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허지은 기자] 즉시연금 소송의 승패를 가른 '산출방법서'의 보험약관 인정 여부가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다. 재판부는 산출방법서를 약관과 같은 효력으로 인정하면서 보험사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산출방법서가 보험 가입자에게 교부되지 않은데다 일반 금융소비자가 이해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약관과 같은 효력이라는 데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1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교보생명 즉시연금 소송 원고(소비자)측은 2심 패소 후 대법원 항소 여부에 대해 아직 결론내지 않고 검토에 들어간 것으로 확인됐다. 이보다 먼저 2심 결과가 나왔던
삼성생명(032830) 즉시연금 소송은 가입자의 항소로 대법원으로 넘어간 상황이다.
즉시연금은 가입 시 보험료 전액을 한 번에 납입하고, 다음 달부터 매월 연금으로 받을 수 있는 보험 상품이다. 즉시연금 가입자들은 만기환급금 재원을 만들기 위한 금액을 연금액에서 제외하고 받게된다는 사실을 몰랐다며 보험사를 상대로 소송에 나섰다.
보험사들은 약관에는 공제 사실을 명시하지 않았지만, 산출방법서에서 정한 대로 연금액을 계산한다고 명시했다는 이유로 맞섰다. 산출방법서란 보험료 산정의 기초가 되는 예정기초율과 보험료의 계산에 관한 사항 및 책임준비금의 계산에 관한 사항을 기술한 서류다.
즉시연금 소송의 쟁점 중 하나는 '산출방법서'(산출내역서)를 보험약관으로 인정하는가였다. <뉴스토마토>가 최근 보험사가 승소한 사건인 삼성생명의 즉시연금 소송 2심과 KB생명의 1심 판결문을 입수해 비교한 결과 두 재판부는 모두 산출내역서를 약관으로 인정했다.
삼성생명 2심 재판부와 KB생명의 1심 재판부의 판결문은에선 "이 사건 보험계약의 내용으로 편입되는지 여부는 별론으로 하더라도, 이 사건 산출방법서 중 연금월액의 계산에 관한 부분은 이 사건 약관의 일부이거나 적어도 이 사건 약관은 이 사건 산출방법서에 따른 연금월액의 계산을 전제로 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고 기록했다.
KB생명의 즉시연금 산출방법서(좌)와 삼성생명 즉시연금 산출방법서(우). 산식 일부 값은 정보 보호를 위해 가림. (출처 = KB생명 및 삼성생명 즉시연금 소송 판결문, 가공 = 뉴스토마토)
산출방법서가 약관에 포함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보험법 전문가인 박기억 변호사는 "산출방법서는 외부에 공개되는 것이 아니고 계약자에게 제시하는 서류도 아닌, 보험사 내부 자료에 불과하기 때문에 보험 약관으로 편입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산출방법서가 '약관에 편입됐다'고 보긴 어려운데, 만약 보험사가 약관 외의 내용으로 당사자간 개별 합의를 통해 '계약 내용으로 편입하자'고 했다면 효력을 인정할 수 있겠지만 이번 즉시연금 소송의 산출방법서는 당사자 간 합의로 계약 내용에 편입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판결문을 보면 두 사건의 재판부 모두 산출방법서가 가입자에게 교부되지 않은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삼성생명 2심 재판부는 "피고(보험사)가 원고(가입자)들에게 이 사건 산출방법서를 교부하고 복잡한 연금계산 방법을 설명하지는 않았으나", KB생명 1심 재판부는 "보험료 및 책임준비금 산출방법서는 고객에게 교부되는 서류는 아니다"고 판결문에 명시했다.
복잡한 수학식으로 이뤄진 산출방법서를 보험 약관 서류로 인정하는 것은 무리라는 지적도 나온다. 최미수 서울디지털대 교수(경영학 보험 전공)는 "일반 금융소비자가 이해하기 어려운, 복잡하고 어려운 산식인 산출내역서를 보험약관으로 본다면 소비자에게는 정보 비대칭성이 발생하게 된다"고 말했다.
즉시연금 소송의 또 하나의 쟁점으로 불거졌던 '설명의무 이행 여부'는 사실 이 사건에서 다툴 부분이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KB생명 즉시연금 1심 소송을 맡은 재판부는 "위 산출방법서에 기재된 책임준비금 등에 관한 수학식에 의한 복잡한 계산방법 자체는 설명의무의 대상이 되지는 아니하다"는 내용을 판결문에 담았다.
허지은 기자 hj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