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윤민영 기자] 자치경찰 지원을 주요 업무로 삼고 있는 경찰국이 이번 '이태원 참사'에서 무용지물이었다는 비판이 나온다. 자치경찰은 다중운집 행사에서 안전관리 사무를 하지만 정작 지구대·파출소 인력이나 기동대 지휘 권한이 없기 때문에 경찰국이 이를 뒷받침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지난 8월1일 신설된 행안부 내 경찰국은 신설 100일이 지났지만 주요 업무 중 하나인 자치경찰의 업무를 지원하는 역할은 사실상 아예 없는 상황이다. 경찰국 신설 자체가 경찰법상 위헌·위법 논란을 겪고 있는데다 예산과 인력 편성 등이 갖춰지지 않아 '유명무실'한 조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여기에 내년도 경찰국 예산까지 전액 삭감되며 경찰국이 자치경찰을 지원하기는 커녕 경찰의 견제 도구로만 전락했다는 비판을 피하지 못할 전망이다.
10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지난 9일 열린 예산결산기금심사소위원회에서는 내년도 경찰국 예산이 전액 삭감됐다. 당초 편성됐던 본경비 2억900만원과 경찰국에 배치되는 행안부 직원 3급 1억2000만원, 4급 1억 4000만원, 5급(2명) 1억 7000만원 등 총 4명의 인건비 3억9400만원이 모두 삭감된 것이다. 이성만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행안부 경찰국이 법적 근거 없이 설치됐다는 이유로 관련 예산이 전액 삭감되어야 한다고 주장해왔고, 이는 예산 소위에서 의결된 결과다.
이 의원은 경찰국을 설치할 때는 "대통령-국무총리-행안부 장관-경찰청으로 이어지는 지휘 체계가 만들어진다고 설명했지만 이태원 참사 전후로 경찰국에서 아무런 지시도 내린 바 없는 등 경찰 장악 수단에 불과한 것이 드러났다”며 “애초에 불법적인 시행령 개정으로 만들어진 만큼 이를 바로 잡기 위해서 예산을 전액 삭감한 것”이라고 밝혔다.
자치경찰위원회도 이번 참사에서 자치경찰의 역할이 미비하다는 지적을 받았지만, 경찰법상 파출소·지구대는 물론 기동대 지휘를 할 수 없었다는 입장이다. 경찰법 제4조(경찰의 사무)에 따르면 자치경찰사무는 동법 제3조(경찰의 임무)에서 정한 '공공의 안녕과 질서유지'에 관해 '지역 내 다중운집 행사 관련 혼잡 교통 및 안전 관리'의 임무를 수행하도록 돼있다. 그러나 안전 관리에 해당하는 경비 업무를 수행하는 기동대와 파출소·지구대 등의 지휘는 국가경찰의 권한이다.
신현기 한세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지구대와 파출소 인력은 자치경찰의 손과 발 역할을 해야함에도 불구하고 국가 공무원이므로 시·도 지방공무원인 자치경찰에게 지휘 권한이 없다"며 "경찰국은 경찰법 상위법에 근거를 한 게 아니라 시행령에 근거했기 때문에 행안부가 인력과 예산 등 아무런 준비를 할 수도 없을 것이고, 또 구체적으로 무엇을 지원할지 시스템 마련도 없이 허울만 만들어졌다"고 비판했다.
현 정부와 함께 경찰국 신설을 주도한 이상민 행안부 장관은 경찰국이 치안과 무관한 조직이라면서도, 굳이 자치경찰 지원 조직을 만든 목적이 불분명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연균 창신대 경찰행정학과장은 "이번 참사는 경력 동원 권한이 있는 국가경찰이 제대로 움직였어야 했지만, 복잡한 보고체계를 봤을 때 현장 최일선에 있는 지구대와 파출소 등을 자치경찰 체제로 움직였다면 현장 투입이 더 빨랐을 수도 있다"며 "굳이 경찰을 견제하겠다는 취지의 경찰국을 만들면서 자치경찰 지원 업무도 포함했지만 여태 아무런 시스템을 만들지 못했다"라고 지적했다.
현재 국내에서 자치경찰 제도가 가장 자리잡은 곳은 제주특별자치도다. 제주경찰청은 타 시·도와 마찬가지로 '경찰법'에 따라 조직·운영 중이지만 제주자치경찰단은 '제주특별법'에 근거해 2006년부터 가동 중이다.
따라서 제주 경찰은 제주경찰청 소속 국가경찰과 제주자치경찰단이 자치경찰사무를 나누어 수행하고 있는데, 제주자치경찰위는 국가경찰사무를 제외한 자치경찰사무의 지휘·감독 권한을 갖고 있다. 맡은 사무에 대한 지휘권이 제한적인 타 시·도와 달리 비교적으로 권한이 넓다.
김성섭 서울자치경찰위원회 사무국장은 "자치경찰위가 국가경찰 소속에 대한 지휘권이 없고 경찰국에 지원 업무가 있긴 해도 역할이 없다"며 "하루빨리 국민 안전을 강화할 수 있도록 법과 제도가 정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찰이 지난 9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해밀턴 호텔 옆 인근 참사 장소를 지키고 있다. (사진=뉴시스)
윤민영 기자 min0@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