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1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뉴스토마토 박주용 기자]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156명의 목숨을 앗아간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정쟁을 멈추고 초당적 협력을 다짐했다. 사고 수습에 전력해야 하는 추모의 시간이라지만, 지난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성남시장으로서 이 대표가 보여줬던 행보와는 확연히 달라졌다는 점에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이 대표가 지난달 29일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직후 이달 1일까지 보여줬던 발언과 행보 등을 종합하면 진상 규명을 비롯해 정부를 향한 책임론 제기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
이 대표는 참사 직후인 지난달 30일 페이스북을 통해 첫 메시지를 냈다. 그는 "희생자들의 신원 확인과 유족 지원, 부상자들의 치유와 회복이 신속히 이뤄지는 데 집중해야 한다"며 "경찰관, 소방관, 의료진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최대치의 지원도 필요하다"고 했다. 같은 날 열린 긴급 비공개 최고위원회의에서도 "지금은 사고 원인 규명과 재발방지 대책도 중요하지만, 사고 수습과 피해자들의 치유와 위로에 집중할 때"라며 초당적 협력 의지를 재차 드러냈다. 이후 당 지도부는 당내 참사 관련 대책기구를 구성해 피해 수습과 지원 대책을 마련키로 했다.
이 대표는 다음날에도 조기 수습을 위한 초당적 협력 의지를 이어갔다. 그는 최고위원회의에서 "왜 그런 사안이 벌어졌는지, 앞으로 이런 일을 막기 위해서 어떤 조치가 필요한지에 대해 당연히 사후 조치가 뒤따라야겠지만, 현재로서는 일단 수습과 위로에 총력을 다 할 때"라고 말했다. 지도부 중 일부는 윤석열정부의 책임론을 제기했지만 이 대표는 이를 명확하게 언급하지 않았다. 이 대표는 대신 "민주당도 국민의 위임을 받아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책임을 다하는 공당이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제대로 완벽하게 지켜내지 못한 책임에 대해 깊이 사죄드린다"며 이태원 참사를 대하는 당의 자세를 전했다.
이 대표는 같은 날 참사 현장을 찾아 소방당국 관계자들에게 "왜 차도와 인도 분리도 안 하고 진입 인원이 통제가 안 됐나"라고 지적하기도 했지만, 전반적으로 사고 수습이 중요하다는 데 방점을 찍었다.
이태원 참사 수습에 초당적으로 협력하겠다는 이 대표의 행보에 여당에서도 이례적으로 감사를 표했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정부의 사고 수습과 치유 대책에 전적으로 협조하기로 한 민주당과 이재명 대표께 감사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이 대표는 참사 사흘 만인 1일에서야 진상 규명을 촉구했다. 그는 이날 의원총회에서 "사태 수습은 당연히 해야 하지만, 이에 더해 왜 천재지변도 없는데 아무 이유 없이 가족·친지·이웃이 영문도 모른 채 죽어가야 했는지 원인을 규명해야 한다. 당연히 책임 소재를 따져야 한다"며 이전과는 다르게 발언 수위를 높였다.
지난 2017년 10월10일 경기 성남시청사 외벽에 걸렸던 세월호 대형현수막 철거에 앞서 당시 이재명 성남시장이 철거 배경을 시민에게 설명하고 있다. (성남시청 제공, 뉴시스 사진)
이 같은 이 대표의 행보는 지난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던 당시와는 달랐다. 세월호 참사 때에도 여야 간에 정쟁을 중단하자는 협력 분위기가 형성됐지만, 이 대표의 정부를 향한 지적은 거침 없었다. 당시 성남시장이었던 이 대표는 사고 발생 사흘 뒤인 4월19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분통 터진 학부모들 "청와대 갑시다 여러분"' 제목의 한 언론 보도를 공유하며 '대한민국…'이라고 적었다. 4월24일에는 "입법·사법·행정이라는 국가 3대 권력 중 '행정권을 행사하는 정부의 수반'인 대통령(청와대)은 재난 위험에서 국민을 보호하는 최종 컨트롤타워"라며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청와대를 향해 직접적인 문제를 제기했다.
이 대표는 세월호 참사가 터진 지 10일째 되는 4월26일 경기 분당구 야탑역 광장에 세월호 희생자들을 위한 합동분향소를 설치해 운영했다. 4월28일에는 세월호 추모 대형 펼침막을 성남시청에 내걸었다. 5월1일에는 시청 국기 게양대에 세월호기를 게양했다. 1년 뒤인 2017년 4월17일에는 시청 앞 광장에 설치된 세월호 기억 조형물을 공개했다. 이는 이 대표가 세월호 진상 규명을 촉구하고 당시 참사를 잊지 않기 위해 상징적으로 내놓은 것들이었다. 세월호 참사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라진 7시간 의혹을 제기하며 당시 야권 대선주자들 중 가장 먼저 대통령 탄핵을 주장한 것도 이 대표였다. 이를 통해 일약 전국구 스타로 등장했다. 그만큼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정부를 향한 이 대표의 행보는 공세적이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최고위원들이 지난달 31일 서울 용산구 녹사평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사고 사망자 합동분향소를 찾아 헌화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 대표가 세월호 참사 때와 비교해 이태원 참사에서 달라진 행보를 보이는 것은 사고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있다. 정부의 구조 책임이 분명했던 세월호 참사와 달리 이태원 참사는 정부의 책임을 좀 더 따져봐야 하기 때문에 사태 수습 후 본격적으로 책임 소재를 가려야 한다는 일종의 신중론이다.
민주당 내부에서도 현재 이 대표의 행보에 대해 공감하는 의원들이 많았다. 이 대표를 향해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던 이상민 의원은 <뉴스토마토>와의 통화에서 "지금 상황에서 (이 대표가)사태 수습에 전념을 다하자고 한 것은 바른 행보"라며 "그렇다고 해서 책임 문제를 없던 것으로 하자든지 덮을 수 있는 상황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고를 막을 수 없었는지, 피해를 최소화할 수 없었는지에 대해서 전반적인 점검이 필요하고 그에 따른 책임이 있다면 책임질 사람은 책임져야 한다"고 했다.
이용선 의원도 "진상 규명이라든지, 책임론은 조금 뒤에 해도, 우선은 사고 수습하고 정리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지금은 이 대표의 기조가 일리가 있어 보인다"고 평가했다. 안규백 의원도 "애도 기간이 끝나고 나서 여러 가지 (정부의 문제점을)살펴봐야 한다"고 했다.
이 대표가 앞서 지난달 28일 정부에 여야정 국민안전대책회의를 우선적으로 제안한 만큼 그 기조를 그대로 이어가고 있는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당 최고위원이자, 이 대표의 측근인 박찬대 의원은 "(이 대표는)지금도 재난, 참사 이런 예방과 관련된 업무에 대해서는 여야정이 함께 해나가겠다는 의사가 그대로 있다"고 전했다. 세월호 참사 당시 성남시장이었던 것과 비교해 이태원 참사는 제1야당 대표로서 접근해야 하는 만큼 신중한 접근이 맞다는 동의도 이어졌다.
이와 달리 당 안팎에서는 이 대표의 대선 자금으로까지 확대된 검찰 수사를 의식한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관계자는 "지금 이 대표로서는 사면초가인 상황"이라며 "사고 수습에 협력하는 대외적 메시지의 효과도 분명히 있다"고 말했다.
박주용 기자 rukaoa@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