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변소인 기자] "술집이지만 술은 당분간 팔지 않으려고요. '부어라, 마셔라' 분위기를 조성할 순 없잖아요. 손님이 얼마나 올지 몰라 음식은 만들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잘 모르겠네요. 아직 개시도 못했습니다." (A 술집 상인)

 

"원래 일요일 예약이 20팀이었는데 다 취소됐죠. 당분간은 고전할 것 같아요. 버티는 수밖에 없죠." (B 음식점 상인)

 

"주말이지만 손님이 평소 주말의 4분의1, 5분의1 수준이에요. 카페도 예외는 없더라고요." (C 카페 상인)

 

"말소리조차 안 들리는 동네가 됐어요. 동네 주민들도 나오지 않아요. 이태원이 부정적인 이미지로 각인되는 것이 가장 두렵습니다." ( D 음식점 상인)

 

지난 6일 저녁, 추모를 위해 피워둔 향냄새로 가득 찬 이태원에서 어렵게 상인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을씨년스러운 거리 풍경 속에서 무거운 마음으로 가게 문을 연 일부 상인들. 아직은 얼떨떨한 모습이 역력했다. 본격적으로 장사를 하려 한다기보다는 식기나 정리하고 창문을 닦으려 나온 듯한 이들에게 말을 거는 것조차 송구했다.

 

지난달 29일 밤 참사가 일어난 후 대다수 상인들은 국가 애도기간에 동참하는 마음으로 지난 5일까지 영업을 쉬었다. 애도기간이 지나 6일이 됐지만 닫힌 가게 문 앞에는 여전히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11월5일 애도기간까지 휴점합니다'라는 문구가 붙어있었다.

 

참사 이후 이태원 세계음식문화거리의 시계는 멈춘 듯했다. 사고가 일어난 골목은 여전히 통제되고 있었다. 폴리스라인이 쳐 있어 진입조차 불가능했다. 인근 골목은 통제되지 않았지만 문을 연 가게를 찾기는 힘들었다. 대다수가 술집, 유흥업소 등이라 사실 영업하기가 난감한 상황이기도 했다. 인근 골목을 찾는 이들은 그저 추모하러 온 시민들, 취재진들이 전부였다. 사람의 말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골목에는 적막함만이 가득했다.

 

간신히 문을 연 가게로 다가가 주인에게 말을 붙였다. 술집을 운영하는 A씨는 "개시도 못했다"고 말문을 열었다. 오랜만에 출근해 창문을 닦던 그는 "여기가 메인거리지만 분위기도 그렇고 술을 팔기가 좀 그렇다"며 "우리 가게는 음식도 맛있으니 음식 위주로 판매를 할 것인데 손님이 없을 것 같다. (가게에 오지 말라고) 누가 시키는 것도 아니니까 참 애매하고 모르겠다"고 말했다. A씨는 큰 기대 없는 얼굴로 애꿎은 창문만 계속 문질렀다.

 

오랜만에 이태원을 왔다고 운을 띄우자 담배를 피우던 고깃집 자영업자는 "오랜만에 오셨으면 가서 국화 올리시고 기도 한 번 딱 하시고 하시는 게 아무래도 좋죠"라고 추모를 독려했다. 그래도 손님 한 팀은 받았다는 이 자영업자는 "가게 문은 안 열어도 계속 왔다갔다는 했는데 어제까지만 해도 불이 없이 깜깜해서 귀신 나오는 줄 알았다. 주민들도, 차도 없었다. 오늘은 그래도 간판 불을 켜도 하니까 조금 나아보이긴 하는데 큰일 나긴 했다"며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이어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되면서 몇 개월 지나면 원상복구하나 했는데 설상가상이 됐다"며 "한 두 명이 사망해도 큰일인데 100명 이상이 참변을 당하니까 이건 국가적으로 큰 문제다. 어떻게 하겠나. 그냥 마음 비우고 (상권이) 살아날 때까지 기다려 봐야한다"고 덧붙였다. 지난 5일 이태원과 비교적 가까운 홍익대 상권을 잠시 보러 갔다왔다는 이 자영업자는 "반사이익으로 홍익대 상권 쪽엔 사람이 미어터졌다"고 전했다.

 

회 등 신선식품을 취급하는 음식점 등은 재료 수급 및 소진 등과 관련한 문제로 가게 문을 열기가 더 어려울 것으로 보였다. 음악을 크게 틀어야 하는 클럽, 펍 등도 마찬가지다. 한 자영업자는 "친구가 클럽을 2개나 하는데 거기는 우리 같은 일반 요식업에 비하면 타격이 몇 배가 돼서 피해가 더 심하다"며 "이 시국에 춤추고 노래하면 욕먹는다"고 했다.

 

사고 현장에서 조금 떨어진 건너편 퀴논길 일대도 분위기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상인들은 텅 빈 가게에서 휴대전화나 만지작거리며 시간을 때우기 일쑤였다. 대형 펍에는 기자가 지켜본 2시간 동안 단 한 팀의 손님도 들어서지 않았다. 

 

단골을 많이 확보하고 있는 음식점을 운영하는 한 자영업자는 "사람이 없어서 영업을 안 하는 게 나을 것 같아서 문을 열지 않았다"며 "다음 주 중에는 한 번 열어볼까 하지만 전반적으로 침통한 분위기인 데다 코로나19 이태원 클럽발 집단감염 때보다 상황이 더 좋지 않아서 상인들이 느끼는 위기감은 더욱 심각하다"고 짚었다.

 

이 음식점에 연말까지 잡혀있던 예약은 모두 취소됐다. 이 자영업자는 "한 단골은 지난주 수요일에 찾아와 자신이 청첩장 모임으로 걸어놓은 20건의 예약을 취소하게 돼서 미안하다고 전했다"며 "지인들이 이태원 방문을 꺼려했다고 하더라"라고 말끝을 흐렸다.

 

반면 주로 외국인이 근무하는 케밥집에서는 손님이 몰리고 활기가 넘치는 모습을 보여 대조를 이뤘다. 사고 이후에도 일부 케밥집은 애도기간 휴무 없이 정상영업을 하며 경찰, 취재진 등의 손님을 받아낸 것으로 알려졌다. 참사 관련 수습 업무가 진행되는 가운데 분위기 상 간편식을 찾는 사람이 많아 케밥집에 수요가 몰린 셈이다.

 

이태원 상권의 상인들 대부분은 지난 2020년 5월 이태원 클럽발 코로나19 집단감염보다 이번 참변으로 인한 타격이 더 클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이태원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가장 염려했다. 눈앞의 매출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이태원이라는 상권 자체가 몰락할 것을 우려하고 있었다. 참사에 대한 책임 있는 수습 및 대책 마련과 별개로, 이태원 지역 공동체의 회복방안 모색 또한 절실한 상황이다. 무엇보다도 먼저 상인들이 겪는 트라우마부터 치유하는 게 회복의 첫걸음이 될 것으로 보인다.

 

변소인 기자 bylin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