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익도의 밴드유랑)임재범이 '가족 잃은 슬픔'에게

이태원 참사 위로 "모두의 상처 곧 아물 수 있길"
7년 만에 전국 투어…국내 정상급 연주자들 참여

입력 : 2022-11-04 오후 5:00:00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모두 아시겠지만 안타까운 사고가 있었죠. 저 역시 그 또래의 딸을 키우는 입장이지만, 제가 어떻게 감히 섣불리 위로를 드릴 수 있겠습니까. 모두의 상처가 곧 아물 수 있기를 저 또한 바라겠습니다."
 
녹록지 않은 삶을 버텨온 이는 말 한 마디의 무게감도 깊다. 상처와 치유의 나이테를 새긴, 이제는 거대한 쉼터를 간직한 고목 같이 그는 말했다.
 
가수 임재범(61)이 7년 만에 관객들 앞에 섰다. 지난달 30일 서울 송파구 방이동 KSPO돔에서 열린 단독 콘서트를 통해서다.
 
2016년 2월, 마지막 공연을 끝으로 의도치 않게 속세(俗世)를 떠난 그다.
 
아버지와 아내를 사별한 상흔의 시간은 그를 수년간 음악과 TV로부터 단절시켰지만, 다시 일어서기로 했다. 히말라야 같은 '신의 영역' 속에서, 어둠 속 등불을 찾아 헤매듯. 
 
이날 '음악은 결국 나의 집과 같았다. 암흑 같은 시간을 여러분 덕에 버틸 수 있었다'는 자막이 흐르고, 특유의 거친 쇳소리로 그가 공연장을 수놓을 때, 6000여 관객들이 눈시울을 붉혔다.
 
"공백의 시기 동안, 노래를 그만둘까 생각도 했고, 감당해야 할 시간있었습니다. 상처가 지워지지 않았고 벗어나는 시간이 쉽지 않았지만, 다시 일어날 수 있던 것은 여러분 덕이었습니다. 휴식과 위안이 주는 장소가 집인 것처럼 저에게는 지금 바로 서 있는 이 무대가 집임을 깨달았습니다."
 
진짜 아파본 사람의 음악과 무대는 다르다. '아무리 걸어도 눈 뜨면 제자리이고, 어차피 다시 떨어질'('추락')테지만, '오랫동안 움츠렸던 날개를 하늘로 더 넓게 펼쳐 보이'('비상')기까지, 시간과 고뇌가 한꺼번에 덜컥 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임재범의 음악은 단순히 음악을 듣는 것이 아니다. 삶을 듣는 것이다. 진한 위로를 받는 것이다.
 
'좁은 계곡에 박힌 이 세상이/마치 송곳처럼 파고 드는데/발 끝에 치미는 독기가/내 머리를 채워 멀리로 날 데려가'('히말라야'·7집 '세븐 콤마(SEVEN,)' 수록곡) 
 
지난달 29~30일 서울 송파구 방이동 KSPO돔에서 열린 단독 콘서트를 연 가수 임재범. 사진=블루씨드컴퍼니
 
백색 한복 차림의 한국 무용수가 가느다란 손을 치켜들 때, 임재범의 탁성이 낭창한 '정가'와 대금, 아쟁, 스트링(첼로·바이올린·비올라) 그리고 기타 사운드와 맞물려, 다이나믹한 음의 곡선을 만들어냈다.
 
"제가 노래를 시작하고부터 힘든 일이 끝나지 않더군요. 봄에는 갈 수 없는 곳이 히말라야처럼요. 그럼에도 새로운 도전을 위해, 제 노래를 기다려주시는 여러분들을 위해 일어나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반드시 일어나라', '희망의 빛을 볼 수 있다', 이 노랫말들은 제 자신에게 하고 싶었던 말입니다. 몽글몽글한 부분을 살려낸 이 아정한 노래(정가)로, 여러분 앞에 새롭게 서고 싶었습니다."
 
'아버지 사진', '내가 견뎌온 날들'을 부르던 그는 끝내 가사를 이어가지 못하며 울먹였다. 핸드폰 불빛을 밝히는 객석이 대신 불러줬다.
 
이 날은 마침 이태원 참사 다음 날이라 충격과 아픔이 채 가시지 않은 터였다. 
 
"앉아 계신 분들 중에도 저와 같이 가족을 잃은 분들 있을 겁니다. 누구나 겪게 되는 일이고요. 사랑하는 사람의 빈자리는 크죠. 혼자 남겨졌다는 느낌이 많고요. 단단한 슬픔의 덩어리, 저 역시 고스란히 아직도 남아있지만, 훗날 상실감이 충만함으로 가득찰 수 있겠죠? 힘든 상황에 놓인 분들 책망하지 마시고요. 힘내세요. 꼭!"
 
1986년 헤비메탈 밴드 '시나위' 1집으로 가수 생활을 시작한 그는 올해로 데뷔 37년째다. 
 
본류는 록이지만, 지난 세월 장르에 가리지 않는 길을 개척해왔다. 그야말로 임재범이 장르가 된 셈이다.
 
딥 퍼플의 데이비드 커버데일, 블랙사바스의 로니 제임스 디오, 스팅, 제임스 잉그램 같은 가수들에게서 영향을 받았다는 그는 "장르에 국한되지 않고 좋아하는 음악을 많이 해온 것 같다"고 지난 날을 돌아봤다.
 
지난달 29~30일 서울 송파구 방이동 KSPO돔에서 열린 단독 콘서트를 연 가수 임재범. 이틀간 공연에는 약 1만2000여명의 관객이 찾았다. 사진=블루씨드컴퍼니
 
이날 콘서트를 빛낸 또 다른 주역은 국내 최정상급 연주자들이었다. 헤비메탈 밴드 다운헬 출신이자 가요계 연주자 톱으로 활약하는 노경환을 필두로, 밴드 피아 출신이자 서태지 음반 레코딩에 참여한 드러머 양혜승, 첼리스트 지박 등이 참여해 풍성한 소리를 겹쳐냈다.
 
앞서 이들은 콘서트를 위해 9월부터 뭉쳐 회당 3~4시간, 총 15회 정도의 합주 연습을 거쳤다. 다른 일도 병행해야 하는 이른 바 '세션'들은 회당 10시간, 총 3회 정도 모이는 게 일반적이지만, 통상적인 절차를 따르지 않기로 했다. 돌아온 임재범을 위한 최고 무대를 만들기 위해서다. 말 그대로 '너(임재범)를 위해'인 셈이다.
 
양혜승은 본보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모든 곡들이 '본인 이야기'라 연습 때 임재범씨도 연주자들도 울컥했던 시간들이 많았다. 드럼 같은 경우, 발라드 같은 곡들은 최대한 원곡에 충실했고, '이 밤이 지나면' 같은 곡에선 펑키한 흐름에 맞게 드럼사운드를 쪼개, 보다 역동적이게 들리게끔 포인트를 줬다"고 했다.
 
내년까지 이어지는 전국투어다. 오는 11월19일 일산을 시작으로, 부산(12월10일), 대구(12월17일·31일), 광주(12월24일), 수원(내년 1월14일) 등을 돈다.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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