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조재훈 기자] 미국이 중국에 반도체 및 제조 장비를 수출하지 못하도록 하는 고강도 제재안을 발표한 가운데 국내 반도체업계 안팎에는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대한민국 국가 경제를 이끄는 반도체 산업이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기 일보직전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역할론'에 대해 쓴소리를 내고 있다. 우리나라가 미중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는 만큼 정부가 적극 나서 실효성 있는 정책을 내놓아야한다는 지적이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 상무부는 중국 반도체 기업에 미국 반도체 장비 판매를 사실상 금지하는 새로운 제재안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향후 우리나라 기업인
삼성전자(005930)나
SK하이닉스(000660)가 중국 현지 공장의 생산능력을 확장하거나 첨단 수준의 반도체 생산을 위한 장비를 투입하려면 미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이같은 조처는 오는 21일 발효된다.
해당 법안이 발효되면 핀펫 구조나 16·14㎚(나노미터) 이하 공정으로 만드는 로직 칩, 18나노 이하 D램, 128단 낸드플래시 제조 장비 등이 미국 정부의 허가 없이 중국으로 들일 수 없게 된다.
삼성전자 클린룸 반도체 생산현장. (사진=삼성전자)
미국과 중국의 반도체 기술 패권 경쟁은 점차 심화되고 있다. 미국산 반도체 장비의 대중 수출 금지 소식이 전해지자 중국은 반도체에 사용되는 희토류의 대미 수출을 통제해야 한다는 여론전에 뛰어든 상태다.
란타넘, 스칸듐, 이트륨 등 30여 개의 희귀 금속을 총칭하는 말인 희토류는 '첨단산업의 비타민'이라 불린다. 반도체를 비롯해 전기차 배터리, 스마트폰, 전투기, 미사일 레이더, 원자력 잠수함, 태양광셀 등에 쓰인다. 희토류는 중국의 제련 비중이 85%에 이른다.
전문가들은 우리 기업들의 숨통을 틔워줄 현실적인 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입을 모은다. 삼성전자는 중국에 낸드플래시 생산공장과 반도체 후공정 공장, SK하이닉스는 D램 공장, 후공정 공장, 낸드 공장을 각각 운영중이다.
이종환 상명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 교수는 "특히 EUV 노광장비 등 첨단 공정에 쓰이는 장비 확보는 굉장히 중요한데 이는 미리 정부 간 협의를 통해 반드시 지켜줘야 한다"며 "반도체 장비는 선투자가 가장 중요한데 중국 내 장비들이 '첨단화' 되지 않으면 향후 경쟁력에서 뒤쳐질 수 밖에 없다"고 조언했다.
양국 사이에서 중도적인 입장을 고수하면서 '맞춤형' 외교 전략을 펼쳐야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반도체 원천 기술력과 설계·장비에 강점을 가진 미국과 우리나라 반도체 최대 수출국인 중국 모두 국내기업 입장에서는 없어선 안될 '핵심 연결고리'이기 때문이다.
이미혜 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미국은 세계적으로 반도체 기술을 주도하고 있고 중국은 우리나라 반도체 최대 수출 대상국으로 양국 모두 중요하다"며 "우리나라 정부는 우리나라 반도체 기업들의 이익이 보호될 수 있도록 양국 사이에서 적절한 외교적 포지션을 찾아야한다"고 말했다.
정부의 노력으로 법안 발효 시점을 늦춰야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우리 기업이 당장 중국 공장을 멈출 수는 없으니까 원활하게 가동될 수 있도록 미국 정부와 지속적인 채널을 유지 하면서 지연을 시켜줘야 한다"며 "향후 장비 승인이 얼마나 걸릴지 모르는 상태인데 중국에 있는 우리기업 공장에 들어가는 장비들을 면밀하게 검토해서 여유있게 장비 승인을 신청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정부가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조재훈 기자 cjh1251@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