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조승진 기자] 병역기피로 인한 형사처벌을 면하기 위해 해외에 체류한다면 해당 기간 동안 처벌 공소시효가 정지되는 게 맞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해외에서 체류하다 입영의무가 면제되는 나이를 넘겨 귀국해 병역법위반죄(국외여행허가의무위반)으로 기소된 A씨에 대해 면소 판결을 내린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대전지방법원으로 사건을 되돌려 보냈다고 20일 밝혔다.
14세부터 미국에서 유학 생활을 시작한 A씨는 군에 입대할 상황이 된 18세 이후부터 병무청장으로부터 국외여행허가 및 기간연장 허가를 받아왔다. 하지만 A씨는 2002년 12월31일 국외여행 허가 기간이 만료됐지만 따로 연장 신청을 하지 않은 채로 미국에서 거주했다. 국외여행 기간연장허가는 기간만료 15일 전까지 기간연장허가를 받아야 한다. 병무청은 2003년 4월 A씨를 병역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
2005년 A씨는 미국 체류 비자까지 만료됐지만, 학업을 중단한 상태여서 비자 기간을 연장하지 못했다. A씨는 미국에서 불법체류 상태로 지내다 입영의무가 면제되는 연령인 36세를 넘긴 41세의 나이로 2017년 4월18일 한국에 귀국했다. 이후 A씨는 병역법위반죄(국외여행허가의무위반)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은 A씨의 혐의를 유죄로 보고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지만 2심은 A씨에게 공소시효가 지났다며 면소 판결했다. 병역법 위반 공소시효는 최종 국외여행 허가기간 만료일인 2002년 12월31일부터 시작돼 공소시효 기간인 3년이 지났다는 것이다. 또 형사처분을 면할 목적이 있었다면 공소시효가 정지되지만 A씨가 이러한 목적으로 미국에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증거가 없다고도 덧붙였다.
반면 대법원은 최종 국외여행 허가기간 만료일부터 공소시효가 진행된다는 원심의 판단은 맞다면서도 A씨가 미국에 체류하는 동안 공소시효가 정지돼야 한다며 원심을 파기·환송했다.
대법원은 "피고인의 국외 체류 목적 중에는 이 사건 범행으로 인한 형사처분을 면할 목적이 있었다고 볼 여지가 있다"라며 "피고인에게 달리 형사처분을 면할 목적과 양립할 수 없는 주관적 의사가 명백히 드러나는 객관적 사정이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원심은 피고인이 형사 처분을 면할 목적으로 국외에 있었다는 점에 관한 아무런 증명이 없다고 봐 공소시효가 정지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며 "공소시효 정지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은 잘못이 있다"고 했다.
또 형사소송법 제253조 제3항은 국외 체류한 것이 도피 수단으로 이용된 경우 체류 기간 공소시효 진행을 멈춰 범인을 처벌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면서, 대법원은 "위 규정이 정한 ‘형사처분을 면할 목적’은 국외 체류의 유일한 목적으로 되는 것에 한정되지 않고 범인이 가지는 여러 국외 체류 목적 중에 포함되어 있으면 족하다"고 설명했다.
대법원은 피고인이 4차례에 걸쳐 기간 연장 허가를 받아 국외에 계속 체류하기 위한 절차를 알았다고 보이는 점, 지방병무청이 한국에 있는 A씨의 가족들에게 입국을 촉구한 점, 불법체류 상태로 입영의무가 면제되는 연령을 넘어서까지 미국에서 체류한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번 판결을 통해 해당 사건과 관련한 범행의 공소시효가 시작되는 시점이 국외여행허가 명확히 했다"고 판결의 의미를 설명했다. 또 "공소시효 완성을 판단함에 있어 공소시효 정지에 관한 형사소송법이 정한 이유에 대한 심리를 제대로 해야 함을 지적한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사진=뉴시스)
조승진 기자 chogiza@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