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장윤서 기자] 레고랜드 사태와 관련해 김진태 강원도지사발 채권시장 자금경색이 발생, 금융위기론이 확산되는 가운데 윤석열 대통령이 이례적으로 경제 관련 각 부처 장관과 함께 비상경제민생회의(비경회의) 생중계를 진행했다. 정부가 대응방안을 마련하는 모습을 투명하게 공개해 시장 신뢰를 회복하겠다는 의지로 읽혔다.
하지만, 이번 회의에서는 채권시장의 위기에 대해 언급조차 없었고 심지어 회의 도중 윤 대통령과 장관들이 화기애애하게 웃는 모습까지 보이면서 ‘위기감 제로’의 분위기가 고스란히 노출됐다. 민주당은 윤 대통령의 안일한 인식을 꼬집으며 “정부가 리스크의 핵이 됐다”고 날을 세웠다.
윤석열 대통령이 27일 오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제11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윤 대통령은 27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제11차 비상경제민생회의를 주재해 정부의 경제 정책 전반에 대한 브리핑을 듣고 상황을 점검했다. 이 자리에서 윤 대통령과 각 부처 장관들은 △반도체·이차전지·조선산업 등 선도 주력사업에 대한 지원 △원전 패키지 수출 △건설·인프라 등 해외 수주 산업 △콘텐츠·인공지능·디지털바이오 등 신성장 수출동력 육성방안 등 경제 산업 전반에 대해 논의했다.
하지만 당초 기대를 모았던 채권시장의 위기 대응 방안에 대해서는 단 한 차례도 언급되지 않았다. 윤 대통령은 모두발언을 통해 “전세계적인 고금리 상황에 따라 금융시장 변동성과 실물경제 불확실성이 높아졌다”며 “새 정부는 출범시부터 공정한 룰에 따라 시장이 자율적으로 작동되도록 정부가 시스템을 관리하고 그때 그때 발생하는 여러가지 금융·실물 리스크를 정부가 안정적으로 관리함으로써 기업·민간 중심의 경제 성장과 경제 시스템이 가동되게 해왔다”고만 언급했다. 또 “우선 물가관리를 통해 실질임금 하락을 방지하고 고금리에 따라 가계와 기업 그리고 일부 금융 관련 회사들의 부실을 예상하기 위해 여러가지 금융지원책과 시장안정화 대책도 내놓았다”고 자신하는 모습도 보였다. 지난 23일 채권시장 자금경색을 해소하기 위해 50조원 이상의 자금을 풀겠다고 직접 발표한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도 이날 회의에서는 관련 언급을 일절 하지 않았다.
게다가 윤 대통령이 경제 관련 부처 장관들을 대상으로 돌발·압박 질문 등을 통해 정책 상황을 점검할 것이라는 관측과 달리 회의 분위기는 대체로 밝았다. 윤 대통령은 주로 장관들의 브리핑 등을 경청했고, 때론 “방산과 원전 패키지 수출이 이뤄질 수 있도록 모든 부처가 합심해야 할 것” 등고 같이 화답하는 모습을 보였다. 윤 대통령과 각 부처 장관들은 회의 중간 중간 웃으면서 대화를 나누는 모습도 포착됐다.
유튜브 등을 통해 생중계된 회의를 보고 있던 누리꾼들은 당혹스럽다는 분위기다. “채권시장 이야기는 왜 안하나”, “경제위기 상황에 웃음이 나시나”, “대학생들의 발표 보는 것 같다” 등과 같은 비판이 쏟아져나왔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27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로 금융위기 대책 마련 긴급 현장점검을 위해 들어서고 있다. (사진=뉴시스)
민주당은 윤 대통령의 안일한 위기 인식 수준을 정조준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이날 오후 ‘금융위기 대책 마련 긴급 현장점검’을 위해 여의도 한국거래소를 찾은 자리에서 “김진태발 금융위기가 벌어졌는데도 정부에서 4주 가까이 방치해 위기가 현실이 되도록 만들었다”며 “정상적인 국정인지 의심이 될 정도”라고 꼬집었다.
이 대표는 “IMF 사태도 정부의 안일한 인식과 그에 따른 늑장 대응이 국난을 야기했다”며 “지금 정부의 인식도 그와 비슷하다. 한때 우리가 많이 들었던 ‘펀더멘털은 이상 없다’는 이야기가 다시 회자되는 것 같아 매우 걱정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경제 리스크를 완화 또는 해소해야 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인데 지금의 정부가 리스크의 핵이 되어 버렸다”고 날을 세웠다.
실제 채권시장 위기와 관련된 윤석열정부의 늑장 대응은 계속해 오르내리고 있다. 레고랜드 사태는 김 지사가 지난달 28일 레고랜드 조성을 위해 강원도가 설립한 강원중도개발공사 회생신청 발표하면서 채권시장 전반의 위기로 확산됐다. 지방정부가 지급보증한 국채가 부도처리가 난 이후 그 아래 신용등급에 있던 회사채 등이 도미노처럼 무너지기 시작, 채권시장에 자금 흐름이 막히는 이른바 ‘돈맥경화’ 현상이 벌어졌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김 지사는 지난 21일 기존 입장을 번복, 전액 상환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회사채 등을 통해 자금을 먼저 받고 사업을 진행하는 건설사 등이 직격탄을 맞으면서 부도 위기론까지 도는 등 날로 상황은 심각해졌다. 그러자 추 부총리는 사태 발생 한 달여 지난 23일에서야 50조 이상의 자금을 투입해 채권을 매입, 시장의 자금 조달을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정부가 대규모 재정 투입을 하겠다고 했지만 한국전력공사 등 우량 공사채마저 6% 가까운 이율에도 유찰되는 등 사정은 나아지지 않고 있다.
민주당은 김 지사 사퇴를 촉구하며 총공세를 하는 모양새다.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문제의 진원지이면서 남일처럼 유감을 표명한 김 지사는 자신의 무능이 빚은 국가적 참사를 인정하고 즉각 지사직에서 사퇴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또 박 원내대표는 “윤 대통령은 이번 사태의 심각성을 언제 보고를 받았나. 보고를 받았다면 어떤 대응책을 지시했나”라며 “대한민국의 경제위기 타이밍에 언제나 대통령은 보이지 않았다. 무능한 경제 수장에 둘러싸여 결재 도장만 찍는 무능한 바지 사장으로 오해받지 않으려면 대통령이 분명히 답을 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민주당은 이번 사태가 촉발된 원인을 밝히기 위해 ‘김진태발 금융위기 진상조사단’을 구성한 뒤 추후 책임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까지 추진하겠다는 방침이다. 김종민 의원을 단장으로, 오기형 의원이 간사를 맡았다. 여기에 홍성국김교흥·이성만·허영·위성곤 의원과 김기식 전 의원이 위원단에 합류했다.
이들은 강원도 레고랜드 현장에 방문하고 기획재정부·행정안전부·한국은행 등으로부터 현안 보고를 받는 등 진상규명에 나설 방침이다.
장윤서 기자 lan4863@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