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쓰비시중공업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가 지난달 29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후문에서 열린 '미쓰비시중공업 대법원 판결 4년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뉴스토마토 박주용 기자] 강제징용 문제의 해법을 마련하기 위해 예정됐던 민간토론회 일정이 연기된 것으로 확인됐다. "민감한 시기에 강제징용 문제와 관련한 (한일 간)교섭이 좀 더 진행된 다음에 보자"는 게 정부가 토론회를 연기한 이유로 알려졌다.
외교가에 따르면, 14일 열릴 예정이었던 '한일관계 민관대토론회'가 급작스럽게 연기됐다. 토론회 참석이 예정됐던 전문가들은 토론회 개최 이틀 전인 지난 12일 연기 사실을 통보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한 토론자 참석자에 따르면, 이날까지 다음 토론회 일정은 확정되지 않았다.
이번 토론회는 한일 양국이 강제징용 배상 문제 해법을 모색하고 있는 상황에서 외교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국립외교원과 민간 싱크탱크인 세종연구소가 함께 추진하던 행사였다. 당초 토론회에서는 두 센터 소속 전문가와 국내 학자, 전직 외교관 등이 참여해 강제징용 문제의 해법과 방향을 비롯해 한일관계 협력 과제를 논의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민감한 시기'라는 이유로 토론회가 돌연 연기됐다. 토론회 참석이 예정됐던 한 전문가는 <뉴스토마토>와의 통화에서 "(주최 측에서)민감한 시기에 좀 더 교섭이 진행되고 나서 보자고 했기 때문"이라며 "이후 토론회 일정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정부가 '민감한 시기'를 이유로 토론회 일정 연기를 결정한 것은 자칫 강제징용 해법 논의 과정에서 나온 일부 내용이 일본 정부를 자극할 수 있고 이는 향후 협의 과정에서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란 우려 때문으로 전해졌다.
사진은 지난 3월18일 외교부 모습이다. (사진=뉴시스)
정부의 '일본 눈치 보기'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최근 정부는 일제 강점기에 조선여자근로정신대로 강제동원된 피해자로, 30년째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재판 투쟁'을 해온 양금덕 할머니의 국민훈장 모란장 서훈도 보류해 '일본 눈치를 보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와 관련해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은 지난 8일 성명을 통해 "외교부가 일본 눈치를 보느라 강제동원 피해자 인권 회복을 막아선 것"이라며 "양금덕 할머니의 인권상 수상에 도대체 어떤 협의가 필요하다는 것인지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강제동원 피해자를 지원해 온 임재성 변호사는 페이스북에서 "강제동원 문제로 30년 동안 싸워온 피해자에게 상을 주면 일본이 불편해할까 봐, 현재 논의되는 강제동원 관련 한일 협의에 변수가 생길까 봐, 외교 쪽과 협의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특히 "국내적으로 서훈을 주는 것조차 외국의 눈치를 보아야 하느냐"며 "지금 이런 상황을 만들려고 '한일관계 복원'한다고 했던 건가. 지금 현 정부가 하려는 것이 피해자를 청산하고, 피해자의 권리와 존재를 청산하는 것인가"라고 따졌다.
정치권에서도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민주당 의원들과 무소속 김홍걸 의원은 지난 9일 성명을 통해 "이번 양금덕 할머니에 대한 국민훈장 모란장 수여가 외교부에 의해 가로막힌 사태를 통해 윤석열정부가 대일외교를 넘어 국정운영에서도 일본의 눈치를 보고 있는 것이 확인됐다"며 "민주당 외교통일위원회는 대통령 고유권한인 훈장 수여마저 일본의 눈치를 보는 윤석열정부를 강력히 규탄한다"고 했다.
외교부로서는 관계부처 간의 사전 협의가 필요한 사안이라고 보고 규정된 절차를 따른 것이라는 입장이다. 임수석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 8일 정례브리핑에서 "서훈 수여는 상훈법상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대통령이 재가하는 사안"이라며 "외교부로서는 관계부처 간의 사전 협의가 필요한 사안이라고 보고 있었고, 그에 따라 관련된 의견을 제시한 바가 있다"고 해명했다.
박주용 기자 rukaoa@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