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4m 좁은 길 '이태원 참사' 안일함이 피해 키웠다

'젊은이 10만' 모이는데 경찰 200여명 투입
'자발적 모임', 책임 주체 없어 안전망 '느슨'
같은 날 6만명 도심 집회에는 경찰 6500여명
3년만의 '야외 노마스크' 군중심리 고려 못한 점도 아쉬워

입력 : 2022-10-30 오후 5:13:42
 
[뉴스토마토 박용준 기자] 지난 29일 서울 이태원에서 발생한 압사 사고는 좁은 골목길에 수많은 인파가 뒤엉키면서 참사를 키운 것이 주요 원인으로 분석되고 있다.
 
30일 <뉴스토마토> 취재를 종합하면, 사고 발생 장소는 성인 5명 남짓이 옆으로 설 수 있는 너비로, 이태원역 1번 출구에서 해밀턴 호텔 옆을 따라 중심가인 세계음식문화거리로 이어지는 폭 4m, 길이 40m 남짓의 경사진 골목이다. 면적으로 환산해도 200여㎡에 불과한 좁은 길이다. 이태원역 보다 세계음식문화거리 지대가 높아 이태원역에서 그곳으로 이동하려면 위로 올려다 보고 걸어야 한다. 그러나 이 길은 지하철역 출구에서 중심가로 바로 이어지기 때문에 좁은 골목임에도 사람들이 이동하는 통로로 주로 쓰여왔다.
 
사고 당일 이태원에 10만명에 달하는 많은 인파가 찾은 가운데, 가장 붐비는 시간인 오후 10시를 넘어서면서 인파가 늘어나자 들어오는 동선과 나가는 동선이 뒤엉키기 시작한 것으로 소방당국과 경찰은 판단하고 있다. 
 
참변을 피한 생존자들도 공통적으로 “앞으로도 뒤로도 가지 못하다가 순식간에 대열이 무너지기 시작했다”며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이미 사고 이전부터 인파가 몰리자 동선이 무너진 상태로 서로 밀고 밀리는 등 위험한 상황이 벌어지며 전조증상이 있었다는 증언도 나오고 있다.
 
여기에 해밀턴 호텔 외벽을 따라 이어진 골목길이 중간에 다른 출구조차 없어 뒤엉킨 상황에서도 빠져나갈 틈이 없어 더욱 피해가 커진 것으로 알려졌다. 현장 구조를 지휘한 최성범 용산소방서장의 30일 브리핑을 종합하면 사고신고 접수 후 소방대원과 경찰이 2분여만에 도착했으나 경사길을 따라 수백명이 선 채로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에서 가장 아래에서 깔려 있는 사람을 구조하는 데 애를 먹었다.
 
현장 목격자들을 중심으로 “몇몇 사람들이 밀면서 앞으로 대열이 넘어졌다”, “유명인이 왔다는 소리에 갑자기 인파가 불어났다” 등의 얘기가 나오지만, 아직 구체적인 사실 확인은 되지 않고 있다.
 
이태원 상인 A씨는 “경사가 심하기로는 경리단길이 더 심하고, 여기를 매년 사람들이 다니는 길인데 특별히 더 위험한 길은 아니다”라며 “다만 피크 타임에 많은 인파가 갑자기 좁은 골목에 몰리면서 엉켜 사고가 발생한 것 같다”고 말했다.
 
현장감식을 마친 경찰은 이태원 압사 사고와 관련해 475명 규모로 구성된 수사본부를 구성해 정확한 사고 경위와 원인을 파악하고 있다. 일대에 폐쇄회로(CC)TV 영상과 SNS에 올려진 관련 영상들을 확보해 분석하고 목격자 조사를 벌일 계획이다.
 
여느 행사와는 다르게 이번 '핼러윈' 운집이 자발적으로 이뤄졌다는 점도 피해를 키운 점 중 하나로 분석된다. 행사 주최자가 있을 경우 경찰과 소방, 지자체가 조밀하게 안전망을 확인하고 점검하지만 책임소재가 불분명해지면서 안전망 확인이 느슨해졌다는 것이다.
 
같은 날 광화문과 용산 대통령실 인근에서 진행된 진보-보수 맞불집회가 있었지만 이런 성격의 집회는 주최세력이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확실한 안전통제가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신현기 한세대 경찰학과 교수는 "주최 측이 있었으면 경찰에서 주최 측으로부터 각서도 받고 주최 측도 책임감 때문에 안전통제에 더욱 힘을 썼을 텐데 이런 것이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다만, 정부는 경찰 인력 배치가 적어 질서 유지에 실패한 것 아니냐는 ‘경찰 책임’ 주장에 대해서는 선을 그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코로나가 풀리는 상황이 있었지만 전에 비해 특별히 우려할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모였던 것은 아니고, 경찰이나 소방 인력이 미리 배치해서 해결될 수 있었던 문제는 아니다”라며 “서울 시내 곳곳에서 여러 가지 소요와 시위가 있었기 때문에 경찰 경비병력들이 분산됐던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정부와 관할 지자체의 대응이 안일했다는 지적도 없지 않다. 이 장관은 전에 비해 특별히 우려할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모였던 것은 아니라고 했지만, 그것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야외 노마스크'로 풀린 군중심리에 대한 고려가 없었다는 점은 아쉽다는 지적들이 나온다. 같은 날 광화문과 용산 대통령실 인근에서 열린 집회의 경우 각 주최 측 추산 당일 집회 인원은 6만명, 경찰은 기동단 4개와 기동대 5개 등 6500명을 투입해 교통을 통제했다. 반면, 이태원에는 불법촬영과 마약단속 경찰인원 200명이 투입됐다.
 
30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이태원 압사 사고 현장 인근이 통제되고 있다. (사진=뉴시스)
 
박용준 기자 yjunsay@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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