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유연석·배덕훈 기자] 무속인 천공이 대한민국의 국기(國技)인 태권도를 자신의 행사로 치장했습니다. 자신의 법명이자 개명한 이름 '천공'을 끌어다 '천공컵 무도대회'를 열었는데요, 대한태권도협회까지 관여된 것으로 나타나 배경에 관심이 집중됩니다.
무속인 천공이 5일(현지시각) 호주 시드니 허스트빌 아쿠아틱 레저센터에서 열린 '제1회 마스터 천공컵 종합무도 호주대회'에 참석했다. (사진=다음 카페 'I Love NBA'에 올라온 게시물 갈무리)
6일(현지시각) 호주 교민 언론 <한호일보> 보도에 따르면, 천공은 전날 호주 시드니 허스트빌 아쿠아틱 레저센터에서 열린 '제1회 마스터 천공컵 종합무도 호주대회'에 참석했습니다. '천공컵 무도대회'는 호주대한태권도협회(KTAA: Korea Taekwondo Association of Australia) 주최로 열린 제18회 호주대한태권도협회 토너먼트의 별도행사로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진행됐습니다.
대회에는 천공의 최측근인 신경애 정법시대문화재단 이사장도 참석했습니다. 한 호주 교민이 찍은 현장 사진에는 천공과 함께 주최 측 테이블에 착석한 신 이사장이 뚜렷하게 보입니다. 신 이사장은 윤석열 대통령 당선 직후인 지난해 4월 당시 정법재단 A법무팀장에게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방한 이전에 대통령실에 모종의 기획안을 올려야 한다며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을 만날 것을 지시한 바 있습니다.
우측에는 '호주대한태권도협회' 현수막이, 좌측에는 '천공컵 세계종합무도협회'라는 현수막이 붙어 있다. 우측 현수막 태극기 아래에 신경애 이사장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보인다. (사진=다음 카페 'I Love NBA'에 올라온 게시물 갈무리)
천공을 호주로 초청한 사람은 권성근 KTAA 회장입니다. 권 회장은 현지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천공은 원래 무도인이다. 그 분과의 관계는 십년 이상 오래 됐다. 호주에서 천공컵 무도대회를 시작하면서 그분을 초청한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앞서 천공은 지난해 11월26일 대구 한 호텔에서 열린 세계종합무도협회 손광석 총재 취임식에 참석해 '마스터 천공컵 세계종합 무도대회 선포식'을 진행하기도 했는데요, 권성근 KTAA 회장이 세계종합무도협회 오세아니아 총재를 맡고 있습니다.
권 회장이 두 단체에서 임원을 겸직하고 있더라도 대한민국의 국기인 태권도의 공식 해외 행사에 검증되지 않은 무도대회를 끼워넣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태권도의 위상과 해외 교민들의 자존감마저 추락시킨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실제로 이날 행사에 참석한 한 교민은 인터넷 커뮤니티(다음 카페 'I Love NBA')에 "사이비 교주가 마치 한국이란 나라를 대표하는 무도인처럼 포장되어 호주 언론에서 VIP로 다뤄지는 현실이 역겹고 참담하다"는 후기를 남겼습니다. 그러면서 "태권도협회에 항의서한을 넣고, 천공이 묵고 있는 호텔 앞 시위도 계획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5일(현지시각) 호주 시드니 허스트빌 아쿠아틱 레저센터에서 열린 '제1회 마스터 천공컵 종합무도 호주대회' 팸플릿. (사진=유튜브 채널 '고양이뉴스' 갈무리)
이와 관련해 KTAA의 상급단체인 대한태권도협회에 문의했습니다. 협회 관계자는 <뉴스토마토>와의 통화에서 "천공을 초청해 행사를 진행한 것은 저희들도 황당하다"고 반응했습니다. 하지만 "해외 협회의 행사는 대한태권도협회가 금전적 지원을 하지 않기에, 관여하거나 승인하지 않는다"며 "대회 운영도 아니고 누군가를 초청한 문제에 대해 왈가왈부할 수 있는 관계도 아니다"고 했습니다. 이어 "협회 운영이나 관리의 문제라면 심한 경우 대의원 총회에서 지부 승인 박탈도 있을 수 있지만, 이번 건은 현지 회장 개인의 문제로 보인다"며 "정식 민원이 접수된다면 확인해 보겠다"고 덧붙였습니다.
대한태권도협회(회장 양진방)는 우리나라 태권도의 보급과 발전, 국위 선양을 위해 1961년 대한태수도협회라는 이름으로 창립해 60년 넘게 활동한 명실상부한 한국 태권도의 대표단체입니다. 1963년 대한체육회의 정식 단체로 승인됐고, 1965년 지금의 이름으로 단체명을 바꾸었습니다. 조직도를 보면 사무국과 국기원, 각 분과 위원회를 포함해 ▲서울·경기·부산 등 17개 시도협회 ▲초등·중고·여성 등 5개 연맹 ▲미국·일본·호주 등 11개 해외지부로 구성됐습니다.
한편 천공 측이 기존 정법 강의 외에 다른 영역으로 확장하려는 움직임은 윤석열정부 들어 본격적으로 활발해졌습니다. 올 초에는 IPTV에 진출하려다 무산된 바 있습니다. 지난 1월 정법시대 측은 KT가 운영하는 IPTV 서비스 856번 채널 JBS TV(법인명 미디어 아라리)에서 2월1일부터 정법강의 영상을 볼 수 있다고 홍보했습니다. 당시 JBS TV의 홈페이지에 공개된 편성표에도 '그랜드 마스터 천공'이라는 프로그램을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해당 채널은 CUG(폐쇄형 회원제 그룹) 서비스로, 방송을 보려면 별도로 가입 절차를 거쳐야 합니다. 해당 소식이 알려지자 인터넷 커뮤니티 등을 중심으로 천공이 케이블 채널에까지 진출한다는 여론이 들끓었습니다. 더구나 '통일TV'가 KT IPTV에서 갑작스럽게 퇴출된 것과 맞물려 논란이 증폭됐습니다.
논란이 확산되자 JBS TV는 천공 강의 편성을 취소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민주언론시민연합은 "공익성을 이유로 PP채널 등록 승인된 통일TV 송출을 중단한 KT가 JBS의 경우 폐쇄형 CUG 서비스라서 사전검토조차 없이 받아준 것인지 그 기준을 묻지 않을 수 없다"면서 "KT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고 있는 통일TV 송출의 일방적 중단 근거와 함께 '천공' 콘텐츠가 주력인 JBS를 서비스 채널로 선정한 과정을 공개하라"고 촉구했습니다.
유연석·배덕훈 기자 ccbb@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