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오세은 기자] 이스타항공이 창업주 이상직 전 의원 흔적 지우기에 나선 가운데 사명과 본사를 바꾸는 것만으로 새 회사로 거듭나기는 부족할 것이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모든 것을 쇄신하려는 각오가 준비됐다면, 신생항공사가 출발선에 서듯 슬롯과 운수권을 반납하는 등 완전 백지상태에서 출발한다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관측이 중론이다.
28일 업계에 따르면 이스타항공은 지난 26일 대표이사 교체, 사명·본사 소재지 변경 등의 내용이 담긴 경영혁신 방안을 발표했다.
여기에는 사명과 본사를 바꾸는 것 이외 재무구조 개선 추진, 희망퇴직 및 정리해고자 등을 재채용하는 내용이 담겼다. 경영혁신 방안에서 이스타항공은 “이전 대주주 당시 사실상 파탄 난 이스타항공을 새롭게 되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며 “과거의 이스타항공과 새로운 이스타항공을 구별해 바라봐 주시길 요청드린다”고 했다.
하지만 일각에선 이스타항공이 과거 이미지를 벗기 위해서는 현재 갖고 있는 슬롯과 운수권을 반납하고, 신생 항공사가 시작한 출발선에서 동일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시각이 대체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사명과 본사를 모두 바꾼다는 것은 과거 이스타항공을 버리고 새 항공사로 거듭나겠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신생 항공사처럼 슬롯과 운수권을 처음부터 신청, 여러 절차를 통과해 발급받아야 하는 것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슬롯은 항공사별로 특정 공항에 특정한 날짜와 시각에 항공기를 운항할 수 있도록 배정된 시간이다.
운수권은 항공기로 여객과 화물을 탑재하고 하역할 수 있는 권리로 양국 정부간의 협정에 의해 성립해 이후 각 국 정부가 항공사에게 분배한다. 슬롯은 인천국제공항공사가 운수권은 국토교통부가 정기적으로 배분하지만 어떠한 기준으로 항공사들에게 배분하는지는 공개하지 않는다.
이스타항공은 경영악화로 2020년 3월 모든 노선 운항을 중단했다. 항공사는 60일을 초과해 운항하지 않으면 AOC가 일시 정지된다. 때문에 3년 가까이 항공기를 띄우지 못한 이스타항공은 국토부에 AOC 재발급을 신청했고, 최근 AOC 발급 최종관문인 비상탈출 슬라이드 전개 시험을 통과했다.
그런데 운항면허가 없는 이스타항공은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기 전인 지난 4월 국토부로부터 청주~마닐라 노선 운수권을 배분받았다. 당시 업계 안팎에선 AOC 효력이 정지된 이스타에게 운수권이 배분된 것을 두고 특혜논란이 일기도 했다. AOC는 항공운송사업 면허를 받은 항공사가 항공기 안전운항을 위해 필요한 전문인력, 시설, 장비 및 운항·정비지원체계 등을 종합적으로 갖췄는지를 확인하는 일종의 안전면허이다.
때문에 이상직 전 의원 등이 회사를 경영할 당시의 정부로부터 배분받은 슬롯과 운수권을 소지한 채 회사명만 바꾸고 새로운 회사로 거듭나겠다고 천명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설명이라는 일부 시각도 존재한다.
전북 군산에 본사를 두고 있는 이스타항공은 2007년 이상직 전 의원이 설립한 회사다. 지난 1월 12일 전주지법 제11형사부(부장 강동원)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배임·횡령) 혐의로 기소된 이상직 전 의원에게 징역 6년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이스타항공 주식을 현저하게 저가에 매도함으로써 막대한 이익을 챙김과 동시에 주식 거래의 공정성을 교란했다”고 판단했다. 이틀 뒤 이 전 의원은 항소했다.
인천국제공항 계류장에 계류돼있는 이스타항공 여객기. (사진=뉴시스)
오세은 기자 os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