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0일 NH농협은행은 주택담보대출 금리를 0.8%P 낮췄습니다. KB국민은행도 주담대와 전세자금 대출 금리를 각각 최대 1%포인트 인하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5대 시중은행은 지난달 가계대출 금리를 줄줄이 내렸습니다. 주택담보대출 금리 상단은 연초 연 8%대에서 이제 6%대까지 내려갔습니다. 뒤이어 카카오뱅크와 케이뱅크 등 인터넷 은행들도 동참했죠.
그런데 이들 은행의 대출금리 인하가 자발적인 조치일까요. 그렇게 보기 어렵습니다. 외부 압박의 결과라고 하는 것이 진실에 가까울 것입니다. 은행들의 예대금리차가 더 벌어지자 정치권과 금융당국에서 연이어 쓴소리했으니까요.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은행은 지난해 순이자 이익 등 어느 정도 여력이 생겼다“면서 ”과도한 대출금리 상승으로 가계와 기업의 부담이 크다는 점을 살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도 "시중은행들은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 현실 아래에서 서민들이 예대 이율 차이로 고통을 겪는 일이 없도록 부탁드린다"고 말했습니다.
표현은 정중하지만, 대출금리를 내리라는 공개적인 요구나 다름없었죠. 그러니 은행들도 더 이상 버티기 어려웠을 듯합니다.
금리라는 ‘가격’에 대해 바깥에서 이러쿵저러쿵하는 것은 한국이 지향하는 자유시장경제에 역행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른바 ’관치‘라고 해도 그다지 틀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들 은행이 그야말로 시장원리에 따라 정당한 수준으로 금리를 올리고 내리는지 따져볼 필요는 분명히 있습니다. 그 권한과 책임은 금융감독원을 비롯해 금융당국에 있습니다. 공정거래위원회를 비롯한 경쟁당국은 금리나 수수료를 담합하지 않는지 감시해야 합니다. 만약 시장원리에 어긋나거나 ’짬짜미‘가 자행된다면 이들 당국이 국민과 소비자를 대신해서 나서야 마땅하죠. 행인들 상대로 시비를 걸고 죽이던 프로크루스테스를 아테네의 영웅 테세우스가 응징하듯이 말입니다.
그래서인지 당국의 금리인하 압박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많은 금융소비자의 공감을 얻었습니다. 그만큼 은행들이 소비자들로부터 불신받고 있음을 말해줍니다. 미움의 대상으로 전락한 것이죠.
금융당국은 금융지주 수장 선임과정에서도 모종의 역할을 가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신한금융과 우리금융지주의 수장이 물러나게 된 것도 이런 입김의 결과라는 시각이 우세합니다.
이 역시 시장경제 국가에서 곤란한 일임에도 용인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이들 대형 금융지주 산하 금융사에서 지난 몇 년 동안 벌어진 사건들을 돌아보면 쉽게 이해됩니다. 파생결합펀드(DLF), 라임펀드, 옵티머스펀드 등 소비자를 울렸던 사건이 그야말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났었죠. 무허가 금융업자들이 서민들을 울리던 사기 사건과 다를 바 없습니다. 오히려 피해 규모나 피해자의 숫자로만 보면 훨씬 더 크고 악질적입니다.
그래서 금융당국이 그 책임을 물어 징계하면 겸허하게 수용하지도 않습니다. 법정으로 사건을 끌고 가서 시간을 끌었습니다. 승패는 그다음 문제입니다. 법정으로 사안을 끌고 간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진정한 뱅커로서의 자존심을 포기한 것 아닐까요.
뿐만 아니라 어떻게든 당국과 소비자와 투자자의 눈초리를 피해 연임하겠다는 꿈을 꾸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이미 미움받는 처지에서 연임을 꾀하니 지나간 사건에 대한 아픈 기억과 악몽을 되살릴 뿐입니다. 해당 금융사에 찍힌 주홍글씨만 더욱 선명해질 뿐이었습니다.
금융당국의 입김이 너무 세다는 목소리도 분명히 들립니다. 그렇지만 은행과 금융지주가 개입을 불러들였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관치를 배격하고 자율적으로 경영하고 싶은 마음 간절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보다 소비자의 미움을 사지 말아야 합니다. 허술하거나 무모한 이익 추구 행위를 그만두고 소비자들의 이익을 우선 존중해야 하는 것입니다.
17세기 영국의 경험주의 철학자 데이비드 흄이 지적한 바 있습니다. 사랑과 미움을 품으면 자비와 분노를 유발한다고. 지금 국내 은행과 금융지주사들은 바로 이런 미움의 대상이 돼 있음을 똑똑히 알아야 합니다. 이제야말로 한국의 은행과 금융지주사들은 소비자들의 미움이 아니라 사랑을 먼저 받는 경쟁을 벌여야 합니다.
차기태 언론인(folium@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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