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헌법 79조 특별사면권을 행사했다. "새 정부 출범 첫해를 마무리하면서 범국민적 통합으로 하나 된 대한민국의 저력을 회복하는 계기"라고 발표했다. 이번에도 등장한 '국민통합'이 명분이다.
국민통합은 사면 시행의 만병통치약이다. 군사쿠데타의 주역도, 국정농단으로 탄핵당한 주역도, 재벌총수도 사면된다. 이미 한국의 형사사법 체계에서 관대한 처벌과 혜택을 받았음에도 완전한 복원이 되는 것이다. 사면은 말 그대로 범죄를 용서하고 면제해 주는 것이다. 봉건국가에서는 임금이 경사로운 날에 시행했고, 근대국가에서는 국가원수인 대통령이 시행한다. 일반사면은 의회의 동의를 거쳐야 하지만, 특별사면은 오직 대통령의 결심에 근거한다. 헌법학자들은 대통령의 자의적 사면이 남발되기 때문에 의회의 동의를 구하거나, 중대 범죄자는 제외하거나, 사면심사위원회의 재구성 등으로 법률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의 특별사면권을 계속 보장하는 이유는 대통령이라는 국가원수가 헌법과 법률의 한계에 갇혀서 통치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는 것보다는 정치적 분열을 극복하는 포용적 정치 행위를 보장하는 것이 국가적 이익이라고 보기 때문에 여러 가지 반론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의 사면권을 보장하고 있다. 미국에서도 대통령의 사면권을 형사사법제도의 결합을 보완하는 정치적 행위로 보면서 관용의 효과가 긍정적 역할로 본다.
원숭이 실험에서 한 원숭이에게는 포도를 주고, 다른 원숭이에게는 오이를 주면, 처음에는 어리둥절해서 하면서 잠깐의 차별이거니 하다가 계속 오이만 먹이로 주면 차별받는다고 생각하는 원숭이는 난동을 일으킨다. 단순한 먹이의 문제였지만, 원숭이도 공평하지 않으면 극도로 분노한다는 실험의 결과를 알게 되었다. 한국 정치를 걱정하는 사람들은 윤 대통령이 집권 6개월 동안 협치를 단절하고 오직 대결정치로 일관하고 있는 모습을 염려한다. 특별사면은 아주 조심스럽게, 그리고 아주 공평하게 사용하라는 취지와 뜻은 무시하고, 한마디로 '자기 진영 사람들을 위한 사면 복권'이 돼 버렸다.
대통령은 특정 당파의 수장이나 계파의 수장이 아니라 국가원수로서 국민통합의 상징으로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런데 이번 사면권은 형평성을 벗어나도 한참을 벗어났다. 한국 정치가 크게 여당과 야당으로 나뉘어 양당정치가 기본을 이루고 있는데, 한쪽의 요구만 반영되어 환영하고, 다른 한쪽은 만족은 고사하고 극렬하게 분노한다면 국민통합은 물 건너가고 만다. 아직 1년도 안 되는 시점에서 2번의 사면권을 행사한다면 당연히 '국민 대통합'을 위한 사면일 거라는 일말의 기대가 있었다. 그러나 이번의 사면을 보면서 야당은 뺨을 맞은 느낌일 것이다.
이번 사면은 윤 대통령이 수사 책임자로서 수사했거나, 서울중앙지검장으로 기소해 처벌에 앞장선 사건의 당사자들이다. 여당은 '결자해지'라고 의미를 부여하지만, 결과적으로 본인이 진두지휘했던 적폐청산의 결과를 스스로 무효로 만들었다. 박근혜 국정농단 사건의 주범과 종범 대부분을 사면, 또는 복권 시켰다. 이명박 대통령과 이명박정부에서 민주주의 파괴를 앞장섰던 국정원 댓글 조작 사건 당사자들을 사면 복권 시켰다. 야당의 경우에는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를 잔여형 면죄만 하고 복권은 시키지도 않았고, 그 외 전병헌, 신계륜 전 의원, 강운태 전 광주시장 등으로 양적으로도 질적으로도 형평이 맞지 않는다. 누가 봐도 한쪽으로 치우쳤다.
윤 대통령은 정부 정책에 항의하는 시민운동과 노조 활동에 대해 '법치주의'를 내세운다. 법률가 출신이니 잘 알겠지만, 법치주의의 반대말은 '인치주의'다. 권력을 행사하면서 법률에 근거해서 집행하라는 이념이 법치주의다. 왕의 자의적 통치가 아니라 법률에 근거해서 처벌하라는 것이 법치주의의 시작이었다. 그래서 피통치자를 규율하는 법률 정신이라기보다는 통치자에게 법을 지키라는 법 정신이 바로 법치주의다.
선량한 시민들은 이번 대통령의 사면권 행사를 보면서 권력자들은 죄를 지어도 5년 안에 정권만 잡으면 무죄가 되고, 사회에 복권된다는 부정의, 불의에 절망하고 있다. 편파적이고 당파적인 대통령, 실패한 대통령으로 남고 싶은 대통령은 없을 것이다. 윤 대통령이 강 대 강 드라이브를 세게 걸어서 1년 4개월이나 남은 총선까지 온 힘을 다 쏟아부어서 국정을 주도할 수 있다면 지금처럼 협치를 거부하고 검찰을 주체로 하는 '검치'를 계속해도 된다. 역사의 진리는 작용이 있으면 반작용이 있고, 도전과 응전의 반복이다. 대한민국의 정치가 더욱더 강대강 대결 정치로 치달아 가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김두수 시대정신연구소 대표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