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진양 기자] KT의 차기 대표 선임이 또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습니다. 공개경쟁 끝에 새 대표 후보자로 선정된 윤경림 KT 그룹포메이션부문장(사장)이 보름만에 사의를 표한 까닭입니다. 검찰까지 동원한 정부와 여당의 거센 압박에 백기를 든 모양새입니다. 이달 말에는 구현모 대표의 임기가 종료되는데요. 재계 순위 12위, 계열사 50여개를 거느린 KT그룹의 경영공백 장기화가 불가피해졌습니다.   

 

24일 통신업계 등에 따르면 KT(030200) 이사회는 이날에도 윤 사장의 마음을 돌리기 위한 설득 작업을 진행 중입니다. 당초 이날 이사회를 열어 윤 사장의 후보 사퇴 의사 수용 여부를 결정하려 했지만, 일단은 윤 사장을 더 붙잡아보는 쪽을 택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윤 사장이 사퇴의 뜻을 굽히지 않는다면 KT는 그를 최고경영자(CEO) 후보자 선임에서 제외하는 등의 주주총회 안건 변경을 공시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 경우 서창석 네트워크부문장과 송경민 경영안정화TF장의 사내이사 후보 자격도 자동 폐기됩니다. 

 

앞서 윤 사장은 지난 22일 열린 조찬 간담회에서 후보자 지위에 대한 사의를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무리한 검찰 수사 압박에 "이대로 버티면 회사가 망가질 것 같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실제로 한 시민단체의 고발로 수사가 시작된 각종 의혹들의 끝에는 윤 사장이 존재하는데, 일각에서는 검찰 수사의 범위가 구 대표와 윤 사장에 그치지 않고 KT 자회사에 포진한 친문 인사 전반이 될 것으로도 보고 있습니다. 구현모 대표 연임 포기로 야기된 혼란이 윤 사장의 내정으로 일단락된 듯 했지만 KT의 앞날은 여전히 시계제로인 셈입니다. 

 

 

사실 여권이 윤 사장을 '구현모 아바타'로 규정했을 때부터 그의 낙마는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습니다. KT측은 "약자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라 몸을 낮췄고,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들이 연달아 윤 사장에게 힘을 실어줬지만 정치권의 칼날 앞에서는 모든 것이 무기력할 뿐이었습니다. 

 

정권 교체기 때마다 반복되는 KT CEO 잔혹사에 비판의 목소리도 높습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야당 간사인 더불어민주당 조승래 의원은 전일 성명을 통해 "대선 공신에게 줄 낙하산 일자리를 위해 민간 기업까지 흔들고 있다"고 비판의 수위를 높였습니다. 조 의원은 "KT 대표이사 선임 문제를 두고 윤석열 정권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면 80년대로 돌아간 것이 아닌지 착각이 들 정도"라며 "달라진 것이 있다면 총칼과 군홧발이 마구잡이 영장과 공소장으로 바뀌었을 뿐"이라고 일침했습니다. 

 

결국 남는 것은 KT의 경쟁력 상실입니다. KT는 '디지코'를 전면에 내세운 구 대표 임기 중 매출 25조원 시대를 열었습니다. 1조원을 갓 넘겼던 영업이익도 2조원에 육박하는 수준으로 확대됐지요. 하지만 올해 KT는 절반가량을 경영권 공백으로 제자리걸음만 하게 됐습니다. KT 정관에 따라 당분간은 대표 대행체제로 운영이 불가피한데요, 임원인사와 사업계획 수립 등 주요 경영 현안은 기약없는 숙제로 남게 됐습니다. 

 

김진양 기자 jinyangkim@etomato.com