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수민 기자] "이번에는 법원에서 감정 결과를 채택하지 않았지만 앞으로 심리학자들의 감정의견이 유죄의 증거로 채택될 날이 곧 올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조재빈 변호사(법무법인 바른)는 인천지검에서 이른바 '계곡 살인' 사건 수사 지휘를 마지막으로 변호사가 됐다. 그는 특수통, 그 중에서도 금융범죄 전문가로 통하던 검사였다. 그러나 강력사건 수사에도 남다른 조예가 있다는 것은 아는 사람은 다 안다. 조 변호사는 지금까지도 살인사건 수사로 사형확정 판결을 받아낸 몇 안 되는 검사 중 하나다. 2002년 양평 휴양림에서 일가족 4명을 살해하고도 범행을 부인하던 범인을 끈질기게 수사해 결국 사형 판결을 받아낸 일화는 지금도 유명하다.
최근 이은해와 조현수는 1심에서 각각 무기징역과 징역 30년을 선고받았다. 검찰의 주장대로 가스라이팅에 의한 직접 살인이 인정되진 않았지만 살인죄의 유죄를 이끌어낸 점은 검찰 내에서도 우수사례로 평가된다. 이은해, 조현수 모두 최근 항소해 조만간 2심이 열릴 예정이다.
조 변호사는 지난 2004년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 검사를 시작으로 삼성그룹 비자금 특별수사본부, BBK특별검사팀 파견 등을 거쳐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 부부장, 특수4부장 등을 거쳤다. 2019년에는 금융위원회 자본시장조사단에 파견돼 근무하는 등 금융에 정통한 특수통 검사로 분류되기도 한다.
살인범 잡는 특수통 검사에서 금융범죄 전문 변호사로 변신한 그를 만나봤다.
다음은 조 변호사와의 일문일답.
-최근 '계곡 살인' 사건의 1심 판결이 났다. 직접(작위) 살인은 인정되지 않았는데, 법원의 검찰과 다른 판단이 아쉽지 않나.
"검찰은 살인의 고의를 가진 이은해와 조현수가 수영을 전혀 못 하는 피해자를 수심이 깊은 계곡으로 유인해 가스라이팅을 해서 다이빙을 하게 한 작위에 주목했다. 다만 재판부는 살인의 고의를 갖고 다이빙해 살려달라고 하는 피해자를 구해주지 않은 부작위에 주목한 것 같다. 직접 살인이 인정되지 않은 것은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나 양형과 가스라이팅에 의한 직접 살인을 인정할 것인지의 여부에 대해서는 향후 항소심 재판 과정에서 다시 판단이 있을 것으로 보고있다."
-1심에서는 인정되지 않았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가스라이팅 범죄'에 있어 생길 변화는 어떻게 전망하고 있나
"범죄심리학적으로만 인정됐던 '가스라이팅'으로 인한 범죄가 사법의 영역, 특히 살인 사건에서 직접적으로 다뤄졌고 향후 동종 사례가 많이 기소될 것으로 예상된다. 계곡 살인의 경우, 범죄 심리학자들은 피해자가 가스라이팅을 당해 높은 절벽에서 수심 깊은 물로 다이빙했다고 분석한 바 있다. 이번에는 법원에서 감정 결과를 채택하지 않았지만 앞으로 심리학자들의 감정의견이 유죄의 증거로 채택될 날이 곧 올 것이라고 기대한다."
-특별수사 중에서도 금융사건 전문으로 알려졌는데, 우리나라 금융범죄 대응 현황은.
"현재 금융당국에서 1년에 한 100건 정도의 사건이 검찰로 넘어간다. 자본시장법위반 사건은 한국거래소나 금융감독원에 적발된다. 이 과정에서 금융위원회 자본시장조사단이 사건 중요도를 감안해 직접 사건을 조사하거나 금융감독원에 송부한다. 조사가 끝난 후에는 금융위 자본시장조사심의위를 거쳐 검찰에 넘어가는 구조다. 검찰로 넘어온 한 사건을 처리하는 데 평균 서너 명의 검사가 4~5개월 정도 넘게 걸린다. 우리나라의 금융시장 규모는 거래액 기준 전 세계 6위로 굉장히 큰 규모지만 다른 나라에 비해 금융 수사를 하는 인력이 굉장히 적기 때문이다. 이 상태를 그대로 방치하면 자본시장의 불공정 거래는 제대로 제어될 수 없다. 금융·증권범죄합동수사단의 설치로 사건 처리가 빨리 될 것을 기대하기도 하지만 인력 충원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수사 인력 확대와 더불어 개선돼야 할 점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효율적인 초기 대응을 위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금융감독원은 사건을 조사하지만 압수수색 등 강제 조사 권한은 갖지 않는다.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사건이 검찰로 넘어가는 문제가 생긴다. 위원회를 거쳐 검찰로 넘어가는 사건의 55% 정도만 기소될 뿐 45%는 무혐의 종결된다. 안 그래도 수사 인력이 적은 상황에서 비효율이 발생하는 것이다. 따라서 사건의 실체를 어느 정도 확인한 후 검찰에 보낼 수 있게 금융감독원에 강제 조사 권한을 부여할 필요성에 대해서도 생각해봐야 한다."
-비효율 해결을 위해 생각하는 또 다른 방안은.
"금융위 조사 공무원의 경우 자본시장법에 따라 강제 수사가 가능하다. 다만 통화내역 조회는 할 수 없다. 통화 내역 확인은 미공개 정보가 언제 생성돼서 어떻게 전달됐는지 확인하기 위해 꼭 필요한 절차지만 1년 동안만 보관된다. 금융위 조사 단계를 거쳐 검찰에 사건이 넘어왔을 땐 이미 기간이 만료될 기간이기 때문에 검찰은 중요한 증거가 없는 상태에서 조사를 하게 되는 것이다. 또 금융당국에 자산 동결 권한을 주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사건 초기에 부당이득을 취한 자를 적발하고 그 순간 자산 동결시켜야지 재범까지 막을 수 있다.
조재빈 법무법인 바른 파트너 변호사가 지난 2일 서울 대치동 사무실에서 <뉴스토마토>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법무법인 바른 제공)
김수민 기자 sum@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