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쓰비시중공업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양금덕씨가 지난달 29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후문에서 열린 '미쓰비시중공업 대법원 판결 4년 기자회견'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뉴시스)
[뉴스토마토 박주용 기자] 정부가 최근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 측과 잇단 면담에 나섰지만 연내 해법 마련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피해자 측의 입장을 고려한 정부의 구체적인 방안이 아직 나오지 않은 데다, 일본 정부 쪽에서도 기시다 후미오 총리의 지지율이 부진하면서 운신의 폭이 좁아졌기 때문이다. 그러자 강제징용 피해자 측은 별다른 해법을 내놓지 못하는 정부에 답답함을 호소했다.
서민정 외교부 아시아태평양국장은 7일 광주를 찾아 일본 미쓰비시중공업 근로정신대 강제동원 피해자 측을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앞서 서 국장은 서울에서도 신일본제철 강제동원 피해자 측을 만난 것으로 전해졌다. 외교부 당국자와 피해자 측 간 공개 만남은 지난 9월2일 박진 외교부 장관이 광주를 방문한 이후 약 3달 만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는 지난 9월 유엔총회와 지난달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관련 정상회의를 계기로 회동을 갖고 강제징용 피해자 문제가 조속히 해결돼야 한다는 데 뜻을 모았고, 이후 양국 간 협의가 본격화됐다. 외교부도 한일 정상의 양국 관계 개선 의지에 따라 지난 9월 초 국내 전문가들과의 민관협의회가 종료된 이후부터 강제징용 해법 마련에 속도를 냈다.
이와 관련해 일본 일부 언론을 중심으로 양국이 최종 해법 마련을 위해 이견을 좁히고 있다는 보도도 나왔다. 한일 양국이 패소한 일본 기업의 배상금 재원을 함께 마련하고, 이를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피해자들에게 배상금을 대신 변제하는 방안(제3자 변제)이 가능성 높다는 관측도 제기됐다.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는 <뉴스토마토>와의 통화에서 "어떻게 진행될지 지켜봐야지만 아무래도 기존 재단을 활용하는 방법이 가장 유력하다"고 말했다. 당초 민관협의회에서 정부 예산을 들인 '대위변제 방안'도 언급됐지만 피해자들의 반대로 배제된 상황이다.
다만 강제징용 문제에 대한 일본 측의 사과와 배상금 재원 조성을 위한 일본 기업의 온전한 참여 여부는 여전히 불투명한 상황이다. 호사카 유지 교수는 "일본 쪽의 사과에 대한 보도는 구체적으로 나와 있지 않다"며 "한국에서는 일본에 사과의 말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조율이 쉽지 않다. 일본에서는 1965년에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모두 끝났다는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13일(현지시간) 프놈펜 한 호텔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한일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기시다 총리의 저조한 지지율도 강제징용 문제 해법을 마련하는데 변수가 되고 있다. 요미우리는 지난 2∼4일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1069명을 대상으로 전화 여론조사를 한 결과, 기시다 일본 내각의 지지율은 40%에 못 미치는 39%로 조사됐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시다 총리가 강제징용 문제에 대한 우리 측의 사과 요구를 수용할 경우 집권여당인 자유민주당(자민당) 내 강경파의 반발이 더욱 커지면서 지지율에 부담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호사카 유지 교수는 "(기시다 총리의)지지율이 더 떨어질 우려가 있기 때문에 일본 정부 측은 아무래도 한국 쪽에서 알아서 이 부분(강제징용 해법)을 해달라는 생각이 강한 것 같다"고 말했다. 또 "형식적으로 (일본 정부가)사과한다고 해도 다시 (해법이)뒤집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일본 쪽에서 상당히 걱정하고 있는 부분"이라며 "이러한 부분들 때문에 기시다 총리가 (강제징용 문제 해법 마련에)쉽게 움직이지 않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강제징용 피해자 측에서도 최근 연이은 면담에도 정부가 별다른 해법을 내놓지 않는 데 대해 답답함을 호소했다.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권리구제와 명예회복 등을 지원하고 있는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측 관계자는 "피해자들의 입장이 어떻다는 것을 외교부가 모르는 것도 아니고 외교부는 언론을 통해서 계속 뭔가 이야기하고 있다고 하는데 피해자나 대리인단을 통해서 외교부가 전달한 내용은 없다 보니 저희들도 상황이 어떻게 될지 답답하다"고 밝혔다.
박주용 기자 rukaoa@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