도 처벌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 마약류 불법거래방지에 관한 특례법은 조봉행이 업으로서 마약을 소지한 경우, 즉 외국인이 국외에서 저지른 범죄도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조항이 있다. 그 조항을 적용해 조봉행을 기소할 수 있었다.

조사 과정에서 (조봉행이) ‘칼리 카르텔’이라는 남미 최대 마약 카르텔 조직과 연계해서 톤단위로 마약거래를 했다는 얘기도 있었지만 구체적 증거는 없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을 마약 운반책으로 이용해 적발된 부분(48.5kg 코카인 소지)에 한해 기소한 것이다.
 
조봉행이 징역 10년형을 확정받았는데 국민 법감정과 차이가 있다는 지적이 있다.
 
아무래도 드라마 내용과 실제 내용은 상당한 차이가 있어서 그런 것 같다. 법원에선 코카인 48.5kg 분량을 모두 인정하지 않았고, 특히 조씨의 경우 한국 국적이 아닌 수리남 국적이라는 점, 외국인간의 거래로 한국에 미치는 영향이 없다는 점 등의 사유를 들어 10년형을 내렸다. 그렇지만 드라마에 나오는 내용처럼 조봉행이 사람들에게 마약을 강제 주입하거나, 살인 등을 했다면 사형이나 무기징역이 선고됐을 것이다.
 
조봉행 코카인 밀수 및 압송 경로. (출처=2011년 6월 15일 서울중앙지검 보도자료) 
 
조봉행 수사 당시와 지금의 마약 거래 수법은 어떤 차이가 있나.
 
마약거래 패러다임이 완전히 바뀌었다. 예전에는 대면 거래 방식이었다면 지금은 비대면 거래가 주를 이룬다. 이른바 ‘던지기 수법’으로 거래를 하기 때문에 서로를 만날 필요가 없다. 대금 결제도 은행 송금이 아니라 가상화폐로 한다. 그러다 보니 파는 사람, 사는 사람 등이 서로를 모른다.
 
또 최근 범죄조직은 점조직 형태가 많다. 주로 텔레그램방 등에서 마약거래가 이뤄지다 보니 이 거래방들을 추적해야 해서 상당한 첨단 수사 기법이 필요한 상황이다. 가장 큰 문제는 SNS을 통해 마약거래가 이뤄지다보니 마약사범의 연령대가 연소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작년 20대 마약사범이 가장 많았고, 10대 마약사범이 최근 10년 사이 11배 증가했다. 그에 반해 마약 수사 역량은 갈수록 약화되고 있다.
 
법무부가 ‘검사 수사개시 범죄 범위 규정’ 개정으로 검찰의 마약수사 범위를 일부 복원했다.
 
기본적으로 마약거래는 마약사범들끼리 연결된 구조인데 검찰은 중간단계(밀수·유통범)부터, 경찰은 아래 단계(투약범)부터 수사할 수 있도록 한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검·경간의 공조체제를 보다 공고히 해야 하고, 무엇보다 수사범위에 제한을 두면 안 된다.
 
검찰 수사 가능한 금액을 500만원 이상(마약류 밀수출입 사건)으로 제한한 것도 문제다. 마약범죄 수사범위를 쪼개놓은 자체가 너무나 비효율적이다. 이런 구분 자체를 없애 모든 단계(투약범부터 공급책, 밀수책, 제조책까지)를 다 수사할 수 있도록 하고, 검·경간 협조가 수월한 구조가 되어야 한다.
 
청소년 약물 차단을 위한 예방 교육이나 치료·재활 시스템의 현실은 어떤가.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마약에 관한 경각심을 심어주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또 처벌 이전에 마약에 중독된 사람에 대한 치료나 재활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마약 치료·재활병원으로 지정된 곳이 12곳인데 여기서 제대로 운영되는 곳은 두 곳(인천 참사랑병원, 경남 국립부곡병원) 밖에 없다. 입소식 재활 시설도 민간단체인 경기다르크협회가 경기 남양주시에서 운영하는 한 곳뿐이다.
  
검찰이 관세청, 경찰청, 국정원 등과 수사 협의체를 구축했다.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모르겠다. 지금도 검·경간 공조가 잘 안 되는데, 한계가 있지 않을까 싶다. 미국 DEA와 같은 컨트롤타워를 통한 철저한 통제 관리가 필요한 상황이다. 여기서 마약 수사만 하는 게 아니라 마약 물질에 대한 관리 통제, 예방 교육 시스템, 치료·재활 시스템 등을 마련해서 마약문제를 종합적으로 컨트롤하는 게 가장 효율적인 방안이라고 생각한다. 협의체 보다는 확실한 컨트롤타워가 있어야 한다.
 
한국은 아직도 ‘마약청정국’이라는 환상에 빠져있다. 통계 수치만 보면 적어보일 수 있겠지만 실제론 아니다. 마약범죄가 대표적 암수범죄다. 수사기관에 적발되지 않은 범죄가 훨씬 많다는 것이다. 한국은 마약 수요가 높아 소매가격도 높다. 그래서 외국 밀매 조직이 한국에 와서 마약을 팔거나 팔려고 한다.
 
그런데도 정부는 검경 수사권 조정 과정에서 (검찰의) 마약 수사 범위를 대폭 줄이고, 특수부를 키우는 반면 국민의 삶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강력부는 축소했다. 위험한 방향이다.
 
마약은 한번만 접해도 인생이 끝날 수 있다. 이대로 방치한다면 얼마 되지 않아 통제 불가능한 상황이 될 것이다. 이미 확산되고 나서 수습하는 것(마약 컨트롤타워 등 설립)은 너무 늦다. 
 
박효선·김수민 기자 twinseve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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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